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5월 23일(목) 올레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빛이 있으라” <창세기> 1장 3절에 나오는 말이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이하 <서던 리치>)는 이 빛을 쫓는 SF 미스터리 영화다. 아무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격리구역 쉬머(Shimmer, 희미한 빛이라는 뜻이다)가 영화의 주된 배경이다. 생물학자 리나(나탈리 포트만)의 군인 남편 케인(오스카 아이삭) 역시 쉬머에서 실종됐다. 1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케인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피를 토하고 쓰러진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 리나는 5명의 동료들과 함께 직접 쉬머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빛으로 빚은 SF영화

<서던 리치>는 빛이 중요한 영화다. 조명 이야기가 아니다. 빛 자체가 미장센이 된다. 러닝타임 내내 빛을 볼 수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쉬머라는 거대한 공간 자체가 빛을 반사하고 뿜어낸다. 물이 고인 곳에 떨어진 기름이 빛에 반사되며 일렁이는 빛깔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꼭 그런 색깔의 빛이 영화 전체에 스며 있다. 이 빛은 매우 아름답다. 영롱한 느낌의 빛은 SF영화가 좋아하는 요소다.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의 후반부 결정적인 장면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에서 블랙홀에 들어간 쿠퍼(매튜 맥커너히)의 주변을 감싸는 다채로운 색감의 빛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서던 리치>에서는 이 다채로운 빛을 더 신비롭고 더 근사하고 더 아름답게 보여주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카메라 렌즈에 비친 빛이 반사되어 나타나는 플레어(Flare)도 많이 보인다. J. J. 에이브럼스 감독의 팬이라면 익숙할 플레어 효과는 <서던 리치>에서도 중요한 비주얼 요소다.

빛이 주인공인 SF영화

<서던 리치>의 비주얼 전반을 담당한 빛은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영화의 초반부 지구를 향하는 불빛이 등장한다. 엄청난 속도로 지구를 향하던 그 불빛은 공교롭게도 해안가의 등대에 떨어진다. 등대는 영어로 라이트하우스(Lighthouse)다. 직역하면 ‘빛+집’이다. 그 빛이 떨어진 등대는 쉬머라는 미스터리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진원지다. 쉬머는 점점 커진다. 그 자체로 거대한 프리즘이 되고 빛은 물론이고 전파, 시간, DNA 등 모든 걸 굴절시킨다. 그렇게 만들어진 쉬머에는 전에 보지 못한 생명체로 가득하다. 단순한 돌연변이가 아닌 새로운 종으로 이뤄진 새로운 생태계가 펼쳐진다. 이 이색적인, 이국적인 풍경 또한 <서던 리치>가 내세울 수 있는 비주얼의 장점이다. 경이로운 느낌이 드는 매혹적인 풍경. 그 속에는 위험이 존재한다. 앞서 빛의 미장센에서 예로 든 물에 뜬 기름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파도의 움직임에 맞춰 일렁이는 빛깔이 예쁠지 몰라도 바다에 유출된 기름은 환경을 파괴하는 법이다. 리나와 동료들은 빛이 만들어낸 생태계, 쉬머의 굴절로 만들어진 위협에 맞선다. 그들의 종착지는 빛이 있는 등대다.

해석의 재미가 있는 SF영화

많은 SF영화가 인류의 미래, 외계 생명체와의 만남, 유전자 조작, A.I.의 진화 등을 다룬다. 이런 주제는 늘 철학적인 질문을 동반하게 된다. 또 영화의 결말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서던 리치>에서도 이런 SF 장르의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결말에서는 일종의 반전도 준비했다. 장르적 재미를 위해 <서던 리치>는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처럼 과거에 있었던 믿기 힘든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구조의 장점은 영화 속 캐릭터가 과거와 현재를 쉽게 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시간을 자유롭게 만들어두면 과거 플래시백 장면에 플롯의 장치를 배치하기 쉬워진다. 예를 들어 영화의 초반부, 갑자기 돌아온 케인과 리나가 테이블에 마주 앉았을 때, 그들이 손을 잡는 클로즈업 숏이 나온다. 테이블 위에 놓인 물컵에 의해 두 사람의 손은 굴절돼 보인다. 유능한 감독은 이유 없이 클로즈업을 하지 않는다. 굴절은 <서던 리치>에서 아주 중요한 키워드다. 이런 물컵 장치는 영화의 후반부에서도 볼 수 있다. <서던 리치>의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이런 장치를 잘 만들어냈고, 잘 배치했다. SF 장르 마니아 관객들은 이와 유사한 장치를 찾아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서던 리치>는 두 번, 세 번 볼 때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위에 언급한 물컵의 굴절 장면은 이 영화가 무심하게 던져 놓은 여러 장치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서던 리치>는 관객에게 건네는 질문이 많은 영화다. 가랜드 감독의 전작 <엑스 마키나>를 본 관객이라면 그의 재능을 인정할 것이라 믿는다. 그는 좀비영화 <28일 후>, SF스릴러 <선샤인>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서던 리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영화다. 빛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비주얼의 스펙터클과 제프 밴더미어의 원작 소설에 기반한 가랜드 감독의 탁월한 재능으로 만든 탄탄한 이야기 구조의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를 재밌게 본 관객에게 <서던 리치>를 특히 추천한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