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분열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

6월 초 전세계에서 개봉하는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폭스가 디즈니로 인수되기 전 개봉하는 마지막 <엑스맨> 시리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물론 앞으로 제작될 <엑스맨> 시리즈의 미래에 대한 영화계, 미디어, 팬들의 관심이 상당하다. 이번 영화는 그동안 앙상블 캐릭터로 묘사되었던 진 그레이(소피 터너)의 얼터에고 ‘다크 피닉스’라는 캐릭터를 정면에 내세운다. 성격이 온화하고 주변 사람들을 먼저 보살펴왔던 진 그레이는 어린 시절 겪은 교통사고로 자신의 잠재력을 알게 된다. 그 후 프로페서 X(제임스 맥어보이)의 지도를 받아 엑스맨으로 성장하며 동료 돌연변이들과 새로운 가족을 결성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엑스맨은 조난된 우주선의 비행사들을 구조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진은 태양에서 급격히 분출된 섬광을 맞고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얻게 된다. 그녀의 과격하고 이상스러운 행동으로 엑스맨 내부에 분열이 시작되고, 다크 피닉스로 변한 진의 힘을 이용하려는 미스터리한 외계인(제시카 채스테인)까지 등장한다.


미국 사회를 연상시키는 부분들

지난 2월 초 뉴욕에서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도입부 액션 장면인 12분가량의 푸티지와 트레일러가 공개됐다. 이 푸티지는 미스틱(제니퍼 로렌스)을 필두로 한 엑스맨이 조난당한 우주비행사들을 구조하는 장면이 주를 이뤘다.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의 우주선이 조난당하자 미국 대통령은 프로페서 X에게 직접 전화로 도움을 요청한다. 프로페서 X는 미스틱과 진을 비롯한 일군의 엑스맨을 구조에 투입시킨다. 다른 엑스맨 멤버들이 비행사들을 구조하는 동안 심하게 손상된 우주선을 부서지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진은 갑자기 태양에서 솟구친 섬광을 흡수하게 된다. 사망한 것으로 보였던 진은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엑스맨은 우주비행사들과 지구로 돌아온다. 귀환을 환영하는 인파들 속에 구조팀의 리더를 맡았던 미스틱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 미스틱은 프로페서 X에게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미션에 엑스맨을 파견한 것에 강하게 항의한다. 하지만 프로페서 X는 “아무리 위험해도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어야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돌연변이 전체가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스틱은 그런 프로페서 X에게 “당신은 당신의 이름을 알리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며 “남자를 구조하는 것은 늘 여자들인데 왜 엑스우먼이라고는 부르지 않느냐”며 냉소적인 말을 남긴 뒤 자리를 떠난다. 곧이어 상영된 트레일러에서는 진이 다크 피닉스가 되는 과정과 이에 대항하는 엑스맨과의 액션 장면, 그리고 엑스맨 멤버 내부의 균열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아직 캐릭터의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제시카 채스테인의 외계인 캐릭터는 창백한 얼굴에 플래티늄에 가까운 금발 머리 때문에 초자연적인 이미지를 하고 있었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감독은 사이먼 킨버그다. 그는 과거 <엑스맨> 시리즈의 각본과 제작을 맡았다. 전작의 연출을 맡았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연출이 불가능해 지자 시리즈에 대한 지식이 많고 기존의 배우 및 스탭과 작업한 경험이 있는 킨버그가 감독으로 내정됐다. 기존 <엑스맨> 시리즈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는 이번 영화에 대해 킨버그 감독은 “코믹북에 더 근접했고, 개인적으로도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일반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는 이야기 구조나 캐릭터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생각하지만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진의 심정을 이해하면서 글을 썼다”고 말했다. 킨버그 감독은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 항상 궁금했다”라며,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진의 캐릭터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진 그레이 역을 맡은 소피 터너와 함께 캐릭터의 정신상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방대한 리서치와 간접 경험을 시도했으며, 그 결과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고. 진 그레이/다크 피닉스를 그릴 때는 빛과 어둠처럼 선과 악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분열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지난 몇년간 미국이 심각하게 양분화되는 것을 지켜봐온 킨버그 감독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현재의 미국 사회를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현실과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할리우드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강한 여성 캐릭터들이 중심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는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킨버그 감독의 강한 의지에서 비롯됐다. 그에 따르면 여기엔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킨버그 감독은 홀어머니에게서 성장했는데, 40살 넘어 그를 낳은 어머니는 40대 후반에 박사학위를 받고, 50대 후반에 UCLA 대학교수가 됐다. 그는 “개인적으로 어머니처럼 강한 여성상에 끌려왔고, 많은 훌륭한 여성들과 친구가 됐고, 그들은 내 스승이 되었다”며 강한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쓰게 된 개인적인 이유를 설명했다. 정치적인 이유는, 그렇게 강한 어머니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같은 직책의 남성보다 낮은 보수를 받는 것을 알게 된 후 세상에 만연한 성차별에 저항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성 팬이 다수인 주류의 히어로영화에 강한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을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40%만이라도 여성 관객이 찾아준다면 정말 대단한 성과일 것 같다.” 이 작품에서 미스터리한 외계인 역할을 맡은 제시카 채스테인 역시 킨버그 감독의 이런 생각이 마음에 들어 함께 작업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 관계자들은 등장인물 중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제시카 채스테인의 미스터리한 캐릭터에 대해 일절 함구했다. 채스테인이 맡은 역할은 진의 새로운 파워를 컨트롤하려는 외계에서 온 악역 정도로 알려졌다. 채스테인은 물론 다른 배우들과 킨버그 감독까지도 인터뷰 중 자세한 설명을 피했다. 킨버그 감독은 “요즘 수없이 많은 경로를 통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사전에 노출된다. 예전에는 내용을 전혀 모르고도 즐겁게 영화를 관람했다.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비밀에 부쳐 영화에 대한 재미가 반감되는 것을 막고 싶다. 새로운 캐릭터가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주기 때문에 관객이 영화를 새로이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과 ‘울버린 시리즈’ 리부트설

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여러 캐릭터 시리즈의 미래가 궁금하다는 기자들의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킨버그 감독은 “<엑스맨> 시리즈의 각본, 제작, 연출에 관여를 해서인지 가능하면 이 시리즈에 계속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물론 킨버그 감독은 <데드풀>의 제작자이기도 하지만 <엑스맨>은 그보다 더 각별한 시리즈라며. <엑스맨> 리부트, 특히 울버린 캐릭터의 리부트 가능성에 대해서도 “제임스 본드가 그랬던 것처럼 불가능은 없다”라는 생각을 전했다. “울버린이나 아이언맨, 데드풀 같은 인기 캐릭터를 지금 당장 새롭게 캐스팅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5~10년 후에는 새로운 울버린이 가능할 것이고, 20년 후에는 새로운 데드풀도 가능하지 않겠나?”


<엑스맨: 다크 피닉스> 배우 제시카 채스테인 인터뷰

“차별하지 않는 이들과 작업하는 것이 좋다”

이번 작품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상상해봐라. 오디션에서 “(초능력으로) 이 의자를 저쪽으로 움직여보세요”라고 한다면 어떨지. (웃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았을 때 에이전트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새로운 <엑스맨> 영화에 역할이 있는데 사이먼 킨버그 감독이 내 스케줄을 물어봤다고. 그 뒤 사이먼으로부터 직접 각본을 받았다. 사이먼과는 예전에 그가 제작한 <마션>(2015)에서 함께 작업한 적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가 차분하게 대처하는 방식이 놀랍다. 그는 좋은 작가이자 좋은 감독이다. 그런데 내가 여러분에게 질문하고 싶은 게 있다. 지금까지 코믹북 기반의 히어로영화에서 주인공과 상대 악역 모두가 여성인 적이 있었나? (“없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그러니까, 나 역시 이번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영화계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보나.

당연하다. 이것 역시 지금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변화 아닌가?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극중 캐릭터 대사에도 있지 않나. 왜 ‘엑스맨’이라고만 하고 ‘엑스우먼’이라고는 하지 않느냐고.

그 대사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건가.

아니다. 사이먼이 쓴 대사다. 사이먼은 나를 위원장님라고 부르는데(웃음), 왜냐하면 내가 영화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평등 문제에 대해 무척 열정적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출연을 제안하면서 내게 가장 먼저 예를 들었던 대사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사이먼에게도 여성이 중심에 있는 슈퍼히어로영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당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 알려진 게 별로 없다.

내가 엄청난 스포일러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외계에서 지구를 찾아오고, 진의 새로운 파워를 자신을 위해 쓰려는 인물이다. 재미있는 점은 내 캐릭터는 파워는 아름다운 것이고 수치스럽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 진은 자신의 파워를 다른 이들에게 감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캐릭터를 준비하며 영감받은 게 있다면.

엑스맨과 싸우는 액션 장면에 대한 얘기인데, <터미네이터2>(1991)에서 새로운 악역(T-1000)이 차갑게 묘사되지 않나. 움직임도 적고, 그래서 더 위험하고 무서워 보이고. 그래서 내 캐릭터는 액션을 할 때 엑스맨처럼 큰 동작으로 싸우지 않는다.

캐릭터의 외형 역시 범상치 않다.

사이먼과 캐릭터에 대해 논의하면서 자연적으로 착안한 디자인이다. 엄청난 파워를 지닌 외계 생명체로서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이미지가 필요했다. 메이크업은 최소화했다. 다른 작품에선 속눈썹이나 눈썹을 진한 색으로 물들였는데 이번에는 백지처럼 갔다. 거기에 머리도 금발이다. 사이먼에게 틸다 스윈턴의 사진을 들고 갔다. 우리의 얼굴이 비슷한 색을 띠기도 하고, 분장하지 않았을 때 그 얼굴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지 사이먼에게 말했다. 영화에서 틸다 스윈턴이 얘기하면 다 믿게 되는 것처럼. (웃음)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틸다 스윈턴에게 동시에 영감을 받은 첫 배우인 것 같다.

(웃음) 캐릭터를 위해 정말 많은 것을 준비한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영감받은 것은 <터미네이터2>의 로버트 패트릭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아니라. (웃음)

과거에 좋아했던 코믹북 캐릭터가 있나.

코믹북보다 영화 <배트맨> 시리즈를 자주 봤다.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을 좋아했다.

강한 여성, 특히 악역으로서의 여성은 요즘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여러 의미를 갖는다.

물론이다. 그런데 사이먼은 2년 전에 이 각본을 썼다. 촬영 도중에 <뉴욕타임스>에 하비 웨인스타인에 대한 기사가 보도됐다.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작품이 큰 의미를 갖기 이전에 사이먼은 먼저 시도했다. 성별, 인종, 정체성 등으로 차별하지 않는 이들과 작업하는 것이 좋다.


씨네21 www.cine21.com

뉴욕=글 양지현·통신원 사진제공 이십세기폭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