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돌아오는 길. 스마트폰으로 영화 보실 분을 위한 추천 영화를 소개한다. 국내에서 서비스 되고 있는 스트리밍 플랫폼 다섯 곳에서 각각 1편씩 선정해봤다. 가장 중요한 선정 기준은 스마트폰 관람 환경에 좋은 것이다. 아무리 재밌는 영화라도 스마트폰을 이용한 관람 환경에서 보기에 적절하지 않은 영화가 있을 것이다. 이를 테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직접 스마트폰으로는 보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했던 <아이리시맨> 같은 영화는 추천하지 않을 생각이다. 또 스펙터클이 강조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는 아무래도 극장에서 보는 게 좋겠다. 청소년 관람불가의 야릇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도 좀 그렇다. 아래 소개한 리스트의 영화 이외에 추천할 만한 영화는 댓글로 알려주길 바란다.
결혼 이야기
넷플릭스/ 결혼 압박에 시달리는 싱글, 명절 증후군으로 힘든 부부에게 결혼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
<결혼 이야기>는 어른들의 성장 영화다. 사람은 어른이 되어도 성장해야 한다. 몸이 다 자라고 심지어 노화가 진행될 나이가 되어도 우리의 영혼, 마음은 성장이 필요한 때가 있다. <결혼 이야기>는 그 마음의 성장을 보여준다. 단, 성장한 만큼 아파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노아 바움백 감독은 그걸 잘 알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결혼 이야기>는 자신의 이혼 경험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다. <결혼 이야기>는 제목과는 다르게 이혼 과정을 담았다.
배우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연극 연출가 찰리(아담 드라이버)의 이혼 상담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상담사는 두 사람에게 서로의 장점을 써보라고 권한다. 두 배우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은 니콜과 찰리의 장점에 대해 알게 된다. 한편, 두 사람이 상대방의 장점을 쓴 쪽지는 영화 속에서 전해지지 않는다. 찰리는 연극계에서 점점 인정받는 반면, 니콜은 스스로 정체되고 있다고 느낀다. 게다가 찰리는 바람을 피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을 향한 절차를 시작한다. 니콜은 드라마 촬영을 빌미로 아들 헨리(아지 로버트슨)와 고향 LA로 돌아가고 이혼 전문 변호사(로라 던)를 고용한다.
두 사람의 이혼 과정에서 니콜과 찰리는 서로 바라볼 때도 있고 서로 밀쳐낼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왜 두 사람이 이혼하려 하는지 모를 것 같다가 어느 순간 두 사람이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 복잡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노아 바움백 감독이 정교하게 포착해냈다. 특히 니콜과 찰리를 대칭적으로 배치하는 구도과 미장센이 절묘하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다. 랜디 뉴먼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이유들로 <결혼 이야기>는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때 그사람들
왓챠플레이/ 연휴 기간 <남산의 부장들>을 본 관객에게 추천하는 영화
<그때 그사람들>을 지금 다시 보는 이유는 뻔하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지금 극장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왓챠플레이도 이런 이유로 <그때 그사람들>을 최근에 업데이트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설날 연휴 기간에 가족, 친구, 연인과 <남산의 부장들>을 본 관객이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때 그사람들>을 보면서 영화 소개 TV 프로그램의 ‘영화 대 영화’ 꼭지 같은 걸 혼자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임상수 감독이 연출한 <그때 그사람들>은 2004년 개봉 당시 큰 논란이 된 영화였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는 <그때 그사람들>의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하기도 했다. 법원은 특정 장면을 삭제할 것을 명령했다. <그때 그사람들>은 이 사실을 검은 화면 위에 자막으로 처리하고 개봉했다. 정치권에서 이슈가 된 것과는 별개로 비평가들은 영화적 완성도를 칭찬했다. 중장정보부 주과장을 연기한 한석규, 김부장 역의 백윤식 등의 연기는 물론이고 김우형 촬영감독의 촬영이 인상적이다. 카메라의 구도 및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본다면 영화를 즐기는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적 완성도가 흥행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소재의 특수성도 흥행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979년 10월 26일 그때 그 하룻밤의 일을 모티브로 한 <그때 그사람들>은 흥행하지 못했다. 100만 명을 넘기지 못했으니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 다만 <그때 그사람들>은 여전히 유의미한 영화로 남아 있다. 임상수 감독이 아니면 누가 이런 영화를 그때 만들었겠는가.
라스트 미션
유튜브 영화/ 연세 많은 무뚝뚝한 아버지를 둔 자식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라스트 미션>의 원래 제목은 ‘더 뮬’(The Mule)이다. 사전적 의미는 노새이고 속어로는 마약운반책을 뜻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원래 제목 어디에도 ‘마지막’을 뜻하는 건 없다는 것이다. 왜 국내 번역된 제목에는 ‘라스트’라는 단어가 들어갔을까. 영화가 시작되면 그 이유를 볼 수 있다. 아니, 보게 된다. 카메라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몸을 클로즈업해 비춘다. 바짝 마르고 쪼글쪼글한 그의 피부를 보게 되는 순간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자동 연상된다.
제목의 의미를 아흔 살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연결시킨 것은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딸의 결혼식 대신 새 백합 품종 전시회에 참석할 정도로 가족에게 무심한 원예가 얼 스톤(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는 뒤늦게 후회를 하고 있다.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지만 주저하고 있다. 농장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기 때문이다. 옛날 ‘가장’은 이런 데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마약 공급책으로 일을 하게 된다.
90세 거장이 연기하는 87세 마약 운반원의 실화. <라스트 미션>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미묘하다.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놀랍긴 하지만 어쩌면 크게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의 국내 제목에는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팬들에겐 그의 마지막 출연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 정말 크게 다가온다. 영화를 보고 나면 고향집의 부모님 얼굴이 스칠지도 모른다.
바이스
웨이브/ 명절 음식 너무 먹은 사람에게 다이어트 의지를 불태우게 만드는 영화
<바이스>의 핵심 인물은 크리스찬 베일이다. 이 영화에서 미국의 전 부통령 딕 체니를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보지 않는다면 누가 연기했는지 모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 다른 이유는 뻔하다. 그가 연기를 기가 막히게 잘하기 때문이다. 최근 <기생충> 배우들이 최고상인 앙상블상을 수상한 미국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의 수상 소감에 크리스찬 베일의 이름이 등장했다. 피닉스는 “베일이 연기를 못한 걸 본 적이 없다”면서 “단 한번 만이라도 발연기를 하는 걸 보고 싶다”는 농담을 건넸다.
크리스찬 베일의 <포드 V 페라리>를 본 관객이라면 <바이스>의 크리스찬 베일의 모습이 더욱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깡마른 켄 마일스와 뚱뚱한 몸매의 중년인 딕 체니는 정말 다른 사람이다. 명절 음식으로 찐 살이 걱정이라면 크리스찬 베일을 보면서 매우 강력한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을 정도다. 변신의 귀재라는 익숙한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를 딱 한 명만 대라고 한다면 무조건 크리스찬 베일이 될 것이다.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 분장상을 수상한 <바이스> 스태프의 노력을 빼놓으면 안 된다.
크리스찬 베일의 이렇게 훌륭한 연기와 변신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아담 맥케이 감독은 <바이스>를 통해 미국의 가장 비밀스러운 권력자였던 딕 체니의 이면을 까발릴 생각이었다. 대기업 CEO에서 펜타곤을 거쳐 백악관에 입성한 딕 체니야 말로 조지 부시(샘 록웰) 전 대통령을 대신한 진짜 나쁜 놈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더 길티
시즌/ 작은 스마트폰 화면과 이어폰의 환경에 적합한 영화
<더 길티>는 독특한 영화다. 영화 전체 이야기가 전화 통화로 이뤄진다. 한 명의 배우가 88분의 러닝타임을 이끌어간다. 나머지는 관객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과 이어폰을 이용한 관람 환경에서 딱 보기 좋은 영화다.
덴마크 경찰 아스게르(야곱 세데르그렌)는 어떤 사건 때문에 원래 업무에서 경질되고 긴급신고센터에 근무하게 됐다. 국내 기준으로 보자면 광역수사대 형사가 112 신고전화를 받고 처리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아스게르에게 중요한 마지막 재판이 열리기 전날이 배경이다. 취객의 전화를 처리하는 등 반복되는 일상적인 업무 가운데 아스게르는 특별한 전화를 받게 된다. 다급한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아스게르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납치됐다고 생각한다.
<더 길티>에서 아스게르는 오로지 전화만 할 수 있다. 당장 뛰쳐나가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 헤드셋 너머 들려오는 작은 소리들이 모두 증거가 되고 그것들을 퍼즐 맞추듯이 엮어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관객도 이 과정에 동참하고 집중해서 영화를 보게 된다. <더 길티>의 이른바 ‘사운드 스릴러’ 컨셉은 꽤나 효과적이다. 전에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긴장감, 독특한 북유럽 감성의 스릴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반전도 참신하다. 영화 러닝타임 내내 혼자서 통화하는 내용으로만 구성된 영화로는 톰 하디 주연의 <로크>도 있다. 주의할 점, 고향으로 돌아오는 와중에 만약 통화를 자주 하게 된다면 <더 길티>를 다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