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집어삼켜버린 살풍경
극중 재정국 차관(조우진)이 당시 가해자이고, 소기업 사장 갑수(허준호)가 피해자이며 한국은행 통화정책팀 팀장 한시현(김혜수)이 현실에 없던 판타지라면, ‘나만은 아니길’의 현재성을 지니는 인물이 금융맨 윤정학(유아인)이다. 돈 놓고 돈 먹는 금융자본주의가 땀 흘려 돈 버는 산업자본주의(갑수)를 코웃음치며 압도하는 형세도 간명하게 표현됐다. 윤정학은 사태를 직감하고 나만 아니면 된다며 종금사에 사표를 낸다. 그가 개최한 투자 설명회에서 이를 믿지 못한 이들이 자리를 빠져나간 뒤, 나만은 아니길 바라는 두 사람(송영창·류덕환)이 슬그머니 되돌아온다. 로또 당첨금을 제대로 받으려면 1등이 적어야 하니까. 이들은 “나라가 망해야 돈을 벌 수 있는” 풋옵션을 만들어 거액을 베팅한다. 아득한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이가 많을수록 이들은 부자가 된다. 윤정학이 “대한민국이 망했어! 우린 부자야!”라며 쾌재를 부르는 투자자를 때리는 장면은, ‘나만 아니면 돼’와 ‘나만은 아니길’의 사이를 오가는 정서적 혼란이다.
한국에서 ‘나만은 아니길’의 풀리지 않는 숙제를 던지는 대표 과목은 누가 뭐래도 부동산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도 많이 나왔다. <숨바꼭질>(2013)부터 올해 <7년의 밤> <목격자>로 이어지는 모티브는 아파트로 상징되는 중산층으로의 편입, 서민층으로부터의 탈출을 욕망하는 데서 비극을 출발시킨다. 국민 다수가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한다는 보도를 전하며 시작하는 <국가부도의 날>은, 이후 한국 중산층이 어떻게 급전직하했는지 깔끔한 편집을 통해 보여준다. 나만은 저 경우가 아니길. 믿고 기다리면 정 사장(정규수)처럼 희생당할뿐. 우리 국민들이 이를 똑똑히 학습한 결과가 지금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중이다. 아파트 값이 폭락하길 기다려 싹쓸이 매입한 윤정학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집주인을 보고도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나가. 이제 내 집인데.” 유혈 입성한 점령군, 즉 IMF의 형상화이기도 한 이 장면은 자본보다 소중한 수많은 것들을 자본이 집어삼켜버린 살풍경이다. 삼켜진 것들 가운데에는 ‘믿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