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드 니로에 관한 별별 사실들

로버트 드 니로와 마틴 스코세이지가 14년 만에 만난 <아이리시 맨>은 70대 중반을 넘긴 드 니로의 에너지가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한 작품이다. <아이리시 맨> 이후에도 그의 필모그래피는 멈출 기색이 없다. 영화사의 가장 위대한 배우 로버트 드 니로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정리했다.

로버트 드 니로 '주니어'는 뉴욕 맨해튼에서 화가 버지니아 어드미럴과 로버트 드 니로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일랜드-이탈리아, 어머니는 네덜란드-영국-프랑스-독일계 혈통. 아버지 드 니로는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성애자로 커밍아웃 한 뒤 아내와 이혼하고 드 니로가 2살 되던 해 집을 나갔다. 드 니로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도 아버지와 왕래했고, 맨해튼의 그리니치 빌리지와 리틀 이탈리아 근방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연극 각본을 읽는 걸 즐겼던 드 니로는 연극 <오즈의 마법사>에서 겁쟁이 사자 역을 맡아 뉴욕의 예술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됐지만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자퇴하고 갱단이 됐다. 당시의 경험이 뉴욕의 갱스터를 연기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여러 연기 학원을 전전한 그는 스무 살 되던 해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웨딩 파티>(1963)로 처음 영화에 출연했지만 작품은 1969년에야 공개됐고, 드 팔마와는 <그리팅스>(1968)와 <하이, 맘!>(1970)을 작업했다. 대배우가 된 드 니로는 알 카포네를 연기한 1987년 작 <언터처블>로 드 팔마와 다시 만났다.

드 니로는 1973년, 시한부의 메이저리그 선수를 연기한 <뱅 더 드럼 슬로울리>, 영원한 파트너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의 첫 작품 <비열한 거리>로 단숨에 할리우드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듬해 <대부> 속편에서 비토 콜레오네(말론 브란도)의 청년 시절을 연기하면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탄탄대로를 시작한다. 사실 <대부> 시리즈와 드 니로와의 연은 1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소니 콜레오네(제임스 칸),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 카를로 리지(지아니 루소), 파울리 가토(자니 마티노)의 오디션을 보고 모두 탈락했지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오디션 당시 그를 기억해내고 청년 비토 콜레오네 역에 캐스팅 했다.

드 니로는 1975년 <대부 2>로 같은 작품에 출연한 마이클 V. 가조, 리 스트라스버그를 제치고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의 주인공이 됐지만, 당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1900>을 촬영하던 중이라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고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대신 트로피를 받았다. 이후 마틴 스코세이지의 <택시 드라이버>(1976),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1978)로 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각각 <네트워크>(1976)의 피터 핀치, <귀향>(1978)의 존 보이트에 밀려 무관에 그쳤다. 드디어 남우주연상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린 건 복싱 챔피언/코미디언 제이크 라모타를 연기한 <성난 황소>(1980)였다. 드 니로는 당시 <성난 황소> 제작진을 고소했던 조이 라모타를 비롯한 영화의 주요 스탭들을 일일히 호명하며 감사를 보냈다. 이후 <사랑의 기적>(1990), <케이프 피어>(1991)로 주연상,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으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천부적인 재능에 열렬한 노력까지 더해진다면 최고의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로버트 드 니로는 자기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대부 2> 속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의 비토 콜레오네의 젊은 시절을 정확하게 구현하기 위해 4개월간 공부한 시칠리아어로 거의 모든 대사를 소화했다. 비토 특유의 쇳소리도 드 니로가 제 목소리를 변형시킨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1900>을 촬영 중이던 드 니로는 잠시 촬영 스케줄이 비었을 때, 하루 15시간씩 택시를 몰면서 <택시 드라이버> 주인공 트래비스의 황폐한 마음을 탐구했다.

배우의 대표적인 고생 사례로 손꼽히는 체중 변화에도 빼놓을 수 없다. 평소 큰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던 <워터프론트>(1954)의 감독 엘리아 카잔이 연출한 <라스트 타이쿤>(1976)에 캐스팅 된 드 니로는 18kg을 감량해 주인공 몬로 스타의 깡마른 체형을 만들었다. <성난 황소>(1980)에서는 미들급 챔피언 제이크 라모타에게 직접 특훈을 받아 대회에 나가 승리를 거둘 수 있을 정도의 복싱 실력(연습 중에 조 페시의 갈비뼈를 부러트리기도 했다)을 쌓은 데 이어, 27kg를 찌워 선수 생활을 접고 코미디언이 된 제이크의 모습을 재현했다. 이 기록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1987)에서 고문관 병사를 연기한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32kg를 증량할 때까지 캐릭터를 위해 체중을 늘린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한편, 싸이코패스 살인마 맥스 캐디를 연기한 <케이프 피어>(1991)에선 천연 염색제로 몸에 문신을 새겼을 뿐만 아니라, 5천 달러를 들여 치아를 변형시켜 2만 달러로 다시 복원시켰다.

드 니로는 할리우드 배우들 가운데서도 특히 사생활을 노출시키지 않기로 유명한 배우다. 연애나 가족에 관한 몇몇 팩트만 전해질 뿐이다. 드 니로의 첫 번째 아내는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 <뉴욕, 뉴욕>(1977), <코미디의 왕>(1983)에 출연한 바 있는 배우 다이앤 애보트다. 그는 애보트가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 드레나를 입양했고, 아이를 갖게 된 호텔에서 이름을 따온 라파엘을 슬하에 뒀다. 1988년부터 8년간 사귀었던 모델 투키 스미스와는 대리모를 통한 인공수정으로 쌍둥이 아들을 가졌다. 1997년 결혼한 두 번째 아내 그레이스 하이타워와는 이듬해 아들 엘리엇을 얻었지만 얼마 후 별거했고, 2004년 재결합해 대리모를 통해 딸 한 명을 더 두었다. 드 니로와 하이타워는 작년 11월 이혼했다.

드 니로는 지금까지 협업한 배우들 가운데 메릴 스트립이 최고라고 추앙한다. <디어 헌터>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드 니로와 스트립은 <폴링 인 러브>(1984), <마빈의 방>(1996)까지 세 작품을 함께 했고, 연기 이외 서로의 활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작년 초 내셔널 보드 오브 리뷰 어워드에서 드 니로가 스트립에게 여우주연상을 시상하고, 무대에서 키스를 나누어 두터운 우정을 자랑했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1995년 <카지노>까지 '페르소나' 드 니로와 함께 여덟 작품을 같이 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스코세이지의 새로운 페르소나였다. 스코세이지에게 처음 디카프리오를 소개한 게 바로 드 니로였다. 디카프리오의 첫 주연작 <이 소년의 삶>(1993)에서 그의 양아버지를 연기했던 드 니로는 디카프리오의 빛나는 재능을 스코세이지에게 전한 것. 그렇게 스코세이지와 디카프리오는 <갱스 오브 뉴욕>(2002)을 시작으로 <에비에이터>(2004), <디파티드>(2006), <셔터 아일랜드>(2010),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까지 총 6개 영화를 함께 했다. 기간 대비 빈도로 따지자면 드 니로보다 밀도가 높았던 협업 체제였던 셈이다.

드 니로는 1990년 LA에서 연극 <브롱스 이야기>를 보고 연출을 위한 판권을 구입했다. 마을을 장악한 깡패로부터 아들을 지키려는 버스 운전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브롱스 이야기>(1993)에 신예 릴로 브랜카토 주니어와 원작자 채즈 팰민테리를 주연에 캐스팅 하고, 자신도 직접 출연했다. 드 니로의 두 번째 연출작 <굿 셰퍼드>는 2006년에 제작됐다. <포레스트 검프>(1994), <인사이더>(1999), <뮌헨>(2005)의 시나리오 작가 에릭 로스가 1994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작품을 위해 쓴 스파이물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브롱스 이야기>는 역대 최고의 갱스터 영화라는 찬사를 받은 반면, <굿 셰퍼드>에 대한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드 니로의 오랜 연기 파트너 조 페시가 두 영화 모두에 출연했다.

<머나먼 다리>(1977)의 에디 도헌 하사,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의 예수, <똑바로 살아라>(1989)의 피자 가게 주인, <벅스 라이프>(1988)의 호퍼 목소리, <애니 기븐 선데이>(1999)의 토니 디아마토, <갱스 오브 뉴욕>(2002)의 도살자 빌. 드 니로가 거절한 캐릭터다. <사선에서>(1993)의 테러리스트와 <디파티드>(2006)의 프랭크 코스텔로 역은 각각 감독을 맡은 <브롱스 이야기>와 <굿 셰퍼드>의 작업을 위해 고사했다. <빅>(1988)의 조시, <나홀로 집에>(1990)의 해리, <스피드>(1994)의 하워드, <스파이더맨 2>(2004)의 닥터 악터퍼스의 캐스팅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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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식 재벌

연기만큼이나 드 니로가 열정을 쏟는 분야가 있다. 바로 요식 사업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로빈 윌리엄스와 샌 프란시스코에 루비콘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요식 업계에 입성했다. 일본인 셰프 노부 마츠히사와 손잡고 스시 체인 '노부'를 열어 현재까지 전세계 50개가 넘는 지점을 오픈해 한해에 1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모든 지점에 현직 대통령의 방문이 금지돼 있다는 점. 뉴욕의 트리베카 그릴, LA의 아고 역시 드 니로의 소유다.

198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을 때, 드 니로의 옷에는 녹색 리본이 달려 있었다. 1980~1년 애틀란타 주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에 희생 당한 흑인 아이들을 추모하는 뜻이 담긴 리본이었다. 열혈 민주당 지지자인 드 니로는 빌 클린턴의 탄핵 위기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펼쳤고 2000년부터 앨 고어, 존 케리, 버락 오바마 등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자를 지지했다. 수많은 자리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강도높게 비난해온 드 니로는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를 트럼프에 빗대기도 했다.

지난 50년 동안 드 니로가 작업한 감독들은 다음과 같다. 브라이언 드 팔마, 로저 코먼, 마틴 스코세이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엘리아 카잔, 마이클 치미노, 세르지오 레오네, 테리 길리엄, 알란 파커, 닐 조던, 페니 마셜, 론 하워드, 케네스 브래너, 마이클 만, 아녜스 바르다, 쿠엔틴 타란티노, 뤽 베송, 매튜 본, 데이비드 O. 러셀, 낸시 마이어스... 열거한 이름만으로 드 니로의 절대적인 존재가 충분히 전해지지 않는가?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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