<레디 플레이어 원>.

얼마 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만화 <기동전사 건담>의 주인공 로봇 퍼스트 건담이 예고편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비중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서 일본의 거대 로봇들이 등장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퍼시픽 림> 관련 완구.

서브컬처에 대한 애정
2013년 개봉한 <퍼시픽 림>은 서양에서 만들어진 거대 로봇물 중 가장 장르에 대한 이해도와 충성도가 높은 작품이었기에 큰 인기를 끌었다. 사실 20년 전만 해도 일본의 만화 또는 특촬물 컨텐츠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완성도 면에서 별로 기대할 만한 수준이 안 되었지만, 최근 신세대 감독들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들은 일반 관객들뿐만 아니라 골수 팬들도 납득할 만한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고질라>,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등의 영화에서 원작 팬들이 원하는 것들을 정확히 포착하는 능력을 보여 준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나 예전부터 미국/일본 서브컬처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등이 이러한 신세대 감독에 해당하는 것 같다. 1970년대~80년대 전 세계적으로 컬러 TV가 일반화되고 인기 프로그램들이 활발히 수입/수출되면서 일본의 거대 로봇물을 직접 접하고 자란 세대들이 제작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리고 제작 과정에서 역시 동시대에 비슷한 컨텐츠를 접하고 자란 사람들과의 피드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것이다.

<퍼시픽 림: 업라이징> 포스터.

3월에 개봉한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개봉 전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던 작품이다. 공개된 예고편은 전작과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고 감독이 바뀐 것도 심각한 망작이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거대 로봇보다 슈퍼히어로를 선호하는 미국
거대 로봇물이 모든 나라에서 인기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과 함께 팝 컬처 문화의 중심지인 미국에서는 사실 전통적으로 사람이 조종하는 거대 로봇보다 쫄쫄이를 입은 슈퍼히어로물이 더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슈퍼히어로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은 거대한 우주 괴수와 싸우기보다는 자신과 비슷한 사이즈의 악당들과 싸우는 것을 선호했고 로봇이 등장할 때도 인간 형태의 로봇보다는 <금단의 행성>(<금지된 세계>라는 제목으로도 불린다)에 등장하는 ‘로비 더 로봇’ 등 1950년대 미국식 로봇의 형태를 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코믹스 <퍼시픽 림 애프터매스>.


거대 로봇으로 귀결되는 일본의 소년 판타지물
하지만 일본에서는 1960년대부터 슈퍼히어로보다는 로봇물이 전통적으로 인기였다. <마징가>, <철인 28호> 등의 인기 컨텐츠는 전부 사람이 조종하는 거대 로봇을 소재로 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상징적인 컨텐츠인 <울트라맨> 시리즈도 결말 부분에서는 항상 거대한 슈퍼 로봇 사이즈로 변형한 울트라맨이 역시 거대한 사이즈의 괴수와 결투를 벌였다. 심지어 앞서 언급한 스파이더맨이 비공식적인 경로로 일본에 수입되던 1960년 말에도, 스파이더맨이 탑승할 수 있는 거대한 로봇인 ‘레오팔돈’이라는 것이 따로 만들어졌을 정도이니 일본의 소년 판타지물은 결국 거대 로봇으로 귀결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과거 컨텐츠를 재소비하는 현상
일본의 거대 로봇물은 1960년대~1980년대 유럽과 남미 등지에도 활발히 수출되었는데 그때 만화 영화를 보고 자란 소년들은 어른이 된 현재에도 관련 컨텐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이탈리아, 스페인, 멕시코, 브라질 등이 일본 로봇물들을 좋아하는 나라들이다. 특히 이탈리아의 슈퍼로봇물 사랑은 남다른데, 일본 본토에서도 발매되지 않은 자체 완구와 컨텐츠가 지금까지도 활발히 발매되고 있고, 심지어 대형 서점에 가면 60년대 일본 만화들의 복각 양장판이 잘 보이는 위치에 즐비하게 위치하고 있다. 유튜브에는 40년도 더 된 고가 민트(손상이 전혀 없는 최고의 상태)급 완구들을 떨리는 손으로 택배 상자에서 꺼내고, 그것들이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는 장식장을 보여주는 동영상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비록 외국에서 수입된 문화 컨텐츠임에도 불구하고 개발 도상국 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 줬던 컨텐츠임은 분명하고, 어떻게 보면 성인이 되어 그것들을 다시 찾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겠다. 점점 실물로 존재하는 물건들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 소위 ‘추억팔이’라고 일컫는 과거 컨텐츠를 재소비하는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면서, 추억의 아이템들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많이지고 그것들이 희소성을 높여가는 현상 역시 전 세계적이다.

<퍼시픽 림: 업라이징>

중국의 막강한 소비력
중국도 일본의 거대 로봇물들을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1970~80년대 유년기를 보낸 소년들이 이제 40대로 접어들면서 슈퍼로봇/리얼로봇 관련 제품들을 상당한 자본력으로 소비하고 있다. 중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건담을 위시한 슈퍼로봇물들이 정식으로 수입된 적은 없다. 그나마 정식으로 수입된 서구/일본의 로봇 만화 컨텐츠라면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있는데 90년대 초 하스브로사와 정식 계약 후 80년대 발매되었던 제품들을 중국에서 자체 생산, 재발매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80년대 생산된 트랜스포머 빈티지 완구들도 약 10년 전부터 중국인들에 의해서 많이 소비되고 있는데, 일본 야후 옥션 등에서 판매되는 고전 완구들은 중국인들의 싹쓸이로 인해 근 10년간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한 것이 사실이다.

<퍼시픽 림: 업라이징> 일본 포스터.

‘메카물’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시작
개인적으로는 <퍼시픽 림: 업라이징>을 매우 재밌게 봤다. 전작 <퍼시픽 림>이 1960~1970년대 거대 로봇물과 특촬물을 적당히 버무려놓은 느낌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1980~1990년대 나온 정통 로봇 장르물의 느낌과 문법에 충실한 작품이라는 느낌이다. 인터넷과 유튜브에 올라온 리뷰들은 부정적인 것들이 많고 전작과 비교해서 무게감과 델 토로 감독만의 스타일이 사라져서 별로라는 평이 많지만, 새로운 시리즈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으로는 매우 뛰어난 연출이었다는 생각이다. 1964년생 스티브 S. 드나이트 감독은 거대로봇을 등장시키는 ‘메카물’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와 메카물에 적합한 분위기와 스토리로 미래가 기대되는 새로운 프랜차이즈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해서 계속 후편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퍼시픽 림: 업라이징

감독 스티븐 S. 드나이트

출연 존 보예가, 스콧 이스트우드

개봉 201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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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림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출연 찰리 허냄, 론 펄먼, 이드리스 엘바, 찰리 데이, 키쿠치 린코

개봉 201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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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플레이어 원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올리비아 쿡, 벤 멘델슨, 타이 쉐리던, 사이먼 페그, 마크 라이런스, T.J. 밀러

개봉 201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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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서 / 그래픽 노블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