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기적의 착륙 예고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35번째 연출작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하 <설리>)이 지난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그의 연출작 가운데 가장 높은 첫 주말 흥행수익인 3550만 달러를 기록했다. <설리>의 범상치 않은 성적에,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해 5억4740만 달러 수익을 올린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영광이 재연될까? 하는 기대도 피어나고 있다. 9월 12일 오전, 국내에 언론시사회로 공개된 <설리>의 리뷰를 전한다.


Based on a true story
체슬리 설렌버거 / 2009년 사고 당시 현장

이스트우드는 실화에 푹 빠져 있다. 최근 10년간 발표한 10편의 영화 가운데, <그랜 토리노>(2008)와 <히어 애프터>(2010)를 제외한, 8편이 실화로부터 비롯됐다. 전쟁 용사(<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아메리칸 스나이퍼>), 아이를 잃은 싱글맘(<체인질링>), 공무원(<인빅터스>, <J. 에드가>), 뮤지션(<저지 보이즈>) 등 주인공들의 면면 또한 다양하다. 이번 영화 <설리>는, 2009년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추락 위기에 놓인 US 에어웨이스 1549편 여객기를 발군의 실력과 사명감으로써 끝까지 책임져 155명의 승객을 모두 구해낸 비행기 조종사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스트우드와 처음으로 작업한 톰 행크스가 설렌버거 기장을 연기했다.


'비행기 사고'보다 더 중요한 것

러닝타임 96분. <설리>는 ‘가장 짧은’ 이스트우드 영화다. 영화는 비행기가 도심 한가운데로 불시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549편 여객기의 불시착 한 달 후, 설렌버거가 시달리는 꿈이다. 그는 모든 승객을 멀쩡히 구한 뒤에도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영화 속에서 설렌버거와 그의 아내는 전화로만 소통한다) 채 국가운수안전위원회가 제소한 청문회에 참석해야 한다. 위원회는 새떼와 부딪힌 1549편 여객기의 엔진이 모두 고장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안전한 경로가 아닌 허드슨강으로의 착륙이 오판이었다고 다그친다. <설리>는 국민영웅을 대접을 받고 있지만 청문회를 앞두고 불안에 떠는 자신을 다잡아야 하는 설렌버거의 처지에 집중한다. 설렌버거가 활약하는 비행기 사건이 서사의 중심이라고 예상했다면, 그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갈 것이다. 24분 만에 마무리된 여객기의 소동은, 서사의 가운데와 끄트머리에 놓여, 가능한 한 간결하게 혹은 차분하게 그려졌다. 이를테면 죽음을 앞두고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울부짖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광경은 최대한 배제돼 있다. 그 대신, 묵묵히 매뉴얼을 참조하고 결국 본능에 따라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마는 두 조종사를 오래 비춘다.

이스트우드가 <설리>를 통해 말하려는 바는 명확하다. 능숙한 비행술과 민첩한 판단력 그리고 모든 승객이 살았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안도의 미소를 짓는 마음씨까지, 설렌버거 기장에 대한 경외가 첫째다. 비행기 안에 힘을 합쳐 서로의 생명을 구한 155명의 승무원과 승객을 조명하려는 의지 또한 분명하다. 어마어마한 공에도 불구하고 설렌버거를 흠집내려는 국가운수안전위원회에 대한 비판도 두드러지긴 하지만, 이는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방대한 데이터의 한계를 꼬집는 기능이 더욱 두드러진다. 결국 <설리>에서 가장 특별하게 남는 지점은, 국가권력이 들이미는 과학이 설렌버거 기장의 ‘본능'과 실제 사건이 벌어진 '현장'의 역동적인 가능성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주는 데에 있다. 현장을 통솔하는 영화감독이자 기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해야 하는 헬리콥터 파일럿이기도 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이기 때문에 가능한 테마였으리라.   


아이맥스 카메라의 활용

<설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두 신을 제외하고) 모든 장면이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됐다.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인지라, 추락 위기에 놓인 US 에어웨이스 1549편의 아비규환을 스펙터클하게 그리기 위해 쓰인 걸까 생각하게 된다. 물론 거대하게 담긴 비행기 안의 혼돈이 더욱 확연하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비행기 신은 <설리>의 일부에 불과하다.
   
아이맥스 카메라의 가장 큰 장점은 고도의 선명함이다. <설리>에 사용된 아이맥스 카메라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은, 피사체의 '표정'을 바라볼 때다. 2000년대 들어 줄곧 이스트우드와 작업해온 촬영감독 톰 스턴은 이 카메라를 통해 클로즈업이 아닌 미디움숏에서도 인물들의 얼굴에 새겨진 감정을 선명하게 잡아내고자 했다. 불시착의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되 심문을 받으며 불안에 시달리는 설렌버거 기장은 물론, 든든하게 그 곁을 지키는 부기장 제프 스카일스(아론 에크하트), 사건 내내 침착한 태도로 기내를 통제하는 승무원, 허드슨강에 무사히 착륙한 후 여객기를 빠져나오는 150명의 승객들 등 영화 속 인물들의 저마다 다른 표정이 보다 높은 해상도를 통해 비춰진다. 더불어 이 모든 과정을 굽어보는 듯한 도시 뉴욕의 넉넉한 풍경까지, 저 먼 곳을 찍어도 열화되지 않는 해상도 덕을 톡톡히 봤다. 때문에 아이맥스 관람을 권한다. 선명함은 물론, 화면비도 아이맥스 버전은 1.9:1, 일반 버전은 2.39:1로 각자 다르다.


톰 행크스의 얼굴
<캡틴 필립스>와 <설리>의 톰 행크스

90년대 미국인을 대표하는 얼굴이었던 톰 행크스는 이번이 두 번째 실존 인물 연기다. 첫 번째는 <캡틴 필립스>(2013)의 리차드 필립스 선장이었다. 필립스 선장과 설렌버거 기장 모두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지켜야 하는 책임을 걸머진 사람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두 캐릭터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매순간 불안한 얼굴로 해적들과 대치해야 하는 필립스와 달리, <설리>의 톰 행크스가 드러내는 감정은 때마다 다채롭다. 톰 행크스는 청문회를 앞두고 불안에 시달리고 그것을 가까스로 억누르는 설렌버거의 눈빛과 자잘한 제스처뿐만 아니라 청문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또박또박 피력할 때의 확신 가득한 얼굴 또한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이처럼 모든 순간에 미세하게 다른 감정을 새겨놓는 톰 행크스의 얼굴이 있었기에, 항공관제소의 제안을 거스르고 허드슨 강에 착륙하기로 결정하는 ‘본능’의 순간이 이미지라는 실체를 갖게 된다. 부디 아이맥스 스크린을 통해 톰 행크스가 지어보이는 갖가지 표정을 속속들이 발견하길 바란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