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보고 손가락질하고 한오그룹이 악덕 기업이라고 하제? 그런데 자기 아들이 한오그룹 입사하면 사방으로 자랑하고 다닌다

<추적자 THE CHASER>

딸이 죽었다. 뺑소니 사고를 당했지만 분명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는데, 병실에서 회복 중이던 아이는 갑자기 숨을 거뒀다. 부검에서 마약 성분이 나왔다고 했고, 세상 더 없이 착하게 살던 딸은 졸지에 마약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원조교제를 하던 아이로 둔갑했다. 충격을 받은 아내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베란다 너머 자신을 비웃는 뺑소니범의 환영을 보고는 화를 내다가 그만 창밖으로 떨어져 세상을 떠났다. 온 가족이 그렇게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누구도 사과하지 않는다.

<추적자 THE CHASER>(2012)는 자신의 가족을 짓밟고도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고 질주하는 권력자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힘없는 서민 백홍석(손현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물론 강력반 형사를 과연 ‘힘없는’ 서민이라 부를 수 있는지 의견이 갈릴 수는 있겠지만, 상대가 압도적인 지지율을 자랑하는 유력 대선후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가난한 이발소 집 아들로 태어나 고학 끝에 능력을 인정받아 국내 최고의 재벌 한오그룹의 사위가 되고, 정계에 진출해 정치 개혁의 선봉장으로 활약했으며 지금은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강동윤(김상중)이 상대라면, 아무리 경찰이라고 해도 함부로 맞서기 어려운 법이다.

다행히도 작품은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승리를 확신한 강동윤이 백홍석 앞에서 모든 진실을 술술 털어놓던 순간을 포착한 몰래카메라 영상이 대선 당일 세간에 공개됐고, 대선 당일까지도 압도적인 리드를 유지하던 강동윤은 패배의 쓴 맛을 보고 법의 심판을 받는다. 백홍석 또한 법정에 난입해 뺑소니범을 저격하고 법정을 모독한 죄로 15년형을 선고받지만, 진범을 잡고 진실을 밝혀 딸의 명예를 회복했다는 기쁨으로 백홍석은 웃는다.

그런데, 정말 이게 해피엔딩일까? 강동윤이 낙선한 덕에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당선된 조동수(이정길)는 어떤 사람인고 하니, 30년간 뒷돈 한번 받은 적 없는 청렴한 사람이란 것 하나 말고는 작중에서 딱히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강동윤 캠프에서 대단한 네거티브를 한 것도 아닌데 강동윤에게 지지율 68%를 내줬던 걸 보면 그렇다. 그렇게 조동수가 당선된 직후, 한오그룹의 서동환(박근형) 회장은 아들 영욱(전노민)과 함께 TV 뉴스를 보다 말고 투덜대기 시작한다.

“조동수 점마가 어제 밥값을 지가 내고 갔데이. 내캉 패를 섞지 않겠다는 뜻이겠제? 회사 안에 조동수캉 같은 학교 나온 아들, 고향 아들, 종친들 이름 다 적어 가지고 온나. 다음 주에 조동수가 10대 그룹 회장하고 밥 묵자고 할끼다. 다른 그룹에 전화 돌리가 사장, 부사장 보내라 캐라. 그라고 우리는…”

영욱이 자신이 가겠다고 말하자, 서회장은 만류하며 울산 김사장을 대신 보내라고 말한다. 그래도 대통령 당선인과의 첫 식사 자리인데 지나치게 격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영욱의 말을 끊으며 서회장은 말한다.

“대통령이 뭐라고? 로마로 치자면 평민들이 뽑는 호민관 아이가. 이 나라는 고 우에 원로원이 있고 집정관이 있고 황제가 있데이! 한오경제연구소에 전화해가 내년 경제성장률 몇 프로 떨어뜨리가 신문에 돌리라 캐라. 충청도에 있는 전자 공장도 중국으로 옮길 거라고 신문에 좀 쓰고. 나랏일이 우예 돌아가는지 조동수 점마한테 알키주야 안되긋나.”

5년 단임제 대통령은 기껏 해야 5년 자리에 앉아있다가 나가는 계약직이지만, 한오그룹의 총수는 평생을 고개 숙일 일 없이 권력을 쥔 나라의 진짜 주인이라는 오만으로 가득한 서회장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몰락하지 않는다. 경제가 흔들린다고 앓는 소리 몇 번 해서 나라를 제 입맛대로 좀 흔들고 나면, 제 아무리 청렴하다는 조동수도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들어올 거라는 확신은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마지막 회, 자식들이 전부 제 곁을 떠난 텅 빈 집을 쓸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대목에서 잠시 그도 인간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애초에 딸 서지수(김성령)가 낸 뺑소니 사고를 덮은 그 압도적인 재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한오그룹에서 나온 것이다. 사위 강동윤이 이를 악물고 대선에 나가 권력을 쥐어야겠다는 야심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한오그룹을 제 손에 넣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시 보면 <추적자 THE CHASER>의 결말은, 만악의 근원은 건드리지도 못한 채 눈에 보이는 권력들만 손대고 말았다는 냉혹한 현실인식으로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정치권력은 시민의 힘으로 견제하는데 성공했으나, 경제권력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 말이다.

“지원아, 사람들이 나보고 손가락질하고 한오그룹이 악덕 기업이라고 하제? 그런데 자기 아들이 한오그룹 입사하면 사방으로 자랑하고 다닌다.”

서회장 말이 맞다. 부패한 재벌을 향해 손가락을 뻗는 걸 주저하지 않던 사람들도, 뭔가 얻어먹고 나면 갑자기 겸허해지면서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던 혜안’을 칭송하고 앞장서서 비판하는 이들의 입을 틀어막는 마름이 된다. <추적자 THE CHASER>의 결말에서 서회장이 끝까지 몰락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