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3일, 제주도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추념식이 열렸다. 정확히 70년 전인 1948년 4월 3일을 기점으로 일어난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간이었다. JTBC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제주 4.3 사건을 언급하며 제주도를 “아픔이 있는 땅”이라 말한 가수 이효리와 제주도에서 귤 농사를 지으며 노래를 쓰는 가수 루시드 폴이 추념식 무대에 올라 주목받았다. 너무 늦었던 2014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이 사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많은 이들이 그 기억을 아스라이 잊었던 시간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들은 이미 만들어져왔다. 그 영화들을 소개한다.


제주 4.3 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 기마 경찰의 발에 치여 한 아이가 부상을 입자 민중들이 그를 향해 돌을 던졌다. 경찰 측이 경찰서 습격으로 간주하고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제주 3.1절 발포 사건). 이후 경찰이 통행금지령을 내리면서 갈등이 깊어졌고, 남조선노동당이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봉기를 기점으로 무장대와 진압군의 갈등이 계속돼 11월 17일 제주도에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소개령이 떨어졌다. 이후 진압군은 강경 토벌작전을 벌였는데, 토벌 작전 전까지 약 1000명 미만이 사망했으나 토벌 작전 기간부터 4.3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적어도 2만 5천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고한 도민들은 토벌대, 경찰, 무장대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고, 중간산 마을 95%가 방화돼 갈 곳 없는 도민들이 산으로 들어가는 일이 빈번했다.

1949년 신임 사령관의 사면 정책과 선무작전(지방 주민의 민심을 안정시키는 일)이 전개되면서 사태가 소요되는 듯했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과 보도연맹 학살사건이 겹치면서 계엄군들의 학살 사건이 다시 일어났다. 4.3은 한국전쟁 휴전 이후인 1954년 9월 21일에 한라산이 개방돼서야 마무리됐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를 참고하길 권한다.


지슬-끝나지 않는 세월2
Jiseul, 2012

제주 4.3 사건은 한 번도 상업영화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극영화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소재라 대부분 다큐멘터리로 기록됐다. <지슬-끝나지 않는 세월2>(이하 <지슬>)은 제주 4.3 사건을 이야기의 형태로 옮긴, 가장 대중적인 제주 4.3 사건 관련 영화다. 제주도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는 배우들을 기용했고, 그 결과 사실적인 느낌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었다.

<지슬>은 섬세하다. 빨갱이 하나 잡지 못해 나체로 벌을 받던 박 일병이 목격한 토벌대는 부조리와 폭력이 가득하고, 토벌대를 피해 산으로 스며들어 동굴을 찾는 도민들은 비참하면서도 정겨운 역설적인 감정을 일으킨다. ‘지슬’(감자를 부르는 제주도 사투리)을 나눠먹는 장면은 먹먹하면서도 단란해보이고, 동시에 처연하다. 제주도 출신인 오멸 감독이 무고하게 희생됐을 고향의 선조들에게 느낀 연민이 묻어난다.

<지슬>을 섬세하다 표현한 건 비단 사실적인 묘사 때문만이 아니다. 모든 이가 숨을 거두고 갓난 아이의 울음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그 아이마저 울음을 멈춘 영화의 마지막에 <지슬>의 참의미가 드러난다. 신위, 신묘, 음복, 소지라는 네 챕터로 구성된 한 편의 영화가 제주 4.3 사건 희생자들의 한을 달랜다. 숨이 막힐 만큼 숭고해지는 순간이다.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감독 오멸

출연 이경준, 홍상표, 문석범, 양정원, 박순동, 성민철

개봉 2012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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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세월
4.3 Story, 2005

2005년 공개된 고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은 세월>은 제주 4.3 사건에 휘말려 무장대와 경찰이 된 친구의 이야기를 다뤘다. 처음으로 4.3 사건을 극영화로 옮긴 김경률 감독은 영화 촬영을 마친 후 같은 해 12월 2일에 세상을 떠났다. <끝나지 않은 세월> 이후에도 제주에서 <이재수의 난> 연극을 올리려 했고, 제주도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준비하려던 참이었다. <지슬>은 부제로 이 영화의 속편임을 자처했다. <끝나지 않은 세월>의 제작자이자 <지슬>의 연출자 오멸 감독은 “<끝나지 않은 세월>의 의미를 되살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끝나지 않은 세월

감독 김경률

출연

개봉 2005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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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념
Jeju Prayer, 2012

<비념>의 카메라는 지금을 포착하고 사운드는 제주 4.3 사건을 겪은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비념>은 93분의 시간 동안 차분하게 4.3 사건을 재구성한다. 자극적인 이미지가 없는데도 생존자들의 음성에 서린 다급함, 억울함, 비참함이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기지 건설을 위한 강정 마을 구럼비 바위(제주도민이 신성시 여긴 바위) 폭파 현장에서 벌어지는 해군과 도민들의 갈등은 국가가 휘두르는 권력의 문제를 현재까지 확장한다.

<비념>은 살아남은 여성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물에 불린 밥을 상에 올리고 귀양풀이(제주 무속의례)를 하는 장면에는 “마음 편하게들 가지고 모두 모두 고생하였소, 아이고 우리 아기들 분수 모르는 우리 아기들”이란 넋 뒤로 나이 지긋이 드신 할머니들만이 있다. 강상희 할머니, 강명자 할머니의 입을 통해 살아남은 여성들의 팍팍한 삶을 전한다. 희생된 제주도민들의 영면과 “고통의 세월을 살아오셨을 제주의 모든 할머니께 경의를 표하”는 문구에서 임흥순 감독의 사려 깊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오사카에서 온 편지>는 <비념>과 함께 알아두면 좋을 영화다. 4.3 사건 당시 제주도에서 홀로 살아남아 오사카로 피신할 수밖에 없던 여성의 이야기를 다큐 드라마로 재현했다. 소셜 펀딩으로 완성하고 몇 번의 시사회로만 공개했던 이 다큐드라마는 현재 유튜브(링크)로 만날 수 있다.

비념

감독 임흥순

출연 강상희, 한신화

개봉 2012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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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서 온 편지

감독 양정환

출연 권경식, 문인숙

개봉 2017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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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헌트
Red-Hunt, 1996

조성봉 감독의 <레드 헌트>, ‘빨갱이 사냥’은 “아직도 계속되는 제주의 비극과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마주쳤다”는 말과 서북청년단, 경찰, 이승만, 무장 토벌대, 미 군정, 빨갱이 각시, 빨갱이라는 단어들로 이 작품의 존재 의의를 천명한다. 생존자들의 인터뷰와 사건 직전 제주도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묘사하는 것에서부터 제주 4.3 사건을 접근해간다.

<레드 헌트>는 전문가의 소견과 실제 피해자의 증언으로 4.3 사건을 조망한다. 특히 당시 경찰을 지냈던 이들의 증언으로 서북청년단, 친일 출신 경찰의 대거 유입이 이승만 정권과 연관이 있고 대학살로 이어진 증거들이 허위임을 여과 없이 전한다. 결국 제주도 토벌 작전의 목적인 ‘빨갱이 사냥‘이 허구였음을 도출해낸다. 조성봉 감독은 이 작품 공개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는 등 고초를 치렀다. 현재 <레드 헌트>와 <레드헌트2, 국가범죄>(1999)는 조성봉 감독이 직접 유튜브에 전편을 공개했다. 

레드 헌트

감독 조성봉

출연 최우진

개봉 199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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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메이데이
MAY DAY IN KOREA, CHEJU-DO, 1948

이 13분짜리 짧은 영상(링크)은 실제 상황을 담는다. 미군 측에서 촬영한 <제주도의 메이데이>는 제주 4.3 사건 당시 현장을 순간순간 포착한다. 불타고 있는 마을, 농민들을 둘러싼 군인들, 단정한 미군 기지의 모습이 비치는데, 점차 서슬 퍼런 대학살의 그림자가 조금씩 다가온다. 평화 협상 파기를 불러온 오라리 방화 사건도 담겨있다. 앞서 언급한 <비념>에도 해당 영상이 일부 사용됐다.


순이 삼촌
Sun-i Samch'on, 1978

현기영 작가는 제주 4.3 사건을 직접 겪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4.3 사건의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한국 문학 최초로 제주 4.3 사건을 그린 <순이 삼촌>이 대표적이다. 순이 삼촌이 4.3 사건을 겪으면서 어떻게 노쇠해지고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지 묘사한 내용 때문에, 현기영 작가는 출판 직후 정부로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는 아니지만, 연극 무대로도 옮겨진 소설이라 그 많은 문학 작품의 대표로 소개해본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성찬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