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이 주최하는 제6회 아동권리영화제가 11월 14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된다. 아동학대, 전쟁과 아동 권리 등 다양한 시선에서 아이들의 삶을 되새길 수 있는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폭력으로부터의 아동 보호’라는 주제 아래 선정된 <사마에게>는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 영화제에서 60개가 넘는 트로피를 휩쓸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갓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던 이유, 그 가치 있는 기록을 되새겨보자.


<사마에게>

전쟁영화가 아닌, 진짜 전쟁터의 풍경

속눈썹이 유달리 긴 한 아기가 등장한다. 사마다. 사마는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옹알이를 한다. 사마는 곧 눈을 접어 웃는다. 곧바로 한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와드, 지하로 가.” 폭격음이 들리고 카메라가 흔들린다. 카메라가 정신없이 방 전체를 비추는 사이 사마는 다른 이에게 맡겨진다. 사마는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울지도, 칭얼거리지도 않는다. 엄마 와드는 카메라를 들고 복도로 나선다. 복도에 서 있던 의료진은 “이번엔 포격이 아니라 탱크다”라고 서로에게 알리며 차분한 태도로 대피에 응한다. 굉음이 들리고 복도 앞쪽에서 하얀 연기가 새어들어온다. 영화가 시작되고 3분 안에 벌어진 일이다. 전쟁영화도 아니고, 연출된 상황도 아니다. 와드의 카메라에 담긴 시리아 북서부의 도시, 알레포의 실제 기록이다.

<사마에게>

<사마에게>는 와드-알 카팁 감독이 5년간 틈틈이 담은 시리아 내전의 실상을 영화 한 편의 분량으로 압축한 다큐멘터리다. 와드는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현실을 알리기 위해 대학 시절부터 카메라를 들었다. 포격으로 인해 눈앞에서 동생을 잃은 어린 소년, 피와 먼지로 얼룩진 얼굴로 응급실에 실려온 만삭의 임산부, 예상치 못한 포격으로 목숨을 잃은 동료들의 마지막 모습,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아이들의 불안한 표정까지. 그녀는 카메라를 통해 전쟁의 참혹한 피해를 입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꼼꼼히 기록한다.


<사마에게>

아이들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카메라를 들다

와드가 담은 영상이 더욱 가치 있는 건 단순히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선에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사마에게>는 보통의 뉴스처럼 전쟁으로 인해 도시가 얼마나 무너졌는지, 정부군이 얼마나 참혹한 일을 저질렀는지에 집중하지 않는다. 포위된 도시에서 전쟁을 겪어내는 인간들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곳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랑을 발견한다. 폭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사랑은 죽지 않는다. 이웃과 동료는 피를 나눈 가족처럼 끈끈한 정을 나누고, 포격 소리와 함께 갓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와드는 시리아 알레포에 마지막으로 남은 병원을 지키던 의사, 함자와 결혼한다. 그녀의 인생이 뒤바뀐 건 함자와의 사이에서 딸 사마를 얻고서부터다. 와드는 육아를 겸하며 본인이 담고 있는 영상이 단순한 혁명의 기록이 아님을 깨닫는다.

<사마에게>

20일간 890번의 수술을 하고 6000명의 환자를 받았던 곳. 남편 함자가 운영하던 병원에 기거한 와드는 자연스레 하루에 몇 백번 오가는 생사를 경험한다. 어머니가 된 와드의 카메라에 주로 많이 담긴 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아이들의 모습이다. 와드는 사마를 출산하고 아이를 품에 안자마자 “사람들과 이별하는 순간의 고통을 떠올렸다”고 고백한다. 전쟁으로 인해 아이와 생이별을 겪고 비통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수많은 부모들의 모습 위론, 언젠가 이 일을 겪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을 감독 와드의 두려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당장 1분 후 죽음을 맞이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곳에선 예상치 못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포격에 부상을 입은 만삭 임산부의 뱃속에서 거의 죽은 채 태어난 아이를 혼신의 힘을 다해 살리는 순간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의 동요를 전하는 장면이다. 죽음이 가득한 공간에서도 기어코 울려 퍼지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더 나은 삶을 포기하지 않겠단 희망의 끈을 부여잡게 만드는 힘을 전한다.

<사마에게>

와드는 사마에게 편지를 써 내려가는 형식으로 조곤조곤한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상황을 일러주며 기록을 계속해나간다. 와드는 그저 사마가 본인이 지닌 이름의 뜻과 같이 ‘평화로운 하늘’처럼 살길 바란다. 채소와 과일을 찾아볼 수 없고, 기저귀와 우유마저 동난 상황이 아니라 평범한 환경에서 소소한 행복과 추억을 나누며 살길 바란다. “부모를 잘못 만나” “선택하지도 않은 곳에서 태어난” 사마가 앞으로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길 바란다. 무너진 도시를 바라보며 “이를 다시 세울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와드의 이웃 소년 인터뷰 답변은 평범한 삶에선 전혀 상상해볼 수도 없었던, 전쟁터에 내던져진 아이들의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와드는 아이들의 미래에 전쟁과 폭력이라는 얼룩을 지우고 그들의 권리를 찾으려 알레포 사람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싸웠는지 알리기 위해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비극의 끝에서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치열한 투쟁을 이어나간 감독의 숭고함이 빛나는 부분이다.


<사마에게>

전 세계가 인정한 다큐멘터리

<사마에게>의 러닝타임은 95분. 와드가 담은 영상의 양은 훨씬 방대하다. 2011년부터 찍은 500시간 분량의 영상은 와드의 유튜브 계정, 그리고 영국의 방송국 채널4에서 <인사이드 알레포>라는 프로그램으로 소개됐다. 전쟁을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담아낸 와드의 영상은 영국 뉴스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온라인에서만 5억 뷰를 달성하며 전 세계인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참상을 알린 그녀에겐 2017년 국제 에미상 뉴스 부문의 수상을 포함해 24개의 트로피가 돌아갔다.

와드는 2016년 알레포에서 강제 추방된 후 영국에 망명했고, 그곳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자 에드워드 왓츠를 만나 <사마에게>의 편집을 끝마쳤다. 5년간의 다양한 기록들 가운데에서도,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을 담아낸 사려 깊은 편집과 연출이 돋보이는 <사마에게>는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사마에게>는 2020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에 노미네이트됐고, 영국 아카데미의 다큐멘터리, 암스테르담국제다큐영화제 관객상 등 전 세계 영화제에서 60개 이상의 트로피를 수상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정말 내 계획에 없었다. 나는 바로 다음 달이면 죽을지도 모르는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촬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삶이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카메라는 무기와도 같다. 오직 카메라만이 찍는 동안에 죽을 수 있을지라도, 생존의 시간 동안 당신을 지켜줄 테니. 만약 우리가 기록하지 않은 채로 죽었다면, 아무도 알레포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 와드 알-카팁 감독

와드는 <사마에게>에 담긴 일들은 “실제 일어난 일들의 10% 불과하다”고 말한다. 잊혀가는 고향과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확히 전달함으로써 그들이 잊히지 않고,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아왔는지 왜곡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그녀의 카메라가 담고 있는 책임감의 무게만으로도 이 영화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이유는 충분하다.


<사마에게>는 2020년 11월 14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되는 <제6회 세이브더칠드런 온라인 아동권리영화제>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상영관에서 관람할 수 있는 <사마에게> 티켓 구매 방법 및 영화제 소개에 관한 상세 내용은 하단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