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이 864만 관객을 돌파했다(6월 셋쨋주 기준). 흥행을 예상했나.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했다. <기생충> 개봉을 경험하며 국내 관객에게 크게 놀랐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고 재밌다는 건 알았지만 <기생충>이 보고 나서 관객을 기쁘게 하는 영화는 아니잖나. 관객을 편치 않게 하면서도 매혹시킨 영화 중 최대치로 흥행을 기록한 작품을 생각해보니 <곡성> (2016) 정도겠더라. <기생충>이 <아가씨>보다는 보편적으로 관객을 유인하기 쉬운 영화라고 생각했고, 그럼 <곡성>과 비슷한 스코어가 되려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기록을 뛰어넘었다. 놀랍고 기뻤다. 또 정말 많은 관객이 영화를 봤는데도 서로 스포일러 유출을 조심하며 지켜주는 모습 또한 생소하고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 흥행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게 칸영화제 전후로 나뉜다. (웃음) <기생충>이 경쟁부문에 초청될 거라고 생각은 했다. 칸을 알고 이 작품을 알면, 칸영화제가 <기생충>을 안 부르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작품에 자신이 있었다. 영화적 함의가 풍부하고 전세계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큰 문제를 다루고 있어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 예상했지만 설마 황금종려상일 줄이야…. 마치 올림픽 금메달을 수상한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다고 할까.
칸영화제 시상식 당일에 수상자 발표를 들으며 잔뜩 긴장한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가려진 시간>(2016)을 함께한 엄태화 감독이 사진을 캡처해 보내줬다. 내 표정이 너무 웃겼다며. (웃음) 폐막식에 참석하라는 건 상을 주겠다는 뜻이니 어떤 상이든 받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미처 황금종려상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칸영화제가 상을 주면서 한명씩 레이스에서 떨어뜨리는 구조잖나. 쟁쟁한 감독들의 이름이 한명씩 불릴 때마다 ‘어, 저 감독의 이름을 벌써 부르네’라는 놀라움과 ‘설마 우리가…?’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마티 디옵 감독의 심사위원대상이 확정된 뒤, 송강호 선배님이 우리만 남았다는 의미로 팔을 잡으시더라. 그때는 ‘세상에 이런 일이’의 심정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송강호 배우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송 선배님과 감독님께서 신호를 주시기에 무대에 올랐다. 긴장하거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사진을 찍을 수는 없으니 눈앞에 보이는 모든 걸 잘 담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차분하게 둘러봤다. 평생 또 언제 이 광경을 보겠나 싶더라.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나와의 인연 이전에 <마더>(2009)의 제작자였던 바른손이앤에이 문양권 회장님과 감독님의 인연이 있었다. 감독님이 <마더> 이후에도 몇 작품을 하셨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봤을 때 <마더> 프로덕션의 세팅과 안정감이 좋으셨던 듯하다. 그런데 <마더> 프로듀서였던 서우식 대표가 <옥자>(2017)를 작업한 뒤 퇴사를 했다. 나는 베테랑 프로듀서도 아니고, 메인으로 제작을 맡은 영화가 <가려진 시간> 한편인 초짜 제작자라서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서우식 대표를 통해 감독님의 연락을 받았다. 다음 작품을 바른손이앤에이와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 (컴퓨터에서 문서 파일을 열며) 2015년 4월18일에 감독님과 처음으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늘 그렇게 메모를 하나.
일지처럼 주요 사건들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중요한 걸 적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다. 2015년 당시 감독님에게 “작품에 폐가 될까봐 너무 두렵지만 설레기도 합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뭘 또 두렵기까지씩이나” 하냐고 답변이 왔던 기억이 난다.
<기생충>의 제작진은 대부분 봉준호 감독과 호흡을 맞춰본 베테랑 스탭들이다. 이들 중 봉준호 감독과의 협업 경험이 없는 장영환 프로듀서(<고지전>(2011), <1987>(2017))의 합류가 눈에 띄는데, 직접 추천했나.
그랬다. 다른 파트의 키 스탭들은 이미 내정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내 몫의 스탭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이 프로듀서였다. 그래서 나름의 전수조사를 했다. 2년치 개봉일람표를 펼쳐놓고 경험치와 예산, 평판 등을 고려해 추천할 만한 프로듀서의 목록을 작성했다. 프로듀서를 전수조사한 문서와 나름의 기준으로 후보자를 압축한 엑셀 파일 두개를 감독님께 보냈더니 웃으시며 이걸 엑셀 파일로 주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시더라. 그중에서 1순위로 생각하던 장영환 프로듀서와 함께하게 됐다. 우직하면서도 성격이 모난 데가 없고, 일을 정말 잘하는 분이었다.
봉준호 감독에 따르면 <기생충> 제작과정에서 “4K 촬영, 애트모스 녹음, 과감하고 정교한 세트 등 프로덕션 밸류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가 있었다”고 하더라. 시나리오 자체만 놓고 보면 50~60회차 정도를 예상했을 텐데 77회차라는 여유 있는 스케줄을 확보해 홍경표 촬영감독과 봉준호 감독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끔 멍석을 깔아줬다”고.
<기생충>은 처음부터 전세계에 보여질 것이 예상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 어느 나라 수준에서 보아도 영화의 만듦새나 상영포맷 등 퀄리티에 문제가 없는 영화였으면 했다. 그리고 미래의 관객과 만나게 될 작품인 게 명백했으니 현재 구현할 수 있는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두는 게 당연했다. 그에 대해 투자·배급사 CJ의 직원들도 전혀 이견이 없었다. 제작자는 그래도 손익분기를 고려해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감독님의 시나리오와 연출력, 배우 등 흥행요소들을 최대한 객관적 기준으로, 보수적으로 검토해봤을 때도 총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는 정도 이상의 흥행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게다가 봉 감독님이 누구보다 먼저 효율을 고민하고 고려하면서 계획을 미리 조정해서 내놓곤 했기 때문에 무리한 요구로 여겨지는 부분이 없었다.
봉준호 감독과 제작진에 따르면, 10명의 주요 배우들을 “집안의 큰엄마, 이모처럼”(봉준호 감독의 표현) 챙기고, 그들과 깊고 폭넓게 의사소통을 해 배우들이 가족으로서의 앙상블을 발휘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배우들이 모두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몹시 기쁘고 행복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송강호 선배가 배우들 모두에게 큰오빠, 형님, 아버지, 남편처럼 촬영 전부터 따뜻하게 품어줘서 배우들 사이에 친근감이 쌓이는 속도가 엄청났다. 츤데레에 센스쟁이 이선균 배우, 내공과 분별력에 아름다움까지 갖춘 조여정 배우, 선하고 엉뚱하고 귀여운 최우식 배우, 씩씩하고 시원시원하고 야무진 박소담 배우, 존재 자체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데다가 속도 무척 깊은 이정은 배우, 친근하고 솔직하고 감성 풍부한 장혜진 배우, 선하고 묵묵하면서도 기세 있는 박명훈 배우. 그런 그들이 서로를 굉장히 소중히 여기며 챙기는 분위기였다. 현장에서 “우리 꼭 큰집(기택네), 작은집(박 사장네), 고모네(문광네)가 명절에 모인 것 같아”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웃곤 했을 정도다. 내가 한 일은 그 분위기 속에 자연스럽게 한 멤버로 스며들려고 노력한 것, 관계 속에서 나누게 되는 이야기들에 집중하고 불편이나 애로사항, 바람 등을 기억했다가 알게 또는 모르게 반영했던 것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