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급으로 긴 장마가 끝나자마자 교회로부터 시작된 코로나19가 다시 가파른 확산세를 보이며 연일 세 자리 숫자의 확진자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관중 입장을 재개했던 프로야구와 프로 축구가 다시 무관중 경기로 돌아섰고, <반도>와 <강철비 2: 정상회담> 그리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 굵직한 한국 기대작들이 연달아 선보이며 그중 두 편이 300만 명을 돌파해 여름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어 줬는데 도로 먹구름이 드리우게 되었다. 개봉 3일을 남겨뒀던 <국제수사>는 전격적으로 개봉을 연기했고, 줄줄이 잡혀있던 무대인사와 GV 행사들도 모조리 취소되는 등 악재가 덮쳤다. 올여름 가장 큰 기대작이자 유일한 블록버스터로 주목받던 <테넷>의 공개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를 넘어 3단계로 전환될 경우 어찌 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예측불가의 상황을 맞았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굳건한 건 각종 OTT 서비스들이다. 코로나 기간이 겹치는 1분기에만 넷플릭스는 전 세계적으로 무려 1600만 명의 신규 가입자가 늘었고, 국내에선 3월에만 362억 원이란 매출을 올리며 초토화된 극장가의 대안으로 첫손가락에 뽑혔다. 작년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에 비해 두 배 이상 성장한 수치다. 왓챠도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시청 시간이 66% 이상 증가하며 혜택을 봤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웨이브와 티빙의 앱 월간 이용자 수(MAU)도 70% 이상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이들 중에서도 독자적인 오리지널 영화들을 공급 가능한 넷플릭스는 새로운 극장 개봉작이 거의 전무한 틈을 타 3월부터 8월까지 거의 매달 공격적인 신작 라인업들을 내놓았다. 원래부터 기획된 작품들도 있고, 극장 개봉이 요원해진 틈을 타 넷플릭스로 갈아탄 경우도 있다.

저마다 취향과 장르가 다른, 다양하고 새로운 영화들의 기대감은 그대로 음악에도 반영되었다. 좀처럼 새로운 영화음악들을 만나기 힘든 시기, 그 난관을 뚫고 넷플릭스에 도착한 새로운 영화음악들에 대해 소개해본다.


프로젝트 파워 Project Power

음악 : 조셉 트래패니스

<파라노멀 액티비티> 3편과 4편을 연출하며 박스오피스를 제패했던 듀오 감독 헨리 유스트와 아리엘 슐만이 공동 연출한 <프로젝트 파워>는 가장 최근인 8월 14일 공개된 작품으로, 현재 ‘스폰’ 역에 캐스팅된 제이미 폭스와 ‘조토끼’ 조셉 래빗 고든, 힙합소녀 도미닉 퍼시백이 출연한 색다른 개념의 능력자물이다. 고정된 능력치가 아닌, 알약을 먹으면 5분간 임의의 초능력이 발현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흥미를 자아내는데, 믿을 만한 스타 배우들과 감각적인 비주얼, 강력한 음향 효과로 뻔하지만 엔터테인먼트에 충실한 재미를 안겨준다. 음악을 담당한 건 1984년생의 젊은 작곡가 조셉 트래패니스다. 2010년 다프트 펑크가 음악을 맡은 <트론: 레가시> 작업에 참여하며 영화음악에 발을 디딘 그는 <레이드>와 <다이버전트> 시리즈, <오블리비언>, <위대한 쇼맨> 음악 등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필모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데뷔 초부터 다프트 펑크나 M83, 정키XL, 마이크 시노다, 존 데브니 등 여러 정상급 뮤지션들과 좋은 협업을 가졌으며, 액션이나 SF, 판타지 등 시각적으로 두드러진 장르들에서 탁월한 사운드 메이킹을 들려준 바 있다. 이번 <프로젝트 파워>에서도 그의 감각적이고 파워풀하며 미래지향적인 일렉트릭 사운드의 향연을 맛볼 수 있다. 마치 다프트 펑크와 함께 한 <트론: 레가시>와 M83과 함께 한 <오블리비언>, 그리고 정키XL과 함께 한 <다이버전트>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놓인 듯한 이 작업물은 스피디한 플롯과 아이디어로 중무장한 액션 시퀀스들에 걸맞은 둔중한 저역대의 리드미컬한 베이스와 타격감이 느껴지는 비트가 어우러지며 임팩트를 남긴다. 그들과 달리 테마는 희미해 잔상으로 남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다크하고 몽환적인 소리들의 총체는 5분간 존재하다 사라지고 마는 신기루 같은 초능력 컨셉에 퍽 잘 어울린다.


올드 가드 The Old Guard

음악 : 더스틴 오할로란 & 하우슈카

<러브 앤 바스켓볼>과 <블랙 버드>를 연출한 바 있는 지나 프린스-바이스우드가 그렉 루카의 동명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감독한 <올드 가드>는 샤를리즈 테론과 치웨텔 에지오포, 키키 레인 등이 출연하는 넷플릭스 버전의 슈퍼히어로물이다. 흑인 여성이 최초로 만화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기도 한 이 영화는 7월에 공개돼 <익스트렉션>과 <버드 박스>, <스펜서 컨피덴셜>, <식스 언더그라운드>, <머더 미스터리>에 이어 6위에 랭크되며,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10대 작품 안에 들었다. 슈퍼히어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감독이 연출한 만큼(?), 음악에서도 이 장르와는 전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더스틴 오할로란과 하우슈카(볼커 베텔만)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맞다. 그들은 <라이온>의 음악으로 오스카를 비롯해 각종 시상식에 오른 바 있는 작곡가 듀오다.

<라이온> 전까지 각자 인디 록 밴드와 유럽 등지에서 피아노 솔로 활동, 우연한 기회에 영화음악에 입문하는 등 비슷한 행보를 보여 온 그들은 각자의 활동을 하는 동시에 <커런트 워>와 <레이싱 인더 레인> 그리고 개봉 대기 중인 <암모나이트> 등의 영화들에서 협업을 이어가며 좋은 케미를 발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올드 가드>의 음악도 매우 특별하다. 기존 슈퍼 히어로 장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전통적인 심포니도, 웅장한 팡파르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을 버텨온 불사자의 심상을 묘사한 듯한 공감각적인 엠비언트의 파편과 서정적인 피아노, 액션을 위한 비트들이 나열될 뿐이다. 중간중간 오케스트레이션을 활용해 스케일을 키우고 서사에 도움을 받지만, 전체적인 음악적 응집력은 다소 부족한 편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익숙한 장르적 컨벤션을 넘어 색다른 소리들을 배치하고 창출해낸 그들의 시도는 참신하고 재밌는 결과물을 낳았다. 지나 프린스-바이스우드의 영화처럼.


다 5 블러드 Da 5 Bloods

음악 : 테렌스 블랜차드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대로 침몰할 줄 알았던 8∼90년대 흑인 영화의 기수 스파이크 리는 2018년 <블랙클랜스맨>으로 완벽하게 부활했다.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에 이어 염원하던 오스카 (비록 감독상과 작품상은 놓쳤지만) 각본상을 수상하며 그의 저력을 만천하에 각인시켰다. 그 에너지를 이어받아 스파이크 리 영화 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 베트남으로 돌아온 4명의 참전용사들의 회고와 뒷얘기를 다룬 이번 작품 <다 5 블러드>는 칸영화제 출품 예정작이었지만, 안타깝게 코로나로 무산되는 바람에 넷플릭스에서 6월에 공개됐다. 지난 재기작이 단순한 회광반조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거장다운 솜씨로 미국 현대사를 재조명해가는 손길은 더욱 능수능란하고 노련해졌다. 거의 30년간 16편의 영화에서 음악적 파트너가 되어준 테렌스 블랜차드의 스코어도 여전히 인상적이다.

흑인의 시선으로 미국의 본질을 탐험해가는 스파이크 리처럼 블랜차드의 스코어 역시 미국 음악의 본질을 담고자 했던 아론 코플랜드와 현재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음악의 거목 존 윌리엄스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 자신의 본류인 재즈를 비롯해 소울과 밀리터리 사운드, 클래식 등을 한데 뭉뚱그려 정통적인 방식의 필름 스코어링을 구사하는 <다 5 블러드>는 원숙한 거장의 역작으로 아름답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애국적인 트럼펫 선율을 반어적으로 대치시키고, 과장됐지만 익숙한 오리엔탈리즘을 조금 곁들이며 지역성을 강조해 시간을 역행해가며 뿌리를 찾아가는 흑인들 여정에 강한 모티베이션을 구축한다. 여기에 마빈 게이와 커티스 메이플라워, 프레다 페인과 챔버 브라더스 등 블랙뮤직을 살뜰하게 곁들이며 70년대 거세게 불어닥친 인종 차별 문제를 짚어내는 삽입곡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다가올 오스카 레이스에 발을 디딘 스파이크 리 못지않게 테렌스 블랜차드의 음악 역시 강력한 후보 예상작이 될 듯하다. 영화음악가로 저평가되어 온 그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작품.


익스트랙션 Extraction

음악 : 헨리 잭맨 & 알렉스 벨처

<토르>의 크리스 헴스워스와 MCU의 진정한 수혜자라 할 수 있는 루소 형제들이 각본을 맡은 액션물 <익스트랙션>은 뜻밖에도 연출 초년병인 샘 하그레이브의 감독 입봉작이다. 하지만 2005년부터 할리우드에서 스턴트 더블과 코디네이터로 잔뼈가 굵은 경력이 말해주듯 액션에 있어선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화로 완성해냈다. 만화가 앤디 팍스와 루소 형제 중 조 루소가 2014년에 그린 그래픽 노블이 원작이지만, 워낙에 단순하고 직선적인 구조이기에 사실상 액션이 이 영화의 모든 걸 구원한다. 그 화끈함 때문인지 4월에 공개된 후 넷플릭스가 세워진 이래 역사상 가장 많이 시청된 작품 1위에 올랐고, 발 빠르게 속편 작업에 들어갔다. 음악은 루소 형제들과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헨리 잭맨과 오랜 기간 그의 어시스트로 일하다 공동 작곡가로 승업된 알렉스 벨처가 맡아 아드레날린이 잔뜩 분비되는 음악을 완성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 시퀀스의 연속인 영화처럼 음악도 처음부터 끝까지 주야장천 달려간다. 짐머로 촉발돼 존 파웰에서 만개한 현악 오스티나토와 타악 비트감이 조화된 액션 스코어링은 <익스트랙션>에서도 유효하다. 21세기 액션 영화의 교본이 된 '본' 시리즈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발현돼 주된 테마나 멜로디 라인 없이 역동적인 선율과 가끔 잠시 쉬어가는 템포 조절로만 완급을 조율한다. 이국적인 방글라데시라는 무대도, 주인공의 아픈 과거사도 필요 없이 오로지 액션에만 올 인하는 헨리 잭맨과 알렉스 벨쳐의 음악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들려줬던 장점과 매력을 지나쳐 극단적이고 기능적인 장치에만 머무르는 듯해 다소 아쉽다. 하지만 이처럼 순수하게 액션에만 치중됐던 영화가 드물었던 것만큼 이렇게 다이내믹한 퍼쿠션과 현악의 상승과 하강으로 긴장감을 잔뜩 조성하는 스코어를 만나기도 쉽지 않기에, 짐머의 리모트 콘트롤 프로덕션이 공인한 액션 음악은 반갑다.


스펜서 컨피덴셜 Spenser Confidential

음악 : 스티븐 자브론스키

로버트 B. 파커가 쓴 <탐정 스펜서> 시리즈는 80년대 중반 미드로 만들어져 세 시즌 동안 방영된 작품이었다. 국내에서도 소개됐고, 원작 소설도 번역됐다. 3월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피터 버그 감독의 <스펜서 컨피덴셜>은 그 기저는 공유하지만, 원작자 파커가 타계한 후 그 스펜서 시리즈를 이어받은 에이스 앳킨스가 집필한 두 번째 소설 ‘원더랜드’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길을 걷는다. 버그 감독 영화에서만 벌써 다섯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마크 월버그와 윈스턴 듀크가 미드에서 로버트 울리히와 에이버리 브룩스가 맡은 캐릭터를 승계했고, 오스카에 빛나는 알란 아킨이 조연으로, 브라이언 헬겔랜드가 각본을 맡아 21세기 판 ‘탐정 스펜서’를 선보인다. 음악은 피터 버그 감독 영화에 4번째 참여하는 스티브 자브론스키가 담당했다.

마이클 베이의 전담 작곡가이자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영화음악가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자블론스키는 폼 나는 비주얼에 스케일감이 느껴지는 간지폭풍 배경음악을 덧입히는데 일가견이 있는데, 심할 경우 어디에 붙여놔도 비슷한 스코어로 느껴질 때가 왕왕 있다. 그런 점에서 짐머리스크의 가장 큰 폐단을 물려받은 작곡가이지만, 규모와 분위기를 중시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필수 능력치를 획득한 작곡가란 반증이기도 하다. 액션 코미디이자 버디물인 <스펜서 컨피덴셜>에선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락킹한 사운드와 하몬드 오르간 인장 아래 범죄 음모를 다루기에 시종일관 잿빛의 심각한 소리들이 가득하다. 왜곡된 기타와 각종 일렉트릭 이펙트, 거슬리는 엠비언트가 약동하는 비트와 버무려진 색채는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 스코어로, 화끈한 폭발력과 초조한 긴장감을 동시에 자아내며 영상에 충실한 음악을 직조한다. 하지만 여전히 전작들과 별 차이나지 않는 몰개성적인 스타일로 일관한 건 못내 아쉽다.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