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1930년생인 ‘할아버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86세의 나이에 새 영화를 내놨다. 9월28일 개봉하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이다. 2009년 탑승객 155명 전원이 생존한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다룬 이 영화를 보기 앞서,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가운데 다시 보면 좋을 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용서 받지 못한 자>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랜 토리노>

<용서 받지 못한 자>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랜 토리노> 그리고 <미스틱 리버>. 에디터가 생각하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걸작들이다. 이번주 ‘수요명화’에서는 <미스틱 리버>를 골랐다. <용서 받지 못한 자>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랜 토리노>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덜 알려진 것 같아서다. <미스틱 리버>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자신이 출연하지 않았다. 오롯이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얘기할 수 있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용서 받지 못한 자>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오스카 트로피는 얻었지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트로피는 가져가지 못했다. 2003년 <미스틱 리버>로 칸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때 기대감은 커졌다. 그 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페일 라이더>(1985) <버드>(1988) <추악한 사냥꾼>(1990)으로 황금종려상에 도전했었다. 결과는 이번에도 실패였다. <엘리펀트>의 구스 반 산트가 수상했다. 심사위원장은 스티븐 소더버그였다. 그는 골수 공화당원으로 알려진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싫어했던 걸까. 미안, 농담이었다. 2008년 <체인질링>으로 다시 경쟁부문에 초청됐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결국 2009년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영화계 거장의 업적을 치하하는 특별상이다.

<미스틱 리버>에서 데이브를 연기한 팀 로빈스.

영화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데니스 르헤인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하는 <미스틱 리버>는 보스턴에서 자란 세 친구들의 이야기다. 지미 마컴(숀 펜), 데이브 보일(팀 로빈스), 숀 디바인(케빈 베이컨) 등 셋은 어린 시절 아직 마르지 않은 시멘트 바닥에 이름을 남기며 우정을 나누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데이브가 이름을 쓰고 있을 때 경찰로 위장한 정체 모를 남자들이 그를 납치한다. 데이브는 성적 학대를 당하고 탈출했다. 이 사건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날의 사건을 잊으려는 듯 친구들은 서로를 멀리했다. 25년 뒤, 지미의 19살 딸 케이티의 살인사건으로 세 친구는 재회한다. 형사가 된 숀은 자신의 파트너(로렌스 피시번)와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지미는 딸을 죽인 살인자에게 직접적인 복수를 다짐한다.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뜻밖에도 데이브가 용의자로 지목된다. 데이브는 진짜 범일일까. <미스틱 리버>는 끝까지 딸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후더닛(whodunit) 무비’의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그 사건으로 인해 세 남자의 인생이 어떻게 이그러져가는지를 천천히 그리고 잔인하게 보여준다.

<미스틱 리버>에서 지미를 연기한 숀 펜.

<용서 받지 못한 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자신이 꼭 출연해야만 하는 영화였다.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등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에 출연했던 자신과의 이별을 고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스틱 리버>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카메라 밖에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대배우인 동시에 노련한 거장 감독이었다. 벌써 이름만 들어도 연기력을 논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숀 펜, 팀 로빈스, 케빈 베이컨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 아래 명연기를 선보였다. 각 인물의 심리 상태가 중요한 <미스틱 리버>에서 광기 어린 연기를 보여준 숀 펜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영화 내내 비정상적인 상태인 데이브를 연기한 팀 로빈스는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케빈 베이컨에게도 트로피가 주어졌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미스틱 리버>에서 숀을 연기한 케빈 베이컨.

다시 2003년 프랑스 칸으로 돌아가보자. <미스틱 리버>를 볼 때 우리가 느끼는 도덕적 딜레마, 데이브를 향한 두 친구들의 죄의식 등에 대한 해답이 될 만한 얘기가 있다. 칸영화제 기자회견장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인간은 자신이 지나온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꽤 길게, 그는 답했다. “그렇게 믿는 편이다. 물론 드라마를 다루다 보면, 창작자의 상상과 주관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나는 피해자의 과거가 악몽처럼 그의 일상을 맴돌 거라고 추정했다. 피해자의 삶이, 사건 그 이후의 삶이 어떠할지, 우리로선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어떤 범죄의 희생자는 당사자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인생뿐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 주변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직접 피해를 입지 않은 이들의 삶도 달라진다. 무고한 이를 가해자로 지목하고 단죄하는 행동들을 보자. 범죄의 악몽, 그 파장 안에서 사람들은 분별을 잃고 광기를 띠어간다. 그것이 내가 보여주고자 한 아이러니다.”

<미스틱 리버>에서 숀 펜은 광기 어린 연기를 선보인다.

‘할아버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범죄자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고, 약한 자는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라는 어찌 보면 평범한 신념을 평생 지켜온 것 같다. <미스틱 리버>뿐만 아니라 이번 ‘수요명화‘에 언급하지 않은 <용서 받지 못한 자>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랜 토리노>에도 그의 신념이 묻어난다. 간혹 그의 신념은 위험할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충분해 보인다. 이 꼬장꼬장한 할아버지 공화당 지지자를 결코 미워할 수 없다. 무엇보다 영화를 기가 막히게 잘 만들기 때문이다. ▶<미스틱 리버> 바로보기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