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규·설경구·천우희의 들끓는 에너지가 고스란히 녹아든 <우상>은 다른 지점에 서 있던 세 인물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킨 이야기다. 개봉 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너무 복잡하다’ 등의 평을 받고 있는 작품. 반대로 생각하면, 영화 속 사건 하나하나를 허투루 스쳐보내지 않고 꼼꼼히 되짚어볼 수 있는 재미, 인물들이 지닌 비밀의 키를 추측하며 스토리의 퍼즐을 맞춰가는 재미가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극장을 나온 후 <우상>이 막연하게 어려운 영화로 느껴진 이들이라면 주목하시길. 혼잡 복잡한 영화의 빈틈을 채워줄 <우상>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준비했다.


<우상>은 어떤 영화?

- <우상>은 이수진 감독이 13년 전에 쓴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다.

<우상>은 <한공주> 이전부터 이수진 감독이 품고 있던 이야기다. 신인 시절의 이수진 감독이 장편 데뷔작으로 생각하고 있던 작품. 그만큼 감독의 애정이 듬뿍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이수진 감독은<씨네21>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상>에 “단편 작업을 하면서 생각한 한국 사회의 크고 작은 모순들,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온 것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갔다”고 밝히며, 처음엔 단순한 스토리였으나 “<한공주>를 만들고 나서 사회적인 이슈들이 추가됐다”(<씨네21> 1197호)고 전했다.

-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 초청된 작품이다.

<우상>이 먼저 베일을 벗은 곳은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다. 날카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이 모인 파노라마 섹션에 초청됐다. 이수진 감독은 장편 데뷔작이자 전작인 <한공주>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마라케시 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돼 평단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배우들의 파격 변신

- 한석규가 처음 제안받은 역할은 중식(설경구)이다.

중식 역을 가장 먼저 제안받은 배우는 한석규다. 이수진 감독은 ‘노란 머리카락을 지닌 캐릭터 중식을 한석규가 연기하면 더욱 색다르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그에게 중식 역을 제안했다. 이수진 감독과 만난 한석규는 중식 역보단 명회 역에 관심을 보였고, 자신이 왜 명회를 연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그의 열정에 확신을 얻은 이수진 감독은 마음을 바꿔 그를 명회 역에 캐스팅했고, 관객은 한석규의 역대급 악역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 설경구는 처음 탈색에 도전했다.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던 이야기. 설경구가 연기한 중식은 지체 장애가 있는 아들 부남이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아들처럼 머리카락을 노랗게 물들인 캐릭터다. 검은 머리카락이 금방 자라는 바람에 설경구는 한 달에 두세 번 탈색을 해야 했다. 영화 개봉 후 설경구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6개월 동안 탈색을 하니 나중엔 머리카락이 바스러지더라", “그래도 그동안 안 해본 스타일이라 좋았다”고 탈색 시도의 소감을 밝혔다.

- 중식을 연기하기 위해 태닝도 했다.

탈색뿐만 아니라 피부 색에도 변화를 줬다. 오로지 아들을 위해 사느라 자신을 가꾸지 못한 중식을 표현하기 위해 태닝을 한 것. 아들 걱정에 새카맣게 타들어간 중식의 속을 반영한 피부 색이다.

- 촬영 중 천우희와 함께 이수진 감독도 눈썹을 밀었다.

청테이프에 눈썹이 뜯긴 련화. 그를 연기하기 위해 천우희는 눈썹을 밀어야 했다. 눈썹을 밀기 전 천우희는 “촬영장에서 혼자 눈썹을 민 채 있으면 외로울 것 같다”며 이수진 감독에게 “같이 눈썹을 밀어달라” 말했고, 이수진 감독은 망설임 없이 눈썹을 민 채 등장했다. 천우희는 개봉 후 인터뷰를 통해 눈썹 에피소드를 언급하며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허투루 연기하면 안 되겠다, 진짜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 극 중 련화는 일부러 '리얼한' 연변 사투리를 썼다.

<우상>은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듣기 어려운 연변 사투리가 나열되는 영화다. 이를 연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천우희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 천우희는 “영화적으로 표현되는 단어를 쓸 것인가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리얼함을 추구하기 위해 실제 현지인들의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쉽지 않았던 촬영

- 설경구는 절뚝거림을 표현하기 위해 신발 속에 병뚜껑을 넣고 촬영을 진행했다.

극 중 중식은 다리를 저는 캐릭터다. 이를 실감 나게 연기하기 위해 설경구는 신발 속에 병뚜껑을 넣고 촬영을 진행했다. 절뚝거리는 정도에 따라 각각 다른 크기의 병뚜껑을 넣고 촬영에 임했다고. 그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 천우희는 촬영 중 공황장애를 겪었다.

<우상>의 컨테이너 신은 천우희의 고생이 고스란히 녹아든 장면이다. 영하 15도의 날씨였던 한겨울, 5일 내내 12시간 촬영에 임해 만들어낸 장면이라고. 천우희는 인터뷰를 통해 “사실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단 생각에 촬영 내내 청테이프를 눈에 감은 채 버텼는데, 나중엔 눈이 짓물렀다” “마지막 촬영 땐 공황장애 같은 게 오기도 하더라”라고 밝히며 힘들었던 촬영을 회상했다.

- 설경구는 첫 촬영 신을 스무 번 넘게 촬영했다.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병원에 도착한 중식. 관객이 마주하는 중식의 첫 모습이다. 실제로 설경구의 첫 촬영 장면이기도 했는데, 이 장면만 스무 번 넘게 촬영했다고. 새벽에 시작해 해가 뜨고 나서야 마무리됐던 첫 촬영을 회상하며, 설경구는 “이수진 감독은 장면도 다르게 여러 번 촬영하는 스타일이다. 근래에 보기 드문 집요함을 지녔다”고 털어놨다.


<우상>에 담긴

이런저런 의미들

- 설경구가 연기한 '중식', 그의 아들 '부남'의 이름에 담긴 뜻은?

이름 하나도 허투루 짓지 않았다. 설경구가 연기한 중식은 점심의 뜻을 지녔다. 아침을 먹을 여유는 없고, 허겁지겁 욱여넣어야 하는 점심 같은 삶을 뜻하는 팍팍한 이름이다. 그의 아들 부남은 '아들이 결혼하여 유부남이 되었으면' 하는 중식의 바람을 담은 이름이다.

- 영화 제목이 <우상>인 이유는?

각자의 목적을 맹목적으로 좇는 인물들은 담은 영화 <우상>. 이수진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를 통해 “꿈이나 신념 같은 것이 너무 맹목적이면 정말 무섭게 변하지 않을까. 그것 또한 우상이라는 의미로 제목을 '우상'으로 가져갔다”고 밝혔다.

- 감독이 직접 언급한 인물들의 '우상'은?

불친절한 영화라고 느낀 관객을 위해 친절한 감독의 답변을 덧붙인다.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맹목적으로 좇는 그들의 우상은 뭘까. 먼저 명회의 우상은 꿈이다. 그는 꿈을 좇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중식의 우상은 혈육이다.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중식의 사랑은 집착으로 변질돼 보이기도 한다. 우상을 가지는 것조차 사치인 캐릭터, 련화의 우상은 생존이라고 밝혔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