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 클럽이 돌아온다. 그것도 27년이 지난 후 성인이 된 모습으로. 2017년 가을에 개봉해 호러영화의 지형도를 바꿔버린 <그것>은 여러모로 대단한 화제작이었다. 그 어떤 스타 파워나 대자본의 예산 없이 아역들과 피의 피에로, 그리고 스티븐 킹의 원작만 가지고 오랜 기간 1위 자리를 지킨 <식스센스>를 제치고 호러영화 최고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봄에 개봉해 오스카상 후보로 지명된 <겟 아웃>의 신드롬을 지워버릴 만큼 압도적인 흥행(북미 3억 달러, 전 세계 7억 달러)이었다. 9월 최고 오프닝 기록과 가을 최고 흥행 수익, R등급 영화 흥행 역대 4위 등은 부수적인 기록들이다. 2년 만에 돌아온 후속편이자 완결편에 관심이 쏟아지는 건 당연하다.
탄탄한 팀워크를 보인 아역들과 광기 어린 연기를 보여준 빌 스카스가드가 그대로 캐스팅된 채, 제임스 맥어보이, 제시카 차스테인, 빌 헤이더, 제임스 랜슨, 제이 라이언, 이사야 무스타파, 앤디 빈 등 성인 배역들이 새롭게 합류한 2부는 호러 영화에선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 3시간에 가까운 169분의 러닝 타임을 자랑한다. 원작 자체가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이다 보니, 이번 작품에서 모든 걸 마무리 짓고 수습하기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자칫 늘어지고 지루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는데, 공개된 후 반응은 나쁘지 않다. 추후 1, 2부를 재편집한 합본판도 계획하고 있다니, 제작진의 자신감마저 엿보인다.
스티븐 킹 원작의 최고 흥행작 <그것>
성장담과 호러물의 탁월한 이종교배인 스티븐 킹 원작은 만화 <20세기 소년>과 미드 <기묘한 이야기> 등 여러 작품들에게 영향을 줬다. 1990년엔 2부작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졌지만, 아쉬운 완성도로 원작의 본령을 담아내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의 성공으로(아직 개봉 안한 미국에선 첫 주 기록으로 낮게는 8000만 달러에서 높게는 1억 2000만 달러까지 예상하고 있다) ‘롤링스톤’에서 집계한 스티븐 킹 소설 가운데 가장 인기 높은 작품 2위에 랭크된 위엄을 되찾은 듯하다. 단편 <마마>로 기예르모 델 토로에게 발탁된 후 장편 <마마>와 이번 작품까지 상업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은 벌써부터 <플래시> 연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감독이자 배우인 자비에 돌란이 2부 오프닝에 깜짝 출연하고 있으며, 감독이자 평론가인 피터 보그다노비치와 원작자인 스티븐 킹이 카메오로 등장해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전작과 바로 이어지는 속편임에도 (잘 되면 그대로 스탭들을 유지하는 관례와 달리) 몇몇 스탭들의 교체가 눈에 띄는데, 가장 두드러진 건 박찬욱과 호흡을 맞춰온 정정훈 대신 페루 출신의 체코 바레즈로 바뀐 촬영이다. 그 외에도 대작들을 맡아온 클로드 파레 대신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로 오스카를 수상한 폴 D. 오스터베리가 미술을 담당했고, 의상도 제니 브라이언트에서 <마마>를 함께 한 루이스 시쿠에이라로 바꿨다. 그럼에도 탁월한 공포를 선사하는 벤자민 월피쉬의 음악만큼은 건재하다.
호러 영화음악의 모든 스타일을 담았다!
벤자민 월피쉬는 <그것> 듀올로지를 통해 호러영화 스코어에 대한 야심을 내비친다. 이미 해양공포물 <프레셔>와 데이비드 샌드버그와 함께 한 일련의 정통 호러 <라이트 아웃>이나 <애나벨: 인형의 주인> 그리고 미스터리 스릴러 톤을 간직한 <더 큐어>에 이르기까지 여러 스타일을 경험한 바 있는 그는 이런 노하우들을 종합해 이번 작품에 모든 기교를 쏟아부었다.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심포닉 악곡에서부터 사운드 이펙트나 폴리 등을 통한 음향에 가까운 사운드 디자인적인 접근, 특정 악기의 음색을 강조한 고음과 저음의 활용 그리고 대규모 코러스를 대동한 합창의 위용과 오래된 동요(영국의 ‘오렌지 앤 레몬’(Oranges and Lemons))나 자장가의 인용, 믹싱을 통한 목소리의 변조 등 여태껏 호러영화들에서 등장했던 방식이 총동원되고 있다.
자칫 여러 스타일이 혼재돼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워 영화의 통일성을 해칠 수도 있는데, <그것>에서는 페니와이즈가 루저 클럽에게 선사하는 악몽 자체가 워낙 다채롭고 변화무쌍하게 구현되는 터라 오히려 그의 물량공세에 가까운 시도들은 더 효과적이고 스펙터클하게 느껴진다. 유년기 깊숙이 박제된 공포를 찾아 집요하게 건드리며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페니와이즈의 공격만큼이나 현란한 벤자민 월피쉬의 소름 끼치는 소리들의 총합은 점프스케어나 고어적인 비주얼보다 더 <그것>을 무섭게 만드는 힘이다. 단출하지만 차가운 신디사이저로 황량한 기억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갔던 게 1990년대 미니시리즈 버전의 리처드 벨리스 음악이라면, 이번 극장판의 음악은 화려하고 아찔한 액션과 스릴, 서스펜스로 가득한 악마의 놀이동산 같다.
올해의 영화음악가급 활약, 벤자민 월피쉬
물론 이런 오싹함만 있는 건 아니다. ‘데리’의 우울한 루저들을 뭉치고 의지할 수 있게 해준 사랑과 우정을 묘사하는 곡들은 짧지만 소중하게 다뤄지며 목가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서정적이고 따스한 음색의 피아노와 하프, 첼로 등으로 연주되는 감성적인 접근은 많은 트랙을 차지하는 무시무시한 호러 스코어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며 로맨틱하고 극적인 효과를 노린다. 지나고 나면 기억 저편으로 아스라이 사라져버린 기억의 파편일지라도 그 시절 진지했던 고민의 무게만큼은 진중하게 남아 가슴 한 편을 저미게 만든다. 디스토션과 리버브 등 왜곡으로 가득한 소리들이 던지는 잔향들 속에서 벤자민 월피쉬의 다채로운 시도들은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꾸며준다.
최근 젊은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인 그는 <세레니티>를 시작으로 <샤잠!>과 <헬보이> 그리고 이번의 <그것: 두 번째 이야기>까지 너무나 바쁜 한 해를 보냈다. 2017년의 활약이 잠깐 반짝이 아니라는 듯 지난해와 올해 종횡무진 유럽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자신의 솜씨를 맘껏 발휘했다. 그 결과 그의 공적을 인정이라도 하듯 오는 10월 17일과 18일에 있을 19회 월드 사운드트랙 어워드에서 올해 최고의 작곡가 부문에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의 니콜라스 브리텔과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예스터데이>의 다니엘 펨버턴, <드래곤 길들이기 3>의 존 파웰과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알란 실베스트리와 함께 후보로 뽑혔다. 벤자민 월피쉬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