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천시장 그리고 골목
서대문독립공원을 한 바퀴 걸어 나온 후 안산에 오르기 위해 영천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가게가 눈에 띄었다. 영천시장 대표 먹거리로 유명한 꽈배기 집이다. 군침 넘어가는 은밀한 소리를 들었을까. 배성우가 소리친다. “아, 꽈배기 드실래요?”
=아직 4개에 1000원일 거예요. 엄마랑 동생(배성재 아나운서)이 유명하다고 해서 왔었는데, 정말 맛있더라고요. 늦게 오면 매진이라 못 먹는데, 저도 오랜만에! (주문을 하자, 설탕 옷을 입은 뜨끈한 꽈배기 4개가 비닐봉지에 담겼다.)
-영천시장엔 자주 오시나요?
=이전엔 종종 왔어요. 친구들이 하도 불러내서. 가까이에 사니까 불러내기 편했던 거죠. 말 나온 김에 영천시장 안으로 들어가 보죠. 최근 몇 년간 많이 바뀌었어요. 이전에 없던 지붕도 생기고, 신식이 됐죠.
-술꾼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네요. 들어오자마자 술 생각이. (웃음)
=제가 연극할 땐 술을 많이 안 마셨어요. 오히려 영화하면서 더 마시고 있어요. 영화는 많은 사람과 소통도 더 해야 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게 조금 더 강하니까요. 연극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연극은 배우가 혼자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게 조금 더 많죠. (시장을 빠져나와 으슥한 골목으로 진입했다.) 저는 골목을 좋아해요. 길은 어디로든 통하잖아요? 여기에서 걸어서 광화문-시청도 자주 가요.
-서대문으로 오기 전엔 어디에 사셨나요.
=거기가 재미있는 동네인데 가회동이라고, 한옥에서 살았어요. 거긴 다 한옥이에요. 조용하고 고즈넉하죠. 가회동에서 넘어가면 바로 삼청동이고요. 그때는 그 지역이 지금처럼 번화하지 않았어요. 인사동도 찻집이랑 미술품 파는 집 외에는 없었을 때고요.
-고향이 어디세요?
=서울이요. 스무살까지 강남에서 살았어요. 부자라서 산 건 아니고요. 강남땅이 저수지일 때 살아서. (웃음) 그때 (땅을) 좀 사 둬야 했는데 우리 집이 비싼 땅을 피해 다니는 재주가 있어요. 강남이 뜨기 전에 가회동으로 갔고, 가회동과 삼청동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기 1년 전에 여기로 또 이사를 왔지 뭐예요. (일동 웃음)
-서대문 떠나기 1년 전에 알려주세요. 그때 제가 여기로 이사를….
=현명하시네요. 그때 서둘러 투자해 보시면 아마도~! (웃음)
-강남에서 보낸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있죠? 제가 그 학교 모델인 상문고등학교 출신이에요. 영화가 다룬 시절보다 조금 뒤에 다녔죠. 일본식 교복을 입었던 세대와 지금의 교복 세대 사이에 잠깐 교복을 안 입은 세대가 있었는데, 제가 또 그 세대예요. 사복이라고 해서 부러워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게 좋지만은 않아요. 사복 나름의 규율이 있어서 허리띠 하나도 굉장히 엄격했거든요. 걸리면 아침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죠. 우리 학교가 또 엄격하기로 유명했어요. 그 학교는 무조건 다른 학교보다 등교가 30분 빨랐어요. 그래야 대학 갈 수 있다고. 화장실 청소 당번으로 걸리면 안 그래도 빠른 등교 시간보다 더 빨리 가야 했으니, 죽을 맛이었죠. 그땐 또 도시락을 싸는 시대라, 우리 어머니는 그럼 더 빨리 일어나야 하셨어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웃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요?
=(거두절미) 싫은데요? 하하. 그땐 또 폭력의 시대였으니까. 영화에도 나오잖아요. 학교가 학생들을 얼마나 획일적으로 만드는가에 대해.
-획일적인 교육에 순응하는 학생이셨나요? 아니면 나름 반항하는 학생?
=그냥 내려놓은 학생! (웃음) 열심히 공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심히 논 것도 아니고, 어중간했어요. 영화 보러 극장만 다녔죠.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저는 영화와 농구가 다예요. 운동을 즐겨서 운동으로 체대를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죄송하지만 운동신경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은데, 잘못 생각했군요. (웃음)
=하하. 운동을 꽤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몸이 힘들죠. 2~3년 전인가. 대학생들과 농구를 했어요. 초반엔 제가 가볍게 다섯 골을 몰아서 넣었어요. ‘아직 죽지 않았어!’ 파이팅이 넘쳤죠.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숨이 안 쉬어지는 거예요. 현기증도 나고. 누가 공 주려고 “성우야~” 부르면, “주지 마! 주지 마!” 소스라쳤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부모님, 동생과 함께 살고 계시죠? 남자가 나이가 들면 자기 영역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고 들었는데, 독립에 대한 생각은 없으신가요.
=맞아요. 이 인터뷰 준비하면서 그 생각 많이 했어요. ‘나가야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일동 웃음) 가족들이 집에서 못 쓰는 건 다 제 방으로 몰아넣어요. 종이 쪼가리, 안 입는 옷 등등. 도저히 제 방을 보여드릴 수가 없더라고요.
-일찍 일어나는 게 싫어서 배우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몇 시에 일어나요?
=최대한 늦게 일어나요. 잘 수 있을 때까지 자는 거죠. 자는 것도 대중이 없어요. 역시 최대한 늦게 자는 편이에요.
-야행성이시군요. 집에 있을 땐 어떻게 시간을 보내세요?
=멍하니 그냥 있지는 않아요. 보거나, 먹거나, 듣거나, 뛰거나, 읽거나… 외로움은 안 타는데, 심심함은 많이 느끼는 편이라 뭐든 하죠.
-혹시 외로움을 심심함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자기 암시를 하는 거죠. (웃음)
=아하~! 외로움이 오기 전에 차단한다? 그럴 수 있겠네요. 가끔 지방 촬영 가서 숙소에 혼자 있으면 그런 생각을 해요. ‘혼자 살면, 이 외로움을 어떻게 견디지?’ 저는 아마 독립하면 집에 안 붙어 있을 것 같아요. 외로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