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만큼 인간에게 당연한 명제는 없다. 2019년 상반기 역시, 오랜 세월에 걸쳐 대중을 울고 웃게 만든 영화인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생전 모습과 활약상을 되짚으면서 추모한다.


요나스 메카스

Jonas Mekas

1922. 12. 24. ~ 2019. 1. 23.

미국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대부. 요나스 메카스를 대표하는 수식이다. 리투아니아 출신인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 미국 뉴욕에 정착해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앤디 워홀, 벨벳 언더그라운드, 백남준 등 저명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1960년대 미국 언더그라운드 영화 운동을 이끈 주역으로서 이름을 떨쳤다. 무엇보다, 메카스는 '찍는' 사람이었다. 메카스는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일상의 순간을 빼곡이 기록했고, 지글거리는 화면에 담긴 순간들은 그 자체로 당대 예술계는 물론 메카스 개인의 소중한 기록으로 남았다.


미셸 르그랑

Michel Legrand

1932. 2. 24. ~ 2019. 1. 26.

1950년대 중반 커리어를 시작한 미셸 르그랑은 자크 드미, 아녜스 바르다, 장 뤽 고다르 등 당시 젊은 영화 작가들과 함께 하며 프랑스 영화의 중흥을 이끌었다. 특히 뮤지컬 영화에 천착해온 자크 드미의 <쉘부르의 우산>(1964), <로슈로프의 숙녀들>(1967), <당나귀 공주>(1970) 등의 걸작들은 르그랑의 선율이 없었다면 그만큼 아름답지 못했을 것이다.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68)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면서 그의 명성은 더 크게 퍼졌고, 1972년 <42년의 여름>으로 처음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수상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협업한 <옌틀>(1983)로 다시한번 큰 성공을 거둔 르그랑은 휴지기 없이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해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다.


알버트 피니

Albert Finney

1936. 5. 9. ~ 2019. 2 .7.

톰 존스

영국의 명배우 알버트 피니는 연극 무대에서 데뷔해 1960년 영화계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두 번째 주연작 <톰 존스>(1963)로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긴 했지만, 그의 경력은 유별난 스타덤을 거치지 않고 묵묵히 한땀한땀 채워졌다. 스크린과 무대를 오가며 활동해 필모그래피의 수로만 따지면 분명 과작의 배우라 불러야 할 피니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1974), <애니>(1982), <밀러스 크로싱>(1990), <에린 브로코비치>(2000), <빅 피쉬>(2003) 등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맡아 잊기 힘든 존재감을 발산했다. 007의 23번째 시리즈 <스카이폴>(2012)이 그의 마지막 영화다.

밀러스 크로싱


브루노 간츠

Bruno Ganz

1941. 3. 22. ~ 2019. 2. 16.

베를린 천사의 시

브루노 간츠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독일 배우다. 6~70년대에 영화와 연극을 병행하던 그는 1976년 에릭 로메르의 <O 후작 부인>을 작업하며 "명감독들이 사랑하는 배우"의 행보를 뗐다. 로메르를 비롯, 베르너 헤어조크, 빔 벤더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등 거장들이 발표한 작품들에서 브루노 간츠 특유의 불안과 확신이 뒤엉킨 눈빛을 만날 수 있었다. 2004년 <다운폴>은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1987)와 함께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품이다. 자살하기 열흘 전 히틀러의 심리를 생생하게 구현해내 역대 최고의 히틀러 연기라는 평을 독차지 했다. 얼마 전 칸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테렌스 맬릭의 <히든 라이프>에서 그의 마지막 연기를 만날 수 있다.

다운폴


스탠리 도넌

Stanley Donen

1924. 4. 13. ~ 2019. 2. 21.

요즘 관객들에게 스탠리 도넌은 영 낯선 감독일 것이다. 극장에 걸린 마지막 연출작이 35년 전 <리오의 연정>(1984)이다. 도넌의 황금기를 확인하기 위해선 시간을 한참 돌려야 한다. 1943년 안무가로 할리우드에 입성한 도넌은 6년간 진 켈리, 프랭크 시나트라 등 톱스타들과 작업하면서 탁월한 솜씨를 뽐냈고, <온 더 타운>(1949)으로 연출을 시작해 거대 영화사 MGM의 전속 감독으로 활동했다. 도넌의 이름이 영화사에 빛날 수 있는 건 바로 진 켈리와 함께 연출한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1952)에서 보여준 천부적인 감각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역할이 감동과 시청각적 즐거움에 있다고 한다면 <사랑은 비를 타고>는 그에 완벽했다. <파자마 게임>(1957), <샤레이드>(1963) 등 걸작 뮤지컬 영화 역시 도넌의 작품이다.


아녜스 바르다

Agnès Varda

1928. 5. 30. ~ 2019. 3. 29.

프랑스 여성 감독 아녜스 바르다의 창작력은 1950년대 중반 데뷔 이래 멈출 줄 몰랐다.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생각한 여자가 90분 동안 경험하는 복합적인 심경을 90분 러닝타임에 담은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를 발표해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로 떠올랐다. 이후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오가며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했다. 비단 스크린뿐만 아니라 미술관에도 진출해 영상 아티스트로 저변을 넓혔다. 미술작가 JR과 함께 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이 국내에 개봉해 한국의 영화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성'이 당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로 올라선 현재, 노년에도 왕성하고 활동하고 있는 아녜스 바르다는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존 싱글턴

John Singleton

1968. 1. 6. ~ 2019. 4. 28.

존 싱글턴의 데뷔작 <보이즈 앤 후드>(1991)는 1989년 스파이크 리의 <똑바로 살아라>가 지핀 흑인영화의 불씨를 다시 한번 타오르게 했다. 싱글턴의 영향력은 그가 <보이즈 앤 후드>를 발표한 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최전성기를 누리던 마이클 잭슨의 'Remember the Time' 초호화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는 점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재닛 잭슨과 투팍 주연의 <포에틱 저스티스>(1993)와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로즈우드>(1997) 등을 거친 싱글턴은 블랙스플로테이션의 고전 <샤프트>(1971) 리메이크를 연출하며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영화감독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2000년대 들어서 <분노의 질주 2>(2003)와 <포 브라더스>(2005) 같은 장르영화에 도전했지만 반응은 좋지 못했다. 오랫동안 연출 의사를 밝혀온 투팍 전기영화를 끝내 만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쿄 마치코

京マチ子

1924. 3. 25. ~ 2019. 5. 12.

라쇼몽

데뷔작인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부터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츠 이야기>(1953), 기누야사 테이노스케의 <지옥의 문>(1953), 오즈 야스지로의 <부초 이야기>(1959) 등에 이르기까지, 쿄 마치코의 경력은 일본영화의 황금기와 정확히 맞물린다. 이국적인 외모를 한껏 활용해 드러내는 욕망의 제스처는 온순하고 순종적인 일본의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여성의 표상으로 각인됐다. 욕망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좌절되는 순간 보여주는 서늘하고 음울한 기운은 쿄 마치코가 아니고는 대체할 수 없는 에너지였다. 2000년 은퇴를 선언하고 고향인 오사카에 돌아가 여생을 살았다.


도리스 데이

Doris Day

1922. 4. 3. ~ 2019. 5. 13.

필로우 토크

도리스 데이는 17살에 재즈 빅밴드의 보컬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1945년 차트 1위 곡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가수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데이는 3년 후 처음 연기에 도전했다. 이후 뮤지컬, 코미디, 드라마, 스릴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필모그래피를 쌓았고, <필로우 토크>(1959)로 처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클라크 게이블, 캐리 그랜트, 제임스 캐그니, 잭 레몬, 프랭크 시나트라, 커크 더글라스 등 할리우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영화배우와 가수 활동을 그만둔 70년대부터는 동물 복지 활동가로 활약한 바 있다.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