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전화기면 다 된다. 통화는 당연하고 음식도 시키고, 멀리 사는 친구 얼굴도 보고, 장도 보고,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전화기는 때로 공포의 대상이 됐다. 스마트폰 하나에 내 일상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이 시대의 무서움(?)을 잘 보여준 <완벽한 타인>처럼, 전화기를 소재로 독특한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들을 유형별로 소개한다.
전화기는 역시 붙박이 집전화
다이얼 M을 돌려라
Dial M for Murder, 1954
1930년대에 전화기가 보편화되고 20년 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1956년 <다이얼 M을 돌려라>를 연출했다.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아내의 재산을 독차지하려는 남편의 살인 계획을 다룬다. 남편 토니는(레이 밀랜드) 자신의 친구인 스완(안소니 도슨)에게 아내 마고(그레이스 켈리)를 살해해달라고 부탁한다.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할 테니 받으러 간 아내를 습격하라는 계획과 함께. 전화 하나로 자신의 알리바이는 물론이고, 살해 대상을 정해진 장소로 오게 유도하는 것이다.
지금이야 인터넷 추리 문제에서도 찾을 수 있을 트릭이지만, 당시엔 사람의 행동 양식을 잘 파고든 참신한 발상이었을 것이다. 수화기 건너편의 소리는 들리지만 상황을 정확히 알 순 없는 전화의 특징은 ‘서스펜스의 대가’ 히치콕에게 어울리기도 하고. 원제 ‘다이얼 엠 포 머더’(Dial M for Murder, 살인을 위한 다이얼 M)를 <다이얼 M을 돌려라>로 ‘초월 번역’한 분께도 손뼉 쳐드리고 싶다.

- 다이얼 M을 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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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 레이 밀렌드, 그레이스 켈리, 로버트 커밍스
개봉 1956.09.15.
더 콜러
The Caller, 2011
전화기 너머 목소리를 들을 때면, 어떤 환상이 더해지곤 한다. <더 콜러>는 그 상대에 대한 환상을 비틀어 스릴러로 풀어낸다. 어느 날부터 메리(레이첼 르페브르)에게 누군지도 모르는 ‘바비’를 찾는 전화가 걸려온다. 매일 전화를 받다가 답답해진 메리는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보고, 상대방이 30여 년 전인 1979년에 사는 로즈(로나 라버)라는 여성이 알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시월애>, <동감>, <프리퀀시> 같은 시간을 초월한 감동적인 얘기 같지만, 아니다. 로즈가 바비를 살해하고 집에 묻으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미래에 그 집에 살고 있는 메리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 메리는 이제 로즈의 마수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일종의 시간 여행 이야기를 전화기에 장착시킨 셈. 메리가 쓰는 검은 다이얼 전화기 때문일까, 영화의 판타지가 꽤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 더 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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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매튜 파크힐
출연 스티븐 모이어, 레이첼 르페브르
개봉 2012.08.09.
컴플라이언스
COMPLIANCE, 2012
미국 켄터키주의 한 맥도날드 지점으로 전화가 온다. 경찰이라고 밝힌 발신자는 지점 직원 중 한 명이 돈을 훔쳤다며 그를 잡아두라고 지시한다. 범인으로 지목된 아르바이트생 루이스(드리마 월커)는 ‘경찰’의 지시에 따라 다른 직원에게 알몸 수색까지 당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정체는… <컴플라이언스>는 실제로 일어났던 켄터키주 맥도날드 사건을 토대로 한다. 그저 경찰이라고 말한 것 때문에 벌어진 이 일련의 사태는 전화기를 단순히 목소리를 전해주는 기계라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을 것이다.

- 컴플라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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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크레이그 조벨
출연 앤 도드, 팻 힐리, 드리마 워커
개봉 2013.08.01.
이제는 추억만, 공중전화
폰 부스
Phone Booth, 2002
공중전화 하면 빠질 수 없다. 제목부터 전화가 설치된 부스를 이르는 ‘폰 부스’니까. 스투 세퍼드(콜린 파렐)는 길을 가다 공중전화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장난 전화인 줄 알았는데, 상대는 스투에게 전화를 끊으면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이 소동에 경찰도 출동하고, 스투는 전화를 끊을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폰 부스>는 영리한 각본과 능수능란한 연출력을 가진 베테랑 감독의 힘을 보여줬다. 또 작중에서 언급되듯 공중전화에서 휴대전화로 넘어가는 이 시기를 그리며, 하나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서 사회와 그 일원들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넌지시 충고한다.

- 폰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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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엘 슈마허
출연 콜린 파렐, 포레스트 휘태커, 키퍼 서덜랜드
개봉 2003.06.13.
다이 하드 3
Die Hard With A Vengeance, 1995
<다이 하드 2> 이후 5년 만에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이 돌아온 <다이 하드 3>. 사이먼(제레미 아이언스)이란 자가 뉴욕 곳곳에 폭탄을 설치하고 존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터뜨릴 거라 협박한다. 존은 수수께끼를 풀며 폭발을 막아야 한다.
<다이하드 3>는 홀로 고립된 존이 고군분투한다는 <다이 하드> 특유의 일관성을 과감히 뒤엎고, 스케일을 키웠다. 숨바꼭질을 술래잡기로 슬그머니 갈아탄 셈. 그 시도는 성공적이어서 이후 스릴러 영화에서 공중전화로 지시해 경찰을 따돌리는 범죄 패턴을 정착시켰다. 존과 제우스(사무엘 L. 잭슨)의 케미스트리, 전화기로 전달되는 수수께끼, 어떻게든 다음 목적지의 도달해야 하는 긴장감이 시너지를 내 흥행에도 성공했다.

- 다이 하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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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존 맥티어난
출연 브루스 윌리스, 제레미 아이언스
개봉 1995.06.10.
어느새 만악의 근원? 휴대폰
착신아리
着信アリ: One Missed Call , 2003
너무 유명해서 넘어갈까 했지만,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 <착신아리>는 자기 자신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그걸 받으면 전화기에서 들리는 소리대로 자신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공포 영화다. 심지어 전화를 받으면 핸드폰 주소록의 누군가에게도 같은 전화가 발신되니, <링>이나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착신아리>에 나오는 벨소리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때 안성맞춤(?)이라 방송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일본에서 삼부작이 완성되고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되었다.

- 착신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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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시바사키 코우, 츠츠미 신이치, 후키이시 카즈에
개봉 2004.07.09.
이글 아이
Eagle Eye, 2008
누명을 쓴 사람, 어느 날 걸려온 전화. 전화 너머의 누군가가 지시하고, 그대로 실제 상황이 전개된다. 이런 류의 장면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이글 아이>는 오직 이런 구성 하나로 끝까지 달려나간다. 뚝심으로 밀어붙인 스토리는 후반부로 갈수록 감을 잃고 방황하지만, 액션 장면의 스펙터클로 그럭저럭 종지부를 찍는다. 의문의 상대의 말대로 주변 상황이 돌아간다면, 누구라도 전화기 속 목소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이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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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D.J. 카루소
출연 샤이아 라보프, 미셸 모나한
개봉 2008.10.09.
셀룰러 & 커넥트
Cellular, 2004 & 保持通話: Connected, 2008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전화가 현대인의 족쇄처럼 그려질 때가 많지만, 그래도 제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셀룰러>는 괴한에게 납치당한 여성이 고장 난 전화기를 이용, 임의의 상대에게 구조 요청을 보내면서 시작된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은 남성은 여성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그 과정에서 휴대폰의 배터리, 납치 상황의 변화 등이 겹치면서 쫄깃한 긴장감을 전한다. <셀룰러>는 이후 홍콩에서 <커넥트>라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 셀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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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이빗 R. 엘리스
출연 킴 베이싱어, 크리스 에반스
개봉 2004.09.10.

- 커넥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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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진목승
출연 고천락, 서희원, 장가휘
개봉 2008.11.20.
13 & 미션 13
13 Beloved, 2006 13 Sins , 2014
이 남자, 완전히 망했다. 할부금에, 가족 부양금에, 필요한 돈은 산더미인데 회사에서 짤리기까지 한다. 그런 그의 휴대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온다. 13개의 미션을 해내면 거액의 상금을 주겠다는 목소리. 앞으로의 전개는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태국 영화 <13>은 2006년도 작품이지만 현재 유튜브, 1인 방송 세대의 면모를 전화로 옮긴 것처럼 느껴진다. 점점 과해지는 미션, 하지만 손에 들어온 돈만큼 커지는 욕망. 아쉽게도 <13>은 국내에 정식 소개된 바 없는데, 이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미션 13>으로 대신해도 좋을 듯하다.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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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추키아트 사크위라쿨
출연 크리사다 테렌스, 아치타 우디노운스라싯, 사루뉴 웡크라창, 나타퐁 아런네이트, 알렉산더 렌델, 아치타 시카마나, 펜팍 시리쿨
개봉 미개봉

- 미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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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다니엘 스탬
출연 마크 웨버, 론 펄먼, 루티나 웨슬리, 프루이트 테일러 빈스, 데븐 그레이
개봉 2014.04.24.
잘 쓰면 스마트, 잘못하면 스튜핏한 스마트폰
넘버원 전화사기단
Je compte sur vous, 2017
2000년대부터 급격히 늘어난 ‘보이스피싱’은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을 납치했다거나 다쳤다는 식의 협박으로 금액을 송금 받는 범죄 방식이다. 지금이야 예방법도 생기고 코미디로 희화화돼 가볍게 느껴지지만, 당시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농락당했다는 심리적 상처와 거액 금액 갈취로 많은 이들에게 상실감을 안겼다. <넘버원 전화사기단>은 보이스피싱 초창기에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실제 범죄를 각색했다. 보이스피싱이란 질 나쁜 범죄를 다루면서 경쾌한 케이퍼 무비 식으로 풀어내는 용기가 가상하다.

- 넘버원 전화사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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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파스칼 엘비
출연 빈센트 엘바즈, 줄리 가예트, 자부 브레트만, 루도빅 데이, 안 샤리에
개봉 2017.06.29.
앱
App, 2013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쓰려면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해야 한다. <앱>의 안나도 스마트폰 잘 써보겠다고 질문에 답을 알려주는 ‘아이리스’ 앱을 설치한다. 그런데 웬걸, 스마트폰에 있던 정보가 주변 사람들에게 전송되고 만 것이다. <앱>은 스마트폰의 강점이자 맹점인 어플리케이션을 가지고 SF적 상상력을 더한 산물이다. 이 영화가 제작된 2013년에 봤다면 몰라도, 영화 속 스마트폰이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것에 비할 게 못된다. 영화 자체도 밋밋하기 그지 없고. 그래도 앞서나간 상상력은 언젠가 실제로 저런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섬찟하게 한다.

-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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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바비 보어만스
출연 해나 혹스트라, 이시스 카볼렛, 로버트 드 후그, 패트릭 마텐스
개봉 2015.11.19.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