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영화계가 얼어붙었다. 16년 만에 극장가는 최저 일일관객수를 기록했고, 기대작들은 개봉을 연기했다. 많은 이들의 기대작이었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역시 코로나 19의 영향을 피해 가지 못했다.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기에 더 아쉬운 결과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올해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네덜란드에서 개최되는 로테르담 국제영화제는 전 세계 신인 감독을 발굴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영화제다. 두 편 이하의 작품을 연출한 신인 감독들의 신작이 경쟁부문 후보에 오르며, 이 중 최고 작품이 타이거상을 수상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비롯해 그간 다양한 한국 영화들이 경쟁/비경쟁 부문의 후보로 올라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고, 전 세계 비평가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로테르담국제영화제가 트로피를 안긴 한국 영화들을 한자리에 모아봤다.


1997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타이거상 수상

<꽃잎> | KNF(네덜란드 비평가협회) 특별언급상 수상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속물적인 현대인들의 내면을 건조하고 회의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선 “자극적이고 철학적이며 상당한 수준에 올라선 영화로 연출력과 각본, 연기가 뛰어난 영화”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평하며 홍상수 감독에게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안겼다. 이로써 홍상수 감독은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에서 타이거상을 수상한 최초의 한국 감독이 됐다.

<꽃잎>

15살 소녀 이정현의 놀라운 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꽃잎> 역시 그 해 로테르담 국제영화제가 주목한 작품 중 하나. <꽃잎>은 네덜란드 비평가협회가 수여하는 KNF 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


1998년

<초록 물고기> | 넷팩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특별언급상 수상

<모텔 선인장> | 국제비평가협회 특별언급상 수상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밀양> <시> <버닝>… 연출작이 나올 때마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창동 감독 역시 신인 감독 시절 로테르담 국제영화제를 거쳤다. 이창동 감독은 연출 데뷔작 <초록물고기>를 통해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진흥기구에서 수여하는 넷팩상 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 <초록물고기>는 “리얼리즘과 장르적 완성도가 적절한 조화를 이뤘다”는 평을 받았고, 이창동 감독은 이 작품으로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 국내 굵직한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최우수작품상을 동시에 받는 기록을 세웠다. 로테르담 외 20여 개의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모텔 선인장>

정우성, 박신양 등의 신인 시절을 만날 수 있는 영화 <모텔 선인장> 역시 1998년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 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 <모텔 선인장>은 ‘모텔 선인장’에서 벌어지는 커플 세 쌍의 사랑과 갈등을 파격적으로 담아낸다. 박기용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신인 시절의 봉준호 감독과 장준환 감독이 조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의 각본가로도 함께했다.


2002년

<고양이를 부탁해> | KNF 특별언급상 수상

<고양이를 부탁해>

2002년엔 국내 청춘 영화 계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고양이를 부탁해>가 네덜란드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사회에 이제 막 발을 내딛는 스무 살 여성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담아낸 <고양이를 부탁해>는 “학생과 사춘기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해엔 허진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 <봄날은 간다>도 경쟁부문에 함께 초청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03년

<질투는 나의 힘> | 타이거상 수상

<질투는 나의 힘>

소년과 어른의 경계에서 허우적대는 신인 박해일의 얼굴이 돋보이는 작품. <질투는 나의 힘>은 제32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타이거상을 수상했다. 1997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 한국 영화가 두 번째로 거둔 최고상 성과다.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단은 “인간관계를 고찰하는 야심찬 영화”로 <질투는 나의 힘>을 평가했다. 이어 “단호함과 섬세함이 어우러진 연출, 배우들의 연기 조화가 돋보인다”는 평을 덧붙였다.


2004년

<지구를 지켜라!> | KNF 특별언급상 수상

<지구를 지켜라!>

시대를 앞서나가 외면받은 비운의 걸작. 장준환 감독의 장편 연출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 역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의 선택을 받았다. 해외 평단으로부터 “주제에 접근하는 변화무쌍한 방식에서 에너지와 광기, 번뜩이는 재치, 치밀함이 보였다”는 평을 받은 <지구를 지켜라!>는 네덜란드 비평가 협회가 수여하는 KNF 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지구를 지켜라!>와 나란히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한국 영화론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있다.


2009년

<똥파리> | 타이거 상 수상

<똥파리>

한국 영화는 6년 주기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타이거상을 수상했다. 2009년 타이거상을 품에 안은 주인공은 장편 연출 데뷔작 <똥파리>로 국내외 영화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양익준 감독이다.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똥파리>는 “영화 속에서 보기 힘든 상황을 날카로운 현실 감각으로 표현하고 연기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아주 까다로운 문제를 따뜻한 유머 감각으로 포용력 있게 그린 점에 놀랐다”며 <똥파리>를 최우수 작품상으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2010년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 넷팩상 수상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황철민 감독은 주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독립 영화를 연출해왔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역시 중학교 동창생인 여성 두 명의 이야기에 사회의 난제를 녹여낸 작품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당한 진희(성수정)가 대기업 비서로 일하는 예원(이혜진)을 만나고, 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간극을 체감하는 과정을 담는다. 제39회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넷팩상을 수상한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는 그해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2011년

<무산일기> | 타이거상, 국제비평가협회상 수상

<무산일기>

<무산일기>는 탈북자 승철의 삶을 건조하게 관찰한 일지 같은 영화다. 박정범 감독이 연출과 동시에 주연 승철을 연기하며 일인 이역의 몫을 해냈다. 이미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았고, 제10회 마라케시 영화제에서 대상을 품에 안은 <무산일기>는 2011년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도 최고상인 타이거상, 그리고 국제비평가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은 <무산일기>는 “내러티브가 견고하게 짜인 영화” “신인 감독으로서 성숙한 데뷔작이며 한국의 현실을 다른 차원과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만드는 사회적 드라마”라는 평을 전했다. <무산일기>와 함께 윤성현 감독의 데뷔작 <파수꾼>도 같은 해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2014년

<한공주> | 타이거상 수상

<한공주>

이수진 감독의 장편 연출 데뷔작 <한공주>는 역대 다섯 번째로 타이거 트로피를 품에 안은 한국 영화다. 이미 영화가 첫 공개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부터 필수 관람작으로 입소문을 탔던 바. <한공주>는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외, 마라케시국제영화제, 도빌아시아영화제, 시체스영화제에서도 대상을 수상했고, 그 외 수많은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단 측은 “능숙하게 다듬어진, 대단히 완성도 높은 성공적인 데뷔작” “퍼즐처럼 이야기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으로 관객을 유혹하는 작품”이란 평으로 <한공주>를 설명했다.


2020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 심사위원상 수상

<남매의 여름밤> | 밝은 미래상 수상

<기생충: 흑백판> | 관객상 수상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장편 연출 데뷔작에 전도연, 정우성, 윤여정, 배성우 등 톱스타들을 끌어모은 능력자, 김용훈 감독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통해 올해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품에 안았다.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측은 “기존 장르 영화의 틀을 유지하지만, 유연한 구조를 지닌 영화다. 훌륭한 각본, 연기 등을 모두 탁월하게 연출해낸 훌륭한 데뷔작”이라는 평을 전했다. “현대 사회 계층 간 불평등 문제를 범죄 장르에 잘 녹여낸 점” 역시 극찬을 받았다.

<남매의 여름밤>

이뿐만이 아니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에 성공한 윤단비 감독의 장편 데뷔작, <남매의 여름밤>은 올해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밝은 미래상을 수상했다. 집안 문제로 동생, 아버지, 고모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살게 된 소녀 옥주가 짧은 시간 가족을 관찰하고, 이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순간들을 담아낸 영화다.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측은 “현대사회에서 가족이 지닌 의미를 탐색한다는 점에서, 윤단비 감독은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연상시킨다”는 극찬을 전하기도 했다.

<기생충>

이제 해외 영화제, 시상식에서 빠지면 허전한 그 이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올해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이번 영화제엔 흑백판이 출품되었다는 것. 최초 공개된 자리에서 관객상 수상까지 성공한 셈이다. 지난 19일 개최된 <기생충> 공식 기자회견에서 봉준호 감독은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기생충: 흑백판>을 언급하며 “묘하다”는 말로 영화의 느낌을 압축 설명한 바 있다.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의 어떤 관객이 “흑백으로 보니 화면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고. 영화에서 냄새가 나는지, 나지 않는지는 <기생충: 흑백판>의 개봉일이 확정돼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2월 26일 관객을 찾을 예정이었던 <기생충: 흑백판>은 코로나 19의 확산 피해 방지 차 개봉을 연기한 상태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