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처럼 2001년 10월 개봉해 극장가를 장악한 조폭영화들에 밀려 흥행에 실패한 또 다른 영화가 있다. 정재은 감독의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2001)다.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 등을 캐스팅해 인천의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섯 친구들이 통과하는 스무살의 시간을 품은 <고양이를 부탁해>는, 학교를 벗어나 서로 떨어져 지내다 종종 만남을 가지면서 변해가는 관계를 감각적으로 포착하는 이미지와 음악으로 적지만 든든한 관객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 중반 돋보이던 젊은 배우들의 얼굴을 통해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기는 청춘을 담은 <태풍태양>(2005)은 여러모로 아쉬운 결과를 맞닥뜨려야 했다. 그 후 오랫동안 신작을 내놓지 않던 정재은은 건축가 故 정기용의 마지막 나날을 보여주는 <말하는 건축가>(2011), 건축가 유걸이 설계한 서울시 신청사가 대중에게 공개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말하는 건축: 시티:홀>(2013) 등 건축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면서 창작의 길을 모색했다. <러브레터>(1995)의 나카야마 미호와 김재욱이 호흡을 맞춘, 13년 만의 새 극영화 <나비잠>이 2018년 9월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