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한 상세한 설정 언급이 포함된 글입니다.
이 영화, 모두가 기대했다

엄청난 기대 속에 워너브러더스와 DC의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개봉했다. 팬들은 이 영화가 혹평 세례를 받았던 시리즈의 전작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비교해 얼마나 좋을지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공개된 이후 전반적인 평이 안 좋다. 해외의 모 매체는 벌써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2016년 최악의 영화’로 선정하기도 하는 등 굴욕적인 평가가 이어지는 중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미국에서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보다 관객의 평이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음에도 몇몇 소수 팬들이 평점을 낮게 준 언론사 홈페이지에 악플을 남기거나 심지어 평점 사이트인 ‘로튼토마토’를 폐쇄하라고 탄원서를 내기도 하는 등 광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참고로 로튼토마토사이트는 워너/DC사가 소유하고 있다.)

해군 출신 감독의 연출 철학

데이빗 에이어 감독 자신도 관객반응에 당황했는지 자신의 트위터에 (이 영화 연출은) "최고의 경험이었다."며 옹호성 글을 올리기도 했다. 보통 영화가 혹평을 받을 경우에는 감독이 스튜디오나 영화사의 지나친 개입을 탓하(면서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우회해 변명하)는 경우가 흔한데, 에이어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1.
데이빗 에이어 감독의 경력은 특이하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폭력과 범죄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젊었을 때는 해군에 입대해 잠수함요원으로 근무하기도 했었다.

안톤 후쿠아 감독, 덴젤 워싱턴과 에단 호크 주연 영화 <트레이닝 데이>의 각본을 쓰며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의 특징은 살벌하고 무정한 현실을 관객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가 각본을 썼거나 연출을 맡은 <트레이닝 데이>, <엔드 오브 왓치>, 그리고 최근작 <퓨리>에서도 볼 수 있듯 그의 작품은 대개 진지하고 무거운 톤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폭력적이거나 충격적인 장면들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현실은 이런 것이라는 걸 상기하게 만드는 감독이다. 각본은 거의 직접 쓰며, 영화가 실패하더라도 심적인 영향을 안 받는 타입이다.

이 영화, 내가 만들 거야!

2.
그렇기에 마블에 비해 좀 더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의 DC 유니버스를 만드는 데에 데이빗 에이어 감독만한 적임자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자발적으로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영화화를 밀어붙이기도 했다. DC 확장세계관 (DC Extended Universe, 줄여서 DCEU) 만들기 계획은 <맨 오브 스틸> 촬영 당시부터 거론됐는데, 실제로 그가 그 때부터 엄청난 관심을 보여 왔다.

에이어 감독은 "악당들의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고, ‘사람이 악하게 또는 선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늘 관심 갖고 있던 테마이자 모티프였다"고 말한다.

영화화 방향은 이렇게 결정했다!

3.
'수어사이드 스쿼드' 멤버들을 정한 것은 데이빗 에이어 감독과 DC의 총책임자 제프 존스이다. 만화계의 베테랑 제프 존스는 에이어 감독에게 DC 유니버스의 가이드 역할을 해줬다.
둘은 함께 원작 만화를 읽었고, 배우 캐스팅이 결정된 이후는 배우들도 합류해 함께 원작 만화를 읽었다.

특히 극중 자객인 카타나 역을 맡았던 캐럭 후쿠하라는 카타나가 등장한 과거 미니시리즈와 그녀가 팀원으로 등장하는 <버즈 오브 프레이> 미니시리즈도 전부 탐독했다고 한다.

4.
에이어 감독에 따르면, 할리퀸은 DC의 '뉴 52' 이후 버전이 마음에 들어서 이 캐릭터만큼은 만화에 나오는 모습을 그대로 사용했다.

특히 그는 할리퀸과 조커의 관계를 매우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수어사이드 스쿼드 팀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조커를 영화에 등장키시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결국 자레드 레토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가장 먼저 캐스팅되기도 했다.

또한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배트맨을 등장시키자는 것도 에이어 감독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원작 속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많은 등장 인물이 배트맨의 적수이므로, 에이어 감독은 앞으로 이들과 배트맨과의 관계를 다룬 영화로까지 더 확장시킬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계획을 짰다.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이스터 에그도 제프 존스와의 상의를 통해 신중하게 넣은 것이다. 그 결과,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각종 캐릭터들의 원작과의 연계성이나 복장, 설정의 재현도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디테일을 능가하는 결과가 나왔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탄생

5.
공개 전부터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코믹한 DC 캐릭터들이 나오는, 전작들보다 발랄한 영화’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 원작에서의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그렇게 사고뭉치 빌런들이 좌충우돌하는 코믹물은 아니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이름을 쓰는 팀이 만들어진 것은 1960년대이지만, 이 때의 팀은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도 지금의 버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 릭 플래그 대령은 이때 처음으로 등장했다. (2차대전 버전의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이후 다윈 쿡의 역작 <뉴프론티어>에서 다시 한번 등장하기도 한다.)

지금의 형태를 띈 팀의 완전체가 만들어진 것은 1980년대. 한창 냉전 분위기가 만연하던 시절이다. 미니시리즈 <레전즈> 3호에 잠깐 등장하고 나서 자신들의 이름을 건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시리즈가 1987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한다.
작가 존 오스트랜더는 닐 아담스, 데니스 오닐, 짐 아파로 등 당대의 걸출했던 작가들과 함께 DC 유니버스의 더욱 무겁고 현실적인 톤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작가인데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그의 작품이다. (영화에도 그에 대한 오마주로 존 오스트 랜더 빌딩이 등장한다.)

오리지널 멤버도 달랐다

6.
아만다 월러가 구성한 코믹스 상의 팀에서는 데드샷과 캡틴 부메랑이 리더격으로 활약했다.
릭 플래그와 인챈트리스도 등장하지만,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브론즈 타이거, 네메시스, 카운트 버티고 등이 주요 멤버들로 활약한다.

코믹스 내에서의 수어사이드 스쿼드 팀은 냉전 분위기에 맞춰, 정치적으로 민감한 '테러리스트 진압', '러시아 요원들과의 결투', '망명 인사 보호' 등의 미션을 수행한다.
실제로 원작에는 로널드 레이건이나 고르바초프도 등장해 지금 읽어도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슈퍼맨과 배트맨 등 DC 유니버스의 히어로들과 더 많이 싸우게 되고, 결국은 66호를 마지막으로 종간하게 된다.

이후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이름을 단 시리즈는 각각 2001년, 2007년, 그리고 2011년 세 차례에 걸쳐 출간됐다. 영화에 나오는 멤버들과 비슷한 구성을 갖게 되는 것은 2011년에 등장한 수어사이드 스쿼드 4기 때부터다.

당시 DC의 모든 타이틀이 뉴 52라는 이름 아래 리부트되면서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리부트됐다. 새 팀의 구성원은 캡틴 부메랑,  데드샷, 엘 디아블로, 킹 샤크, 요요, 데스 스토르크, 그리고 할리퀸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멤버들의 목에 심은 원격폭탄도 2011년에 처음 등장한다.

그런데 킹 샤크는 이번 영화화 과정에서 킬러 크록이란 캐릭터로 교체됐다. 이것이 팬들에게 너무 익숙한 킬러 크록을 향후 DCEU 영화 내에 계속 등장시킬 목적인지, 아니면 상어 모습을 한 빌런이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인지는 감독만이 알 것이다.

또한, 원작에서 멤버로 활동하는 인기 캐릭터 데스스트로크는 이번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중요한 캐릭터인 만큼 다른 DC 영화 또는 <수어사이드 스쿼드> 후속편에서 메인 빌런/안티히어로 역할로 등장할 것 같다. 할리퀸의 경우 이미 솔로 영화가 결정되었고, 다른 캐릭터들도 추후 카메오 역할로 잠깐씩 등장하지 않을까?

내가 겉과 속이 모두 못 생긴 악당이라고?
그 다음 행보는 어디로?
내 인기 하나는 건졌잖아? 하!하!하!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그러했듯, DC와 워너 브러더스의 큰 도박이다. 마블의 소위 ‘듣보잡’ 히어로들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유명인사들이 되어버린 이 상황에서 과연 DC의 자살특공대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첫 주 흥행 성적이 1460억 달러 정도로 집계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하지만 평단과 관객의 엄청난 혹평 때문에 혹시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때처럼 2주차에 70%가 넘는 관객 드롭율을 겪을지도 모른다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그래픽노블 번역가 최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