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판에서는 추석과 설날을 명절 대목 시즌이라 칭합니다. 명절 대목은 최고의 흥행 시즌인 여름 그리고 겨울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흥행 사이즈를 가지고 있습니다. 명절 시즌의 가장 큰 특징은 긴 연휴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연휴기간 동안 일일 평균 13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관객들이 극장을 찾습니다. 매우 큰 시장입니다.
다만 연휴 기간에만 흥행이 집중되고, 연휴가 지나면 바로 비수기 시장으로 접어들다 보니 배급에 있어 단기 흥행전략이 필요한 시즌이기도 합니다. 단기 흥행전략은 입소문에 의존하기보다는 속전속결로 흥행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명절 시즌을 노리는 영화들은 흥행신뢰도가 높은 A급 배우를 캐스팅하거나, 관객들이 선호하는 액션이나 사극 장르를 택하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가족단위 관객들의 극장 외출이 많아지면서 가족영화들이 흥행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으로 설과 추석은 우리 고유의 명절로서 할리우드의 흥행 시즌과 달라 한국영화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부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과거 명절 시즌은 지금처럼 우리만의 리그가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는 성룡의 무협영화들이 그 인기를 독차지하였고 1990년대에는 할리우드 직배사들의 국내 진입으로 인해 할리우드영화들이 이 시장을 차지했습니다.
여기서 한번 연대별로 추석에 사랑받은 영화 흥행 TOP10을 살펴볼까 합니다. 정확한 관객 수 파악이 가능한 1990년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90년대
※당시에는 전국 관객 수 집계가 어려웠던 관계로 서울관객을 기준으로 함
1위 <식스 센스> 1999년 9월 18일 개봉
2위 <접속> 1997년 9월 13일 개봉
3위 <에어포스 원> 1997년 9월 13일 개봉
4위 <피아노> 1993년 9월 25일 개봉
5위 <컬러 오브 나이트> 1994년 9월 17일 개봉
6위 <창> 1997년 9월 13일 개봉
7위 <딥 블루 씨> 1999년 9월 11일 개봉
8위 <정사> 1998년 10월 3일 개봉
9위 <처녀들의 저녁식사> 1998년 10월 3일 개봉
10위 <워터월드> 1995년 9월 2일 개봉
‘OOO가 귀신이다’ 라고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이렇게 소리를 쳤다는 <식스 센스>가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귀신영화가 추석에 1위를 차지하였다는 것이 의외이긴 하지만 그 해 <딥 블루 씨>와 함께 추석시장을 독차지했습니다. 이외에도 <에어포스 원>, <피아노> 등 할리우드영화들이 추석 시즌 월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영화는 1997년 <접속>을 시작으로 해서 서서히 흥행 가능성을 엿보게 됩니다.
2000년대
※ 이 시기는 서울관객수와 전국관객수가 혼합되어 있어 정확도가 높은 서울관객을 기준으로 함
1위 <공동경비구역 JSA> 2000년 9월 9일 개봉
2위 <타짜> 2006년 9월 28일 개봉
3위 <맘마미아!> 2008년 9월 3일 개봉
4위 <가문의 영광> 2002년 9월 13일 개봉
5위 <가문의 위기- 가문의 영광 2> 2005년 9월 7일 개봉
6위 <조폭마누라> 2001년 9월 28일 개봉
7위 <오! 브라더스> 2003년 9월 5일 개봉
8위 <신기전> 2008년 9월 4일 개봉
9위 <가문의 부활 - 가문의 영광 3> 2006년 9월 21일 개봉
10위 <본 얼티메이텀> 2007년 9월 12일 개봉
2000년 추석 시즌에 <공동경비구역 JSA>가 초대박 흥행을 합니다. 이 흥행이 ‘추석에는 한국영화’라는 공식이 만들어지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고 이때부터 확실하게 한국영화들이 추석 시즌에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또한 2000년대에는 <가문의 영광> 같은 프랜차이즈 영화가 추석시장을 독차지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대
※전국관객 기준
1위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년 9월 13일 개봉
2위 <관상> 2013년 9월 11일 개볼
3위 <밀정> 2016년 9월 7일 개봉
4위 <범죄도시> 2017년 10월 3일 개봉
5위 <사도> 2015년 9월 16일 개봉
6위 <안시성> 2018년 9월 19일 개봉
7위 <킹스맨 : 골든서클> 2017년 9월 27일 개봉
8위 <나쁜 녀석들 : 더 무비> 2019년 9월 11일 개봉
9위 <타짜-신의 손> 2014년 9월 3일 개봉
10위 <남한산성> 2017년 10월 3일 개봉
2000년대 1위를 차지한 <공동경비구역 JSA>의 배우 가운데 한 명인 이병헌의 <광해, 왕이 된 남자>, 그리고 또 한 명의 배우인 송강호의 <관상>이 나란히 1위와 2위를 차지했습니다. 2010년대의 다른 특징은 <광해, 왕이 된 남자>, <관상>, <사도> 등 사극이 유난히 추석에 흥행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극장 관객층이 40, 50대로 넓혀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파악됩니다.
2020년대로 넘어 와 처음 맞이한 추석 시장은 지난 2월 예고도 없이 몰아닥친 코로나19로 인해 빙하기로 접어 든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거기다 영화에 대한 기대치마저 예전만 못하다보니 이리저리 관객들의 극장 외출이 그 어느 때보다 뜸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고요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극장이 썰렁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2020년 추석 시즌에는 <담보>가 1위, <국제수사>가 2위, <그린랜드>가 3위, <검객>이 4위 그리고 5위는 <죽지않는 인간의 밤>, 이 순서로 시작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이들 영화가 순위에 계속 존재할지 아닐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고요. 과거 ‘극장 구경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붐볐던 명절 시즌, 이 영광을 다시 찾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왜냐하면 정말이지 이번 추석 연휴에 극장을 안 가다보니 긴 연휴동안 무지 심심하더란 말입니다.
글 | 이하영
하하필름 대표, 《영화 배급과 흥행》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