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보 실록’(다사다난한 한국야구위원회(KBO) 및 야구판과 드라마 내용이 너무 닮았다는 의미에서 시청자들이 만든 표현)이라 불리는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유일하게 비현실적인 요소가 있다면, 유민호 선수를 연기한 채종협의 해사한 얼굴이다. 격한 반응을 쏟아내던 시청자들도 유민호가 나타나면 “저렇게 생긴 야구선수는 없다”며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하지만 티 없이 웃는 모습 때문에 팔꿈치 부상으로 인한 그의 슬럼프가 보다 극적으로, 현실적으로 구현된 것을 모르는 시청자는 없었을 것이다.
요즘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나도 사람인지라 지금은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유산소운동을 하며 살을 빼고 있다. 근육이 갑자기 커지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느라 너무 몸을 고생시킨 것 같다.
몸을 만들고 투구 폼을 연습하는 과정이 꽤 힘들었겠다.
미친 듯이 먹고 운동하고 또 연습하고…. 와인드업은 어떻게 하고 릴리즈 포인트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단기간에 배우고 몸에 익혔다. 다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아쉽다. 나 자신을 더 혹사시키고, 더 아프고 힘들었어야 했는데. 하지만 연기뿐만 아니라 외적인 부분까지 노력해서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얻는 게 많았다. 이번 경험이 앞으로 내가 연기를 할 때 두고 두고 도움이 될 것 같다.
회식을 하면 왠지 운동부 뒤풀이 느낌이 났을 것 같은데. (웃음)
정말 그랬다. 우리도 너무 과몰입했다. (웃음) 옛날에는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았다. 고기가 익으면 사람들을 다 챙겨준 후 나는 남은 것만 조금 먹었는데, 요즘엔 운동선수처럼 고깃집 가면 고기만 계속 쳐다본다. 적당히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내가 찍은 고기는 언제쯤 다 익나 체크하고.
야구선수로서 보여준 외적인 부분도 인상적이지만, 감정연기도 꽤 안정적이었다. 특히 첫 연봉 협상 자리에서 2700만원을 제시받고 애써 웃는 모습이라던지.
처음에는 최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그렇게 연기했다면 그 신을 잘 살리지 못했을 것 같다. 앞에서 같이 연기를 맞춰주는 박은빈 선배, 장진우 선수를 연기한 홍기준 선배가 잘 이끌어줬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담백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드라마 후반부에는 부담감도 덜게 돼 연기에 대해 배운 게 많았다.
10대 시절에는 타이에서 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4~5년 정도 살았다고. 어떻게 한국에서 연기를 시작하게 됐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형이 모델 일을 권유해서 현지에서 시작해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최종 문턱에서 자꾸 떨어지더라.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국에서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오기가 생겨서 돌아오게 됐다. 사실 에이전시에 있던 실장님이 계속 시나리오 같은 걸 읽어보라면서 줬는데, 최근에 만나 그때 왜 그랬냐고 물어봤다. “처음 봤을 때부터 연기를 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 그때 미국 드라마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 오디션도 봤다. 결과적으론 떨어졌지만 무언가를 계속 공부할 수 있게 해주는 ‘연기’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오래 살았으니 영어도 잘하겠다.
혼자 해외 나가서 막힘없이 대화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 생각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하면 반전 매력으로 보일 것 같아서, 언젠가 ‘짠~!’ 하고 보여 드리려고 숨기고 있다. (웃음)
신인배우라서 해보고 싶은 역할, 캐릭터가 무궁무진하겠지만 최근에 유독 마음에 들어온 작품이 있나.
사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살 때 인종차별을 목격하기도 하고 직접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흑인 인종차별을 다룬 <그린북>(2018)을 볼 때 너무 마음에 와닿았다. 언젠가 저런 소재를 다룬 영화를 꼭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TV
2019 <스토브리그>
2019 <루머>
씨네21 www.cine21.com
글 임수연·사진 백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