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누군가를 과하지 않게, 미워하더라도 ‘적당히’ 미워하는 법을 익히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그런 사람이 있다. 한때는 누구보다 더 잘해주고 싶고 신뢰했던 사람인데, 돌아서기 무섭게 사람 뒤통수를 후려 갈기는 사람. 그래서 그에게 마음을 쓰고 내 시간과 곁을 내 주었던 것이 후회되고, 사람의 선의를 믿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만드는 사람.

이런 내 분노를 이해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애초에 누군가를 그토록 쉽게 믿지 말고 매사에 신중했어야 했다고 말하는 이들. “그러니까, 머리 검은 짐승은 쉽게 믿는 게 아니야.” “너는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서 어떻게 하니?” 그들이 귀에 못이 박히게 쏟아낸 충고를 들으며 마음을 꼭꼭 걸어 잠그니, 이젠 “너는 어째 가면 갈수록 완고해진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 이번 생은 아무래도 너그럽게 살긴 글렀다.

“이제 내가 걔한테 듣고 싶은 소식은 부고밖에 없어.” 부아가 치밀어 올라 뱉은 말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를 다시 만난 건 지인의 상가였다. 육개장 그릇을 앞에 두고 세상을 떠난 고인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던 나는, 그만 신발을 주섬주섬 벗으며 올라오던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맞다. 그 친구를 너도 알고 있었지. 잠시 잊고 살던 원망이 다시 솟구쳐 얼굴이 뜨거워졌지만 딱히 내색하지 않았다. 고인의 삶을 기리고 명복을 비는 자리인데,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건 고인에게도 고인의 가족에게도 결례일 테니까.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문을 마치고 나온 그는 쭈뼛쭈뼛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꾹 눌러 참고 인사를 받자, 그는 아예 변죽 좋게 내 맞은 편에 앉아 술잔을 건네며 말을 꺼냈다. “그, 예전에 있었던 일은 말입니다…” 세상에, 그는 내가 화를 못 내는 상황을 무기 삼아 얼렁뚱땅 자신의 과거를 눙치고 지나가려는 심산이었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고인을 생각하면 최소한 어영부영 제 잘못을 없던 일인 양 눙치고 지나갈 무대로 고인의 빈소를 택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분노에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온 몸에 힘이 들어갔던 그 때, 나는 순간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속 어춘심 여사(김해숙)가 딸 혜성(이보영)에게 남긴 유언을 떠올렸다.

“니한테 못하는 사람들, 니를 질투해가 그러는 기다. 니가 하도 잘나가 질투해서 그러는 기다. 그런 사람들 미워하지 말고 어여삐 여기고 가엽게 여겨라. 알았나? 니 약속해라. 사람 미워하는데, 네 인생 쓰지 말아라, 이 말이다. 한번 태어난 인생, 예뻐하면서 살기도 모잘란 세상 아이가. 으이?”

물론 어 여사 말이 모두를 쉽게 용서하고 무조건 죄를 묻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리라. 자신을 해치러 온 민준국(정웅인)이 어째서 그런 유언을 남겼는지 묻자, 어 여사는 죽음의 공포 앞에 두려워하면서도 이렇게 답했다.

“그냥 나는 네가 못나고 참 가엽다. 평생 누군가를 증오하면서 살아온 거 아이가. 그 인생이 얼마나 지옥이었을꼬.”

나쁜 일을 한 사람을 미워하고, 죄가 있으면 그 죄값을 묻는 게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누군가를 향한 증오에 과하게 사로잡혀, 그 증오가 제 삶을 불태우고 다른 것들을 살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건 문제다. 인정하고 싶진 않으나, 우리는 때로 원한과 분노에 사로잡혀 증오와 정의를 헷갈리곤 한다. 어 여사가 생의 마지막 순간조차 딸이 증오로 가득 차서 온 생을 지옥 속에서 살 것을 걱정했던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가 못 견디게 미웠지만, 그를 미워하느라 세상을 떠난 고인과 그 유족들을 욕보이고 싶진 않았다. 증오가 삶을 불태우고, 예의와 범절을 잊게 만드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상대를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한 음절 한 음절 이야기했다. “미안한데,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엔 이 자리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네요. 상황도, 장소도요.” 주눅이 든 상대는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용서는 어려운 일이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온 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일을 당하고 나면, 왜 옛 사람들이 ‘용서는 신의 일’이라고 이야기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도저히 사람의 힘과 용기만으로는 용서를 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당장 나부터도 그러니, 사람들에게 섣불리 너그럽게 용서하고 적당히 잊고 살라는 말 같은 건 잘 못하겠다.

그래도 누군가를 과하지 않게, 미워하더라도 ‘적당히’ 미워하는 법을 익히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죄 지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름 아닌 억울하고 분한 자신을 위해서. 증오가 산불처럼 번진 마음은 너무도 황폐해져서 그 위에서 새로운 행복이나 즐거움을 피워 올리기가 어려워진다. “사람 미워하는데 니 인생 쓰지 말라”는 어 여사의 말은, 아마 그런 뜻이었으리라.

아주 가끔은, 그래도 그때 그 상갓집에서 뭐라도 한 소리를 했어야 했나 하는 미련이 남을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어 여사의 말을 떠올린다. “그리 살진 않을끼다. 니처럼 못나게 안 키웠다.” 그럼. 그렇게 못나게 살면 어 여사가 실망할 거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