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부터 시작해 차곡차곡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 온 배우 박정민은 이제 영화사들이 작정하고 대작을 겨루는 추석 시즌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맡겨진 역할에 언제나 진심을 다했기에 모두의 믿음이 전해진 것이다. <타짜: 원 아이드 잭>의 시나리오를 받고 선뜻 선택하기 주저했다는 그에게 권오광 감독이 보여준 믿음도 아마 같은 맥락일 것이다. <타짜: 원 아이드 잭>은 여러모로 그에게 의미하는 바가 큰 영화다. 책임의 크기가 늘어난 만큼 또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도 배웠기 때문이다. 개봉을 앞두고 박정민 배우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타짜: 원 아이드 잭>은 어떤 영화고, 도일출은 어떤 인물인가.

=그동안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신 <타짜> 시리즈의 세번째 이야기다. ‘원 아이드 잭’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주인공 도일출은 1편에 등장한 짝귀(주진모)의 아들로 공시생이다. 낮에는 공부를 하지만 밤에는 사설도박업체에 가서 포커치는 것을 더 행복해한다. 아버지의 피가 있다 보니 실력도 좋다. 그런데 어느 날 도박 때문에 큰 시련을 겪게 되는데 그 시련에서 벗어나게 해준 게 바로 애꾸(류승범)다. 애꾸가 도일출을 비롯해 까치(이광수), 영미(임지연), 권원장(권해효) 등을 불러모아 ‘원 아이드 잭’이라는 팀을 만들어 전국에 있는 도박사들을 물리치고 다니는 게 영화의 줄거리다.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나리오가 재미있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과 이것을 선택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타짜>는 관객들께 엄청난 사랑을 받은 시리즈다. 전편과 비교당할 수 밖에 없어 선뜻 선택하기에 주저했다. 그런데, 권오광 감독을 만나고 이 작품을 해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왜 이 역할을 박정민 배우가 맡아야 하는가에 대해 권오광 감독이 긴 이메일을 보냈다고 들었다.

=10년 동안 지켜본 박정민이란 배우의 궤적과 도일출이라는 인물의 삶이 어떤 부분 닮아있다는 내용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학생일 때,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인지도가 낮은 신인일 때부터 한 배우를 지켜봤다는 말에 감동했다. 이 감독이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믿고 가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바로 하겠다 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도일출은 원작과 어떤 차이점이 있나.

=이름과 천부적인 재능, 대학생이었다가 도박판으로 끌려 들어가게 되는 설정 정도만 비슷하고 다 다르다. 오래전 만화다 보니 현재로 설정을 가져오기에 제약이 많았다. 그렇다고 만화보다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웃음)

-“금수저나 흙수저나 카드 7장 들고 치는 건 똑같다” 이런 대사들이 대한민국 청년의 현실을 자조 섞어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도일출이 공시생이고 흙수저에 가까운 인물은 맞다. 주변에 금수저라고 할 수 있는 친구들은 힘들게 공부하지 않아도 좋은 직장에 다니는 현실에 열등감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도박을 잘하면 고시 합격해서 받는 월급보다 버는 돈이 많으니 이 판이 현실보다 더 공정하다는 일종의 푸념 같은 거다. 그렇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는 아니다.

-다른 배역 중 탐나는 배역이 있었나.

=이광수 배우가 연기한 ‘까치’다. 너무 매력적인 인물이다. 페이소스도 갖고 있으면서 유쾌하고 재미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아마 이광수, 임지연 배우가 나오는 장면을 기다리게 될 거다.

-류승범 배우를 ‘지금 시점에 꼭 만나야 할 멘토’라 말했는데.

=제 또래 배우들 중에 류승범 배우의 작품 대사 한번 안 따라 해본 사람들이 없을 거다. 평범한 대사도 명대사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분이다. 나처럼 학교 다닐 때 평범했던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그 사람을 동경하게 된다. 처음 봤을 때 너무 따뜻하고 평화로운 사람이었다. 예전에 <품행 제로>(2002),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에서 봤던 류승범이 아닌 거다. (웃음) 만나서 얘기해보면 나를 꿰뚫어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매너리즘에 빠지고 지쳐갈 때였다. 어느 날 툭 던진 말이 있다.

“슬슬 오지?”

이 말을 듣고 심장이 쿵 하더라. 어떻게 알았지 하고.

“하기 싫을 땐 하기 싫다고 얘기해도 된다.”

본인이 겪은 얘기들을 들려주니 큰 힘이 됐다. 내가 지금 이 시기에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 힘을 얻었구나 생각했다.

-연기자로서의 긴 호흡에 대한 것 같다.

=자기가 겪은 시행착오와 내 나이에 겪은 감정들을 이야기해주며 앞으로 영화를 하면서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들어 줬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촬영장 분위기 메이커는 누구였나.

=류승범 배우였다. 류승범 배우가 있을 때는 모두가 류승범 배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오랜만에 봤는데 머리도 길고 선글라스도 쓰고. 얘기도 재미있었다. 권해효 배우와 우현 배우도 분위기를 잘 이끌어 주셨다.

-포커 기술 익히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카드 어려웠다. 실제로 어둠의 세계에 있는 분들 얘기로는 타짜가 되려면 한 1∼2년 동안 여관에 갇혀서 그 연습만 한단다. 몇 개월 연습한다고 그분들처럼 되는 게 아니지만 최대한 노력을 했다. 조금 서툴러도 대역 없이 직접 하면 좋은 앵글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나보다 이광수 배우가 보여주는 기술이 엄청나다. 다들 현장에서 놀랐다. 못할 줄 알았는데 혼자 기술을 완벽하게 익혀 온 것이다. 권오광 감독이 이거 CG로 해도 된다고 했는데 오히려 원테이크로 쭉 밀고 들어갔다. 정말 굉장했다.

-피아노도 랩도 포커도 다 처음 아닌가? 익히는데 어떤 것이 좀 더 쉬웠나.

=(웃음) 사실 이게 완벽하게 하는 게 아니어서. 뭐가 빨랐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예를 들어 포커 같은 경우는 피아노보다 훨씬 더 카메라가 안으로 들어오니 서툴면 티가 난다. 그레서 더 섬세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랩 같은 경우는 속일 수가 없다. 제 목소리로 하니까 못하면 바로 티가 났다. 다 속성으로 배운 것들이라 끝나면 바로 잊어버린다. 사실 이런 얘기가 나오면 숨고 싶다. 보여달라 할까 봐 창피하고. 어쩌다 내가 영화 전면에 나서는 역할을 하다 보니 유독 노력을 많이 하는 애처럼 보여 부담스러운데 다들 그렇게 노력한다. 선배님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속앓이하고 그런다. 너무 죄송하다. 깝죽거리지 않겠다. (웃음)

-영화를 준비하면서 레퍼런스로 삼을 영화들을 잘 안 본다는 말이 있던데.

=보면 따라 하게 돼서다. 안 따라 하게 노력하다 보면 또 따라 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은 예외다. 이번에 권오광 감독이 레퍼런스로 제시한 영화가 딱 한편 있었는데, 바로 <오션스> 시리즈였다.

-지금까지 본인이 연기한 캐릭터 중에 어떤 캐릭터가 본인과 가장 닮아나.

<변산>(2018)의 학수다, 별로 준비도 하지 않았다. 랩만 열심히 하는, 사실 그 사람이 나다. 그의 열등감이 나와 닮아있다.

-완벽을 추구하려는 성향 때문 아닌가.

=그런 것 때문에 예민해지는 것 같다. 이준익 감독은 내게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라” 하신다. 공감하지만 살아온 궤적이 있어서 잘 안 된다. 하지만 요즘은 현장에서 좋은 사람들 만나면서 삶이 조금씩 쾌적해지는 느낌이다.

-류승범 배우의 영향도 있겠다.

=그렇다. 류승범 배우와 나눴던 이야기들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 유일하게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건 인복이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 이준익 감독도 그렇고 류승범 배우도 그렇고. 권오광 감독, 장재현 감독 등 지금까지 만났던 감독님들이 나를 좋아해 주고 좋은 말도 많이 해줘서 버티고 살아가는 거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촬영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설렁탕집 촬영이었는데 취객 때문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 신이 굉장히 중요한 신이다. 다행히 최유화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예정보다 빨리 촬영을 마쳤다. 근데 생각해보니 이런 일이 너무 많았다. (웃음)

-<타짜: 원 아이드 잭>을 보기 전에 알고 오면 좋을 것이 있나.

=1편은 섰다, 2편은 고스톱이었다. 3편은 종목이 바뀌어 포커다. 어쨌든 고스톱보다는 포커가 관객분들께 더 낯설 것 같다. 그런데 포커 모르면 재미없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모르고 봐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20살 때 <타짜> 보면서 섰다 아무것도 모르고 봤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이번 3편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편집이 워낙 잘돼서 누가 이기고 지는지, 어떤 상황이지 다 이해가 된다. 시종일관 심각한 영화도 아니고 웃긴 장면도 많다. 기가 막히게 무언가를 속이고 배신하는 장면들도 있다. 기대해도 좋다.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