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

2019년 제72회 칸 영화제가 시작됐다. 5월 14일부터 25일까지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를 심사위원장으로 전 세계 각국의 가장 주목받는 영화 열전이 펼쳐진다. 경쟁 부문에는 모두 21편의 영화가 올라와 있는데, 감독 이름만 들어도 쟁쟁하기 이를 데 없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짐 자무쉬부터 페드로 알모도바르, 켄 로치, 테렌스 맬릭, 마르코 벨로키오, 다르덴 형제, 아르노 데스플레생, 자비에 돌란과 봉준호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까지 그 어느 때보다 화제작들이 즐비하다. 거기에 예시카 하우스너, 일리아 술래이만, 압델라티프 케시시, 디아오 이난, 라지 리, 마티 디옵 등 중견과 신예가 잘 조화된 리스트는 기대감을 품게 만든다.

다만 예년에 비해 아시아 영화들의 비중이 줄고, 여전히 넷플릭스 영화들을 거부해 초청이 유력했던 몇몇 작품들이 제외된 건 일말의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 경쟁 부문 외에도, 주목할 만한 시선과 비경쟁 부문, 특별 상영에 클로드 를르슈나 니콜라스 빈딩 레픈, 가스파 노에, 덱스터 플레처, 아벨 페라라와 베르너 헤어조크,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등 높은 지명도를 가진 감독들의 신작들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그리고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부문이 바로 2010년 창설돼 2012년부터 수상하기 시작한 “칸 사운드트랙 어워드”다. 일종의 특별상 개념으로 경쟁 부문에 출품된 작품들에 한정해 오리지널 음악을 작곡한 영화음악가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그간 삼대 영화제에선 영화음악을 비롯한 기술상 부문에 대해 인색했던 게 사실이다. 베니스 영화제에선 기술공헌상에 해당하는 오젤라상을 90년대 말 몇몇 영화음악가들이 수상한 경우가 있었고, 베를린 영화제에선 2002년부터 은곰 음악상을 신설했지만 얼마 못가 2007년을 끝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칸 영화제는 기술상에 해당하는 벌컨상이 있지만 음악 부문으로 수상한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칸 사운드트랙 어워드에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하다. 여전히 영화제의 공식적인 상에 포함되진 않지만, 언론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경쟁 부문에 오른 영화들의 음악에 대해 본격적으로 언급하고 포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사운드트랙 표지

마크 스노우

칸 사운드트랙 어워드는 지금까지 총 7회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2012년 1회 수상작은 프랑스의 거장 알랭 레네가 연출하고 마크 스노우가 음악을 맡은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였다. 우리에겐 <엑스 파일> 테마로 더 잘 알려진 영화음악가 마크 스노우는 알랑 레네의 마지막 음악 동반자였다. 이 작품을 포함해 <마음>과 <잡초> 그리고 유작인 <사랑은 마시고 노래하며>까지 후기작 네 편을 함께 했다. 삶과 예술, 연극과 영화, 형식과 구조를 넘나들며 새로운 실험을 멈추지 않는 노장의 끝없는 도전에 마크 스노우는 파격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지원했다. 알랭 레네에 대한 예우이자 베테랑 작곡가의 노고를 치하하는 뜻깊은 선택이었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사운드트랙 표지

요셉 반 비셈

2013년 2회 수상작은 짐 자무쉬가 연출하고 류트(유럽의 고악기) 연주자인 요셉 반 비셈과 (자무쉬의 밴드이기도 한)스쿼럴이 음악을 맡은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였다. 이 염세적이고 나른한 뱀파이어 영화에 묘한 활력, 웃음과 이국적이면서도 고답적인 분위기를 선사하는 건 바로 뛰어난 올드 팝들의 선곡과 ‘류트’라는 악기가 앰비언트 록 음악과 반응한 화학작용 덕분이었다. 감독인 동시에 음악가인 짐 자무쉬는 이미 2012년에 요셉 반 비셈과 두 장의 앨범을 같이 발표한 사이이기도 했다. 사이키델릭하면서도 고풍적인 소리들은 영화가 탐미하는 고전에 대한 향수와 영원불멸의 삶, 애상을 자극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냈다.


<맵 투 더 스타> 사운드트랙 표지

하워드 쇼어

2014년 3회 수상작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연출하고, 그의 음악적 동반자인 하워드 쇼어가 음악을 맡은 <맵 투 더 스타>였다. 79년 <브루드>를 시작으로 이 영화까지 무려 15편의 작품에서 감독과 영화음악가로 호흡을 맞춰온 그들의 관계는 사실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은 적이 없다. 극단적인 신체 변형을 통해 인간이 만든 문명의 폭력성을 그리고, 내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시도하는 그들의 아방가르드하고 독립적이며 실험적인 결과물들은 그저 기괴하고 난잡한 앙상블 정도로만 해석했을 뿐이다. 비로소 이 작품을 통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에 하워드 쇼어의 색다른 음악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냈는지 인정받은 게 아닐까.


(왼쪽부터) <자객 섭은낭> 사운드트랙 표지, 임강

2015년 4회 수상작은 허우 샤오시엔이 연출하고 임강이 음악을 맡은 <자객 섭은낭>이었다. 허우 샤오시엔이 무협 영화를 연출한다는 것 자체부터 놀라웠지만, 보고 나면 독특한 스타일과 미장센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바로 임강의 음악이다. 지아장커와 허우 샤오시엔 작품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한 그의 음악은 세련되고 현대적인 그간의 전자음악에서 벗어나 민속적이고 자연적인 사운드를 펼쳐내며 영화의 감흥을 더욱 증폭시킨다. 백파이프와 봉바르드, 고금과 피리, 북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이국적인 소리는 원치 않은 길을 가야 했던 섭은낭 내면의 소리이기도 하다.


<네온 데몬> 사운드트랙 표지

클리프 마르티네스 (오른쪽)

<굿 타임> 사운드트랙 표지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

2016년 5회 수상작은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연출하고 클리프 마르티네즈가 음악을 맡은 <네온 데몬>이었고, 2017년 6회 수상작은 샤프디 형제가 연출하고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가 음악을 맡은 <굿 타임>이었다. 두 작품을 묶어서 소개하는 건 둘 다 7-80년대 신디 톤을 떠올리게 할 만큼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전자음악이기 때문이다. 두 음악가가 맡은 음악은 다른 전혀 색채에,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일렉트릭의 영화음악이 영화의 내용이나 주제를 압도하는 형식과 리듬을 부여해준다는 점에서 묘하게 닮았다. 블링블링함 속에서 광기 어린 쿨 뷰티를 섬뜩하게 표출하는 <네온 데몬>이나 황폐한 엠비언트에서 휴머니즘을 끄집어내는 반전의 미학은 두 사운드트랙의 백미.


<레토> 사운드트랙 표지

로만 빌릭

2018년 7회 수상작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연출하고, 러시아를 대표하는 록밴드 ‘즈베리’의 로만 빌릭과 게르만 오시포프가 음악을 맡은 <레토>다. 타계한지 한세대가 지났음에도 지금까지 러시아에서 전설로 회자되고 있는 ‘키노’의 보컬 빅토르 최의 얘기를 다룬 작품이다. 마이크 역으로 출연까지 했던 로만 빌릭은 ‘키노’의 음악을 단순히 복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시절의 공기와 유행, 낭만까지도 생생히 포착해냈다. T.렉스와 벨벳 언더그라운드, 데이빗 보위는 물론, 이기 팝과 루 리드, 토킹 헤즈의 커버 곡과 키노의 음악들을 들려주는 탄탄한 사운드트랙은 음악 영화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본분이 뭔지 새삼스레 자각하게 만들어준다.


(왼쪽부터) 제임스 뉴턴 하워드, 알레르토 이글레시아스, 조지 펜톤

(왼쪽부터) 니콜라 피오바니, 정재일

2019년 8회째를 맞이하는 올해 후보로 오른 작품은 전체 21편 중 11편이다. 쟁쟁한 감독들 못지않게 영화음악가들의 면면도 가히 일품이다. 할리우드 영화음악 장인 제임스 뉴턴 하워드가 테렌스 맬릭의 <히든 라이프> 음악을 맡았으며, 페드로 알모도바르 곁에 언제나 함께 하는 알레르토 이글레시아스가 그들의 11번째 협업작 <고통과 영광>을 선보인다. 무려 16번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켄 로치와 조지 펜톤 콤비의 <쏘리 위 미스드 유>나 71년부터 간헐적으로 인연을 이어온 마르코 벨로키오와 니콜라 피오바니의 <밀고자>도 강력하다. <옥자>로 이미 2017년에 한차례 후보에 올랐던 정재일의 두 번째 도전이 될 <기생충>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왼쪽부터) 그레고리 헷젤, 딕콘 힌크리프, 파라 원

(왼쪽부터) 파티마 알 카디리, 장-미셸 블라이스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탄탄한 실력의 중견들도 눈에 띈다. <그을린 사랑>의 음악을 맡았던 그레고리 헷젤의 <루베, 빛>과 <윈터스 본>의 음악을 맡았던 딕콘 힌크리프의 <프랭키>, 셀린 시아마 감독을 전담하는 파라 원의 <불타는 여인의 초상>들이 바로 그런 작품들이다.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일렉트로닉 음악가인 파티마 알 카디리가 아프리카계 여성 최초로 경쟁 부문에 오른 마티 디옵과 함께 한 <아틀란티크>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장-미셸 블라이스가 자비에 돌란과 함께 한 <마티아스와 막심>은 젊은 패기와 열정의 음악을 들려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일하게 밴드로 이름을 올린 핑크 노이즈가 <레 미제라블>의 음악을 맡았다.

수상자는 칸 폐막식이 열리는 25일 발표된다. 어떠한 작품이 여덟 번째 ‘칸 사운드트랙 어워드’를 차지할지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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