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가장 큰 인기를 누린 R&B 그룹 보이즈 투 맨(Boyz II Men)이 12월 14일-15일 양일간 콘서트를 연다. 2011년 이후 8년 만의 내한공연이다. 미국에서만 무려 1200만 장을 팔아치운 2집 앨범 <II> 발매 25주년을 기념하는 투어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공연인 만큼, 90년대 보이즈 투 맨을 즐겼던 팬들의 추억을 마음껏 자극하는 래퍼토리로 채워질 전망이다. 영화 속에 등장한 보이즈 투 맨의 명곡들을 살펴보자.


"Sympin"

<덩크 슛> (1992)

<덩크 슛>의 주인공, 흑인 시드니(웨슬리 스나입스)와 백인 빌리(우디 해럴슨)는 코트에서 우연히 만나 길거리 농구계를 휩쓸며 우정을 쌓는다. 시드니는 쉴 새 없이 입을 놀려 상대를 도발하면서 훌륭한 실력을 뽐낸다. 평소처럼 내기 농구를 하다가 상대편 멤버가 나가자 구경하던 백인인 빌리에게 한 게임 뛰어보지 않겠냐며 깔보듯 제안하는데, 결국 어수룩해 보이던 빌리가 시드니를 이기면서 둘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0세기 폭스’사의 로고 음악까지 훵크 버전으로 울리는 <덩크 슛>은 힙합, R&B, 소울 트랙들을 곳곳에 배치했는데, 보이즈 투 맨의 뉴잭스윙 트랙 ‘Sympin’은 시드니가 빌리에게 게임을 제안하는 타이밍에 등장한다. <덩크 슛>이 개봉하기 1년 전에 발매됐던 보이즈 투 멘의 데뷔 앨범 <Cooleyhighharmony>는 머지않아 최고의 R&B 프로듀서로 성장하는 댈러스 오스틴(Dallas Austin)이 프로듀싱을 맡았다. 앨범 내 다른 곡들에 비해 주목도가 덜했던 ‘Sympin’이 <덩크 슛>에 다시 등장하게 된 건, 영화 주제가인 리프(Riff)의 ‘White Men Can't Jump’도 만든 댈러스 오스틴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 같다.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

<리썰 웨폰 3> (1992)

<리썰 웨폰 3>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각각 엘튼 존(Elton John), 스팅(Sting)과 협업한 ‘It's Probably Me’, ‘Runaway Train’을 수록하면서 인기 시리즈의 위용을 자랑했다. 하지만 <리썰 웨폰 3>에서 이보다 더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노래가 있다. 바로 보이즈 투 맨의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다. 총기사고로 죽은 중학생 대릴의 장례식 신에 흘러 애도의 풍경을 보다 절절하게 만든다. 마틴(멜 깁슨)과 함께 장례식장에 참석한 로저(대니 글로버)는 소년의 부모에게 따귀를 맞고 “진정 미안하다면 내 아들에게 총을 쥐어준 놈을 잡으시오”라는 충고를 들으면서 검거의 의지를 다진다. 보이즈 투 맨 네 멤버의 하모니가 돋보이는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는 두 흑인 친구의 우정과 성장을 그린 영화 <쿨리 하이>(1975)에 수록된 G.C. 카메론(G.C. Cameron)의 노래를 아카펠라로 리메이크 했다. 보이즈 투 맨의 데뷔 앨범의 제목 ‘Cooleyhighharmony’도 바로 이 영화에서 따온 것인 만큼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는 그룹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곡이었다.


"End of the Road"

<부메랑> (1992)

프로듀서 듀오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L.A 라이드(L.A. Reid)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바비 브라운(Bobby Brown), TLC, 폴라 압둘(Paula Abdul) 등과 작업하며 승승장구하던 와중, 에디 머피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부메랑>의 사운드트랙에 깊숙이 관여했다. 총 12곡이 수록된 앨범에 베이비페이스/라이드(와 대릴 시몬스)가 프로듀싱을 맡은 트랙만 7개. 백미는 영화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 보이즈 투 맨의 ‘End of the Road’였다. 1992년 상반기 마지막 날 발매된 ‘End of the Road’는 무려 13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지키면서 싱글만 100만 장 이상을 팔아치웠고, 90년대 통틀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노래 6위에 올랐다. 1집 <Cooleyhighharmony>는 발매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 ‘End of the Road’를 포함시킨 재판이 나오면서 미국에서만 9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R&B계의 떠오르는 신인이었던 보이즈 투 맨은 이 노래를 통해 동시대 팝의 거물로 단숨에 도약했다.


"A Song for Mama"

<소울 푸드> (1997)

‘End of the Road’ 이후, 베이비페이스와 보이즈 투 맨의 협업은 계속됐다. 사업에 집중하게 된 L.A 라이드 없이 단독으로 활동하며 더욱 이름값이 높아진 베이비페이스는 보이즈 투 맨의 2집 <II>에 ‘I'll Make Love to You’와 ‘Water Runs Dry’를 제공했고, <II>는 데뷔작의 기록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소년의 눈을 통해 흑인 여성들의 생활과 연대를 그린 <소울 푸드>는 베이비페이스가 제작자로 참여한 작품이다. 사운드트랙 역시 물론 베이비페이스가 총감독을 맡아 어셔(Usher), 아웃캐스트(Outkast), 퍼프 대디(Puff Daddy), 블랙스트리트(BLACKstreet) 등 90년대 중반을 호령하던 힙합/R&B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뭐니뭐니 해도 앨범의 백미는 보이즈 투 맨이 노래한 ‘A Song for Mama’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사진첩을 훑는 오프닝, 엔딩 크레딧 모두 흘러나오는 노래는, 갈등과 역경을 딛고 마음 모아 상처를 이겨내 온 어머니들에게 존경을 바치는 <소울 푸드>의 테마를 아우른다. 영화 개봉에 맞춰 발매된 보이즈 투 맨의 3집 <Evolution>에도 수록됐다.


"I Will Get There"

<이집트 왕자> (1998)

드림웍스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는 한스 짐머(Hans Zimmer)가 오리지널 스코어를 맡고, 세기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듀엣을 성사시켰다. 음악에 투자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디즈니의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드림웍스의 각오가 여실히 드러나는 행보. 보이즈 투 맨의 ‘I Will Get There’는,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의 ‘When You Believe’에 이어 엔딩 크레딧을 마무리한다. ‘When You Believe’의 존재가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가려졌지만, ‘I Will Get There’ 역시 예사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불과 2년 사이에 토니 브랙스턴(Toni Braxton)의 ‘Un-Break My Heart’, 리앤 라임스(LeAnn Rimes)의 ‘How Do I Live’,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I Don't Want to Miss a Thing’를 성공시킨 작곡가 다이앤 워렌(Diane Warren)이 멜로디를 썼고, 90년대 최고의 R&B 프로듀서 중 하나인 지미 잼과 테디 루이스(Jimmy Jam and Terry Lewis) 듀오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I Will Get There’를 끝으로 보이즈 투 맨의 전성기도 막을 내렸다.


"On Bended Knee"

<라스트 데이즈> (2005)

구스 반 산트 감독은 2000년대 들어 별안간 <제리>(2002), <엘리펀트>(2003) 등 예술적 야심으로 똘똘 뭉친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90년대를 상징하는 록 스타 커트 코베인(Kurt Corbain)이 자살하기 전의 시간들을 ‘느슨하게’ 영화로 옮긴 <라스트 데이즈> 역시 난해한 서사와 형식적인 실험이 돋보인다. 이런 작품에 보이즈 투 맨의 ‘On Bended Knee’가 쓰였다는 사실 자체가 꽤나 이질적인데, 실제로 <라스트 데이즈>에서 이 노래가 등장하는 방식은 정말 기괴하다. 아무거나 걸치고 반쯤 풀린 눈으로 대저택과 그 주변을 느릿느릿 돌아다니는 블레이크(마이클 피트)가 TV를 틀자 ‘On Bended Knee’ 뮤직비디오가 나온다. 방안에서 아주 천천히 몸을 움직이는 블레이크가 TV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에 그냥 노랫소리만 들리고, 그가 완전히 정신을 잃으면 카메라는 그저 ‘On Bended Knee’ 뮤직비디오를 무심히 바라본다. 이렇게 무릎 꿇고 빌 테니 제발 돌아와 달라는 가사에 걸맞는 로맨스의 몸짓으로 가득한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TV를 1분 동안 가만히 쳐다볼 수밖에 없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블레이크는 정신을 차린다. 블레이크가 커트 코베인의 은유라는 가정 하에 따지자면 이 신은 고증 오류다. 코베인은 1994년 4월 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On Bended Knee’가 수록된 음반 <II>는 그해 8월 30일에 발매됐다.


"It's So Hard to Say Goodbye...",

"Motownphilly", "Here I Come"

<롱 샷> (2018)

2018년 작 <롱 샷>에는 보이즈 투 맨이 직접 출연한다. 직장에서 해고된 기자 프레드(세스 로건)는 친구를 따라 보이즈 투 맨이 공연하는 파티에 간다. 그들이 데뷔곡 ‘Motownphilly’를 선보이는 사이, 프레드와 그의 사춘기 시절 보모였던 미국 최연소 국무장관 샬롯(샤를리즈 테론)은 서로를 알아본다. 프레드는 친구에게 샬롯과 보이즈 투 맨의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을 같이 들었던 날의 흑역사를 말해주고, 때마침 파티에서도 그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경호원을 통해 프레드를 부른 샬롯 덕분에 두 사람은 오랜만에 재회한다. <롱 샷>의 본격적인 시작에 두 주인공이 어릴 적 최고 스타였던 보이즈 투 맨이 등장하면서, 추억과 로맨스라는 키워드가 동시에 작동하는 셈이다. 언론사를 사고팔면서 자산을 부풀리고 동성애에 대한 망언을 서슴지 않는 재벌 파커 웸블리(앤디 서키스)에게 미친 척 독설을 내뿜던 블레이크는 발을 헛디뎌 그만 파티장 한가운데에 나자빠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보이즈 투 맨의 멤버 네이던 모리스의 대사 “여기 노숙자 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