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나오는 ‘청담나들목’이 다른 한강 굴다리들과 다른 점은 휘어져 있다는 거다. 따라서 굴다리 안을 걸어갈 때, 밖이 보이지 않는 구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굴다리의 한쪽 벽은 거울처럼 비치는 스테인리스 금속판으로 마감되어 있다. 청담나들목을 걷는 사람들은 터널 끝 대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영화에서 이렇게 휘어진 터널의 형태와 거울 벽은 굴다리를 단순히 통과의 과정이 아닌, 터널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죄 많은 소녀>에서 다른 사람들 모두가 갖게 되는 영희에 대한 의심은 영희 혼자서 지나가야 하는 터널을 만들고 있다. 아니, 의심은 영희 자신으로부터도 생겨나고 있다. 영화에서 영희는 실체적인 상처를 몸에 남긴다. 이 상처는 자기 자신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어쩌면 영희의 고통은 다른 사람들 때문이 아
니라, 자신이 통과하는 어떤 길로부터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 마음의 터널은 실제의 굴다리로 영희가 지나가는 세상을 상징하고 있다. 경민만이 알고 있을 자살의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영희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가게 된다. <죄 많은 소녀>의 구조가 특별한 점은 공간과 이야기가 동기화되었다는 점이다.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은유는 경민이 마지막으로 걷는 청담나들목, 의심이 만들어내는 영희의 세계, 딸의 자살의 이유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경민의 엄마, 사회에 나오기 전 학교 시절 등 반복적으로 <죄 많은 소녀>에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