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개봉 20주년이 됐다. 1999년 3월 31일 미국에서 개봉했다. 국내에서는 1999년 5월 15일 개봉했다. 당시 <매트릭스>는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얻었다. 이후 2000년대 영화계는 <매트릭스>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SF영화 장르의 문법, 액션 연출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미국 시사회 당시 <매트릭스>의 제작자인 조엘 실버는 <매트릭스>를 두고 “21세기 첫 번째 영화”라고 말했다. <리쎌웨폰>, <다이하드> 시리즈를 성공시킨 그의 말은 사실이 됐다. 세기말의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매트릭스>는 분명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알린 영화로 기능했다. 그렇기에 20년이 지난 지금, <매트릭스>가 영화계에 남긴 유산을 찾아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중력을 거스른 액션의 탄생

<매트릭스>의 가장 놀라운 시각적 쾌감은 중력을 거스르는 액션 연출에 있다. 당시 극장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가 공중에 붕 뜨고 잠시 멈춘 상태에서 카메라가 움직이는 듯한 장면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놀란 것처럼 말이다. 또 총알을 피하는 장면은 유행처럼 다른 영화에 쓰였다.

<매트릭스>의 촬영감독 빌 포프는 액션 연출에 있어서 다양한 촬영기법을 도입했다. 그리고 이를 유행시켰다. 위에 얘기한 장면의 촬영에 쓰인 타임슬라이스(Time Slice) 기법이 대표적이다. 수많은 카메라를 다양한 각도로 설치하고 촬영한 영상을 후반작업으로 연결하는 방법이다.


홍콩에서 온 와이어푸 액션

<매트릭스>의 액션 연출에 또 다른 공로자는 홍콩에서 온 원화평 무술감독이다. <취권>, <사형도수> 같은 1970년대 성룡 영화의 무술감독이나 감독으로 유명한 그는 <매트릭스>에서 이른바 와이어푸(wire-fu)를 시도했다. 와이어푸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홍콩 무협영화의 와이어(wire) 액션과 쿵푸(kung fu)의 합성어로 와이어를 사용한 쿵푸 스타일 액션 연출법이다. <매트릭스>에서 네오와 스미스(휴고 위빙) 요원의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이 액션을 확인할 수 있다.


VFX 액션의 서막

앞서 언급한 <매트릭스>의 많은 액션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접목된 VFX(visual effects)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이다. 과거 1970~80년대 홍콩 무협영화를 보면 와이어가 선명히 보이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매트릭스>에서 와이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후반작업을 말끔히 지워냈기 때문이다. 네오가 총알을 멈추게 하는 장면의 경우 <공각기동대>(1995)에서 본 장면이긴 하지만 그것을 실사 영화로 옮긴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발전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최신 기술을 가장 먼저 적용한 영화가 <매트릭스>다. 이후 CG가 없는 액션 연출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채드 스타헬스키와 키아누 리브스의 만남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존 윅 3: 파라벨룸>

채드 스타헬스키는 지금 <존 윅> 시리즈의 감독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매트릭스>에서 그는 네오의 스턴트 더블, 키아누 리브스의 액션 대역배우였다. <매트릭스>의 액션과 지금 <존 윅>의 액션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채드 스타헬스키와 키아누 리브스가 <매트릭스>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존 윅> 시리즈에서 권총을 사용하는

쿵푸 스타일의 액션 연출법인 일명 건푸(gun-fu)를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가상현실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

<매트릭스>는 가상현실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지 영화평론가들만의 몫이 아니었다. 당시 수많은 철학자들이 <매트릭스>를 분석 대상 텍스트로 삼았다. 이들은 가상과 실재에 대해 논했다. 사실 이런 주제는 이미 <공각기동대> 등의 재패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었다. 또 네트워크라는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니까 <매트릭스>는 이런 일본 애니메이션의 그늘 아래에 있다. 다만 재패니메이션이 소위 마니아들의 하위문화였다면 <매트릭스>는 워너브러더스가 배급한 세계시장을 겨냥한 영화였기에 그 파급력이 엄청났다.


평범한 사람의 영웅 신화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한 토마스 앤더슨, 즉 네오는 새로운 유형의 영웅이다. 액션을 내세운 영화의 주인공은 대체로 전직 특수부대 군인이거나 비밀 국가기관의 요원이었다. 토마스 앤더슨은 해커였다. 네오는 해커로 활동하는 아이디였다. 그는 인류를 구원할 디 원(The One)이라고 영화 속에서 불렸다. 사실 그는 육체적으로 뛰어나지 않은 애니원(Anyone)이었다. 이 점이 기존 액션영화와 <매트릭스>가 다른 점이다. 그는 과거 무협영화들처럼 기나긴 수렵의 과정을 거치지도 않았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주짓수, 태권도, 쿵푸 등 무술 정보를 다운로드 받았다. 그렇게 그는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 앞에서 “나는 쿵푸를 안다”(I know Kung fu)고 말하게 된다. 실제로는 키아누 리브스가 4개월여의 무술훈련을 받긴 했다. <매트릭스>의 영웅 탄생 과정은 이후 많은 영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평범한 사람의 영웅 탄생이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외전 애니메이션의 접목

<매트릭스>는 3부작으로 끝이 났다. 그 세 편의 영화 중간 <애니매트릭스>가 존재한다. <매트릭스 2: 리로디드> 개봉 이전 공개된 이 애니메이션은 총 9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매트릭스> 이전에는 이런 시도를 보기 힘들었다. 참고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빌 - 1부>(2003)에서 실화 영화 도중에 애니메이션 파트를 삽입하는 시도를 했다.


빨간약과 파란약

<매트릭스>의 수없이 유명한 장면 가운데 모피어스가 빨간약과 파란약을 고르게 하는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장면은 하나의 유행어처럼 인터넷에서 사용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네오는 빨간약을 먹고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인터넷에서는 “빨간약을 먹었다”라는 표현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DVD 시대의 시작

<매트릭스>는 미국 최초로 DVD 판매 100만 장을 넘긴 영화다. 이는 약 3개월 전에 개봉한 역대 전 세계 박스오피스 2위 영화인 <타이타닉>을 뛰어넘는 성과다. 이와 같은 DVD 판매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국내의 상황만 놓고 보자면 1990년대 중반, 부가판권시장은 비디오대여점의 시대였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보면 DVD라는 미디어 보급에 <매트릭스>는 많은 부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매트릭스>는 영화사에 꼭 기억될 영화지만 영화 역사상 최고의 영화 순위 상위권에 올라갈 영화는 아니다. 개봉 당시에도 일부 비평가들은 혹평을 남겼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다만 <매트릭스>가 남긴 유산들, 이후 영화 생태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 없을 거라 믿는다. <매트릭스>는 비평의 관점에서 본 영화적 완성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현상이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세기말이라는 시대가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더 크게 만들었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