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의 1997-98년 시즌에 초점을 맞춘 ESPN의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당대 패션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스니커즈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마이클 조던을 위해 만들어진 나이키의 농구화 시리즈 '에어 조던'이 스니커즈 문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 터. 이에 맞춰, 영화 속에 등장한 인상적인 스니커즈들을 소개한다.


반스 체커보드 슬립온

<리치몬드 연애소동>

Fast Times at Ridgemont High, 1982

<리치몬드 연애 소동>의 제프 스피콜리(숀 펜)는 시종일관 반스의 '체커보드 슬립온'을 신고 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동에서 유일하게 일관적인 게 그 신발을 신는다는 점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체커보드 슬립온은 제프의 발을 감쌀 뿐만 아니라, 손에 잡혀 있기도 하고, 대마초가 얼마나 자기를 뿅 가게 하는지 증명하는 구실로도 쓰인다. 이 신발을 고른 건 연출을 맡은 에이미 헥커링도, 시나리오를 쓴 카메론 크로우도 아닌, 제프 역의 숀 펜이었다. 숀 펜은 산타 모니카의 신발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반스의 체커보드 슬립온을 발견하고 직접 감독에게 그걸 신고 싶다고 말했다. <리치몬드 연애 소동>의 성공에 힘입어, 1982년 당시 작은 회사였던 반스 역시 눈에 띄기 성장하기 시작했다. 반스 창립자의 아들인 스티브 반 도렌이 시사회에서 나눠줬던 한정판이 올해 3월 복각 발매되기도 했다.


나이키 반달

<터미네이터>

The Terminator, 1984

<터미네이터> 속 미래에서 온 캐릭터는 알몸으로 등장한다. '악역' 터미네이터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에 이어, 사라 코너를 구하러 온 카일 리스(마이클 빈) 역시 마찬가지다. 부랑자에게서 바지를 뺏어 입은 카일은 맨발로 도망치다가 쇼핑몰에 들어가 트렌치코트를 입고, 매대에서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을 골라 신는다. 그게 바로 나이키의 '반달'이다. 피팅 룸에 숨어 신발을 제대로 고쳐 신는 모습까지 확실히 보여준 후, 카일은 영화 내내 반달을 신고 있다. 80년대 초반 처음 출시된 반달은 이후 드문드문 여러 버전으로 발매되고, <터미네이터 제니시스>(2015)에서 제이 코트니를 통해 1편의 카일 도주 신을 리메이크 할 때도 나이키 반달 역시 빠지지 않았다.


나이키 에어 조던 4

<똑바로 살아라>

Do the Right Thing, 1989

80년대 말 90년대 초, 흑인 문화를 대표하는 감독이었던 스파이크 리의 걸작 <똑바로 살아라>엔 신발로 흑인/백인 갈등을 나타내는 신이 있다. 주인공 무키(스파이크 리)의 친구 버긴 아웃(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은 거리에서 지나가던 백인이 부딪혀서 새로 산 나이키 '에어 조던 4'에 흠집을 입게 된다. 그가 사과도 없으니 버긴 아웃은 그를 불러세워 "왜 흑인이 득시글거리는 동네에 이사 왔어?" 다짜고짜 따지고, 주변 친구들은 "네 조던 완전 엉망이야" "그냥 버리는 게 낫겠다" "밟히기 전에는 죽이는 신발이었는데 저놈이 일부러 그런 것 같아"라며 거든다. 누군가 "이거 얼마짜리야?" 라고 묻자 다른 친구가 "세금까지 108달러야!"라고 대신 답한다. 실제로 영화가 공개되던 1989년 처음 발매됐던 조던 4의 현재 리테일가는 225달러다. 조던 3과 4의 광고를 연출한 바 있는 스파이크 리는 농구 영화 <히 갓 게임>(1998)에서 '조던 13'을 중요하게 쓰기도 했다.


나이키 에어 맥

<빽 투 더 퓨처 2>

Back to the Future Part II, 1989

<빽 투 더 퓨처 2>의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마이클 J. 폭스)는 브라운 박사(크리스토퍼 로이드)로부터 사람의 몸에 맞게 변하는 나이키 재킷과 하이탑 스니커 '맥'을 받는다. 나이키의 신발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는 맥을 직접 디자인 하면서 <빽 투 더 퓨처 2>의 배경인 2015년에 유행할 만한 디자인을 상상했다. 2015년이 5년이나 흐른 지금 맥이 꽤나 익숙하게 보이는 것 보면 햇필드의 선구안이 얼마나 신통한지 알 수 있다. 2005년부터 맥의 상용화를 연구해온 나이키는 2016년 신발끈이 맥의 시제품을 89족 한정으로 선보였고, 발에 맞게 신발이 조여지는 기술을 구현한 '어댑트'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다.


나이키 코르테즈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1994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빽 투 더 퓨처 2> 이후 5년 뒤 발표한 휴머니즘 드라마 <포레스트 검프>에서 다시 한번 나이키 스니커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오프닝부터 자명하다. 깃털 하나가 하늘을 이리저리 유영하다가 마침내 포레스트 검프(톰 행크스)의 더러운 나이키 코르테즈 앞에 떨어진다. 이로서 <포레스트 검프>는 이 어리숙해 보이는 남자가 지나온 파란만장한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이고, 말쑥한 차림을 하고 왜 이토록 더러운 나이키 신발을 신고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포레스트는 자신에게 뛰는 걸 일깨워준 영원한 사랑 제니(로빈 라이트)가 오랜 방황 끝에 자기 곁에 머물던 시절 선물해준 나이키 코르테즈를 신고 3년 동안 미국 전역을 달린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행색도, 세간의 반응도 바뀌었지만 달리는 포레스트의 발엔 언제나 나이키 코르테즈가 함께 했다. <포레스트 검프>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코르테즈가 등장했는데, (컬러 조합이 다르긴 하지만)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에서 마약에 절은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뇌성마비 증세를 앓다가 흰색 람보르기니로 기어가는 장면이 꽤 인상적이다.


나이키 에어 조던 11

<스페이스 잼>

Space Jam, 1996

실사/애니메이션이 조합된 영화 <스페이스 잼>은 마이클 조던과 '루니 툰' 캐릭터가 만나 화제를 일으킨 작품이다. 만화계 범죄집단 너드 럭스는 지구의 루니 툰 세계를 발견해 그 거주민들을 노예로 만들고자 농구 경기를 제안하고, 루니 툰 캐릭터들은 지구 최고 농구 선수들의 능력을 훔친 너드 럭스에 맞서 농구 코트를 떠나 야구 선수가 되어 죽쑤던 마이클 조던을 스카웃 한다. 조던이 농구를 하는 영화인 만큼, 나이키의 에어 조던 2, 9, 10, 11번 모델이 눈에 띈다. 단연 가장 두드러지는 건 11번. 1993년 은퇴한 마이클 조던은 2년 뒤 조던 11과 등번호 45번과 함께 코트에 복귀해 95-96년 시즌 시카고 불스가 72승 10패의 역사적인 기록을 세우는 데에 공을 세우면서 여전한 왕좌를 증명한 바 있다.


오니츠카 타이거 타이치

<킬 빌 1>

Kill Bill: Volume 1, 2003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야심차게 준비한 액션 영화 <킬 빌 1>은 평소 그가 흠모한 액션영화에 관한 오마주가 곳곳에 묻어 있다. 영화 후반, 주인공 브라이드(우마 서먼)가 크레이지 88과 사투를 벌이는 청엽정 전투 신에서 착용한 노란 '추리닝'은 명백히 <사망유희>(1978)의 이소룡을 향한 오마주다. 다만 신발은 조금 다르다. <사망유희>에서 빌리 로(이소룡)가 맨티스(카림 압둘 자바)와 싸우는 신에서 이소룡은 오니츠카 타이거의 '멕시코 66'을 신고 있지만, <킬 빌 1>의 브라이드가 신고 있는 모델은 '타이치'다. 언뜻 비슷하게 생긴 두 모델은 신발 앞뒷 면에 봉제선의 유무로 구분할 수 있다. 노랑과 검정 조합의 타이치는 <킬 빌 1>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컬러웨이였지만, 나중에 '킬 빌 타이치'라는 이름으로 정식 발매됐다.


아디다스 '지소'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 2004

타란티노와 함께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또 다른 미국 감독 웨스 앤더슨 역시 영화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을 위해 스니커즈를 특별 제작했다. 스티브 지소(빌 머레이)가 이끄는 해저 탐험대의 전용 신발이다. <로얄 테넌바움>(2001)의 테넌바움 삼부자에게 새빨간 트랙수트를 입힌 데 이어 또 한번 아디다스를 향한 편애를 보여준 셈이다. 하얀 바탕에 노란색, 하늘색, 파란색 조합이 돋보이는 신발은 아디다스의 '롬'과 그나마 유사해 보인다. 오직 영화에서만 존재했던 신발인 탓에 웨스 앤더슨 팬들은 직접 '지소'처럼 커스텀 해 신기도 했는데,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에서 데이빗 보위의 노래를 부르는 펠레 역의 뮤지션 세우 조르지의 콘서트 현장에서 딱 하루동안 한정판으로 판매되었다.


나이키 에어 조던 1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Spider Man: Into the Spider-Verse, 2018

2018년 말 공개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피터 파커를 잇는 2대 스파이더맨 마일스 모랄레스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었다. 방사능 거미에게 물리기 전까진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마일스는 주구장창 나이키 '에어 조던 1'을 신고 나온다. 조던 1은 1984년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을 위해 만든 최초의 농구화다. 레드, 화이트, 블랙이 적절히 조합된 컬러웨이의 모델 (조던의 팀 '시카고 불스'에서 따온 이름) '시카고'는 이듬해 9월 발매돼 현재까지 최고 인기의 조던 모델로 손꼽힌다. 마일스가 신는 조던 1이 바로 시카고다. 1985년 오리지널 판은 100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가격에 거래되는 '유물'로 칭송 받고, 2015년 재발매 버전의 매물도 200만원을 웃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개봉 즈음해 시카고의 컬러웨이는 그대로 가져와 몇 가지 디테일을 더한 모델 '오리진 스토리'가 발매됐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