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2003년은 한국영화의 황금기로 불린다. 박찬욱의 <올드보이>,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 김지운의 <장화, 홍련>, 임상수의 <바람난 가족>, 박찬옥의 <질투는 나의 힘> 등이 모두 2003년 개봉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인의 추억>. 재기 넘치는 입봉작 <플란다스의 개>(2000)로 대중 앞에 등장한 봉준호는 (2019년 9월까지 미제로 남았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모티브로 한 걸작 <살인의 추억>을 발표했다. 한국 시장에서 유독 힘을 못 쓰는 장르인 스릴러에 마지막에 범인이 잡히지도 않는 이야기라 제작 당시 우려도 많았지만, 온갖 장르의 쾌감을 안겨주는 봉준호의 연출력, 김형구 촬영감독과 이강산 조명감독 등 베테랑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힘, 배우 송강호의 괴물 같은 에너지가 한데 모인 작품은 즉시 대중을 사로잡았다. 송강호의 마지막 응시를 오랜만에 스크린을 통해 마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