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는 배우 문소리 씨가 여배우 문소리의 역할을 맡아 데뷔 18년 차 여배우의 현실을 보여주는 3막으로 된 영화인데요. 여배우라는 공인이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부터 장례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들까지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1막에서 여배우 문소리(문소리)는 일반인 친구 두 명(강숙, 김경선)과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을 찾습니다. 문소리는 북한산 중턱에서 우연히 남자 후배들과 등산을 하던 영화제작사 대표(원동연)를 만나서, 대학생 자녀가 있는 정육점집 여자 캐릭터 제안을 받고 기분이 상하는데, 하산 후 친구들과 산 밑에 있는 막걸리집에서 다시 우연히 대표와 그 후배들을 만나 원하지 않는 술자리 동석을 하고 맙니다.
문제는 대표와 그 남자 후배 두 명과 동석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데요. 중년의 일반인으로 보이는 남자 후배 두 명은 문소리를 바로 앞에 두고, ‘우리도 여배우랑 술 한잔 해보게’, ‘여배우를 다 보고’, ‘우리가 여배우하고 술을 다 마시고 말이야’라는 말을 하면서 문소리 일행한테 동석을 승낙해 줄 것을 강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술을 마시는 와중에도, 문소리 면전에서 ‘소리씨가 약간 병신같이 나오는 거(영화) 있잖아’, ‘(소리씨) 하나도 안 고치셨죠? 친구들도 하나도 안 고쳤어. 21세기에 자기 관리를 이렇게 안하시나, 대박 대박’ 이라는 말을 막 던지면서 문소리와 친구들을 모욕하는 듯한 발언을 계속합니다. 심지어, 문소리의 남편에 대해서도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보더니, ‘별론데? 내가 나은 것 같은데, 이거 좀 못생기지 않았냐? 별로네 별로네’라고 말하면서 그 후배 둘은 낄낄거립니다.
남자 후배들이 한 말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까요. 일단 영화 속 상황은 누구나 문소리와 친구들의 입장이라면 기분 나쁘고 불쾌해질 수밖에 없는데요. 후배들의 발언 내용이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표현에 해당한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발언에 대해 법적으로 어떠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느냐인데, 가장 활용이 높은 방법은 형사상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고소를 하는 것입니다. 명예훼손과 모욕의 차이에 대해, 법적으로는 ‘사실의 적시’가 있는지 여부로 구별된다고 설명하는데, 쉽게 말해서 욕설(일반적으로 거친 말이 이에 해당함)이 있으면 ‘모욕’으로 보고, 그 외에 외적 명예를 침범하여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면 ‘명예훼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고소를 할 때는 후배들이 던진 발언의 대부분이 사람을 불쾌하게 했지만 그중에서도 어떤 발언이 문제였다고 특정을 해야 하는데, 특히 ‘우리도 여배우랑 술 한잔 해보게, 우리가 여배우하고 술을 다 마시고 말이야’ 라는 발언이 ‘여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사례로 전직 국회의원의 ‘아나운서 비하 발언’ 사건이 있습니다. ‘아나운서는 다 줘야 한다는 취지의 비하 발언’에 대해 하급심은 유죄라고 보았으나 대법원은 직업 전체에 대한 모욕은 개인 단위에 와서는 그 정도가 희석되고 아나운서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하여 무죄 취지로 판시했습니다. 이에 의하면, 영화 속 여배우와 술자리 발언도 형사상 모욕죄가 성립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술자리 발언을 포함해서 후배들의 발언에 대해 민사상 위자료 청구는 고려해볼 수 있는데요. 모욕적 언사에 대해 형사상 고소를 하여 처벌을 받게 하는 방법도 있지만 모욕적 언사를 통한 인신공격에 의하여 인격권이 침해당했으므로 이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위자료)을 하라는 청구도 법적인 제재 수단으로 가능합니다. 판례를 보면, 전직 국회의원에 대한 ‘종북’ 발언은 인신공격이 아니라고 보아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한 사례가 있고, 전직 대통령을 조롱하는 취지의 행위에 대해서는 유족에게 위자료 500만 원을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 일반인 사례에서는, 온라인 게임 도중에 심한 욕설을 하는 경우 위자료 몇십만 원부터 예비 며느리의 처녀성이 문제가 된다는 소문을 낸 사안에서는 몇백만 원까지 위자료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건마다 위자료의 범위는 매우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100~300만 원 정도를 기준으로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증감을 하게 됩니다(실제 위자료 범위는 행위태양에 따라 아주 다양함).
술자리 발언 외에도 후배들이 여배우가 과거에 맡은 배역을 ‘병신’이라고 비하하거나, 성형 유무에 대해 자기 관리 운운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멸적 감정의 표현으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기 때문에 형사상 고소가 아니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고려할 수 있다고 보입니다(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술자리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성희롱적 발언을 문제 삼아 소송까지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영화 3막은 문소리의 거의 데뷔작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의 감독 장례식장이 배경입니다. 고인이 된 감독은 그 작품 후 약 14년 동안 아무 작품도 만들지 못했는데, 장례식장은 그 영화의 출연 배우인 문소리와 배우 박정락(윤상화) 외에 문상객이 아무도 없습니다. 문소리가 박정락의 취기를 받아주면서 마지못해 붙들려 있는 와중에 신인 배우라고 소개하는 이서영(전여빈)이 동석을 하게 되고, 세 사람은 영화와 고인이 된 감독에 대한 의견 차이로 큰소리로 실랑이를 하게 됩니다. 결국 감독의 아내(이승연)가 다가와서 그만 가달라고 말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되고, 뜻밖에 신인 여배우 이서영과 감독은 불륜 비슷한 관계였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감독의 아내가 이서영의 머리채를 잡고 이를 말리는 박정락이 상을 뒤엎는 등 그 자리는 난장판이 되고 마는데요.
장례식장에서 행패를 부리면 형법상 ‘장례식등 방해죄’가 문제 됩니다. 형법은 ‘장례식, 제사, 예배 또는 설교를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정하고 있는데, 현실에서 이 죄가 문제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법에서 말하는 장례식은 종교적 의식, 비종교적 습속을 불문하고, 제사도 종교적 의식(석존대제 등), 민간신앙적 의식(종묘대제, 마을의 서낭단제 등)을 불문합니다. 예배는 장소를 불문하므로 야외예배도 포함하지만 다수인이 참가해야 하므로 단독예배를 방해하는 것은 이 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장례식등 방해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장례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도중에 소주병을 바닥에 던져 깨뜨리는 등 소란을 피우거나, 약 40분간 욕설을 하거나, 제사상을 뒤엎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최근 판례 중에서는 전직 대통령 영결식에서 현직 대통령한테 큰소리를 질러 소란을 피운 행위에 대해서 1심에서는 벌금 100만 원이 선고되었으나 2심과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사건이 있는데, 무죄의 이유는 큰소리를 질렀지만 경호원 등에 의해 곧바로 제지되는 등으로 장례식의 절차와 평온을 저해할 위험이 초래되지는 않았다고 본 것입니다.
영화에서 배우 박정락이 장례식장에서 상을 뒤엎었지만 고인의 아내의 싸움을 말리는 와중에 발생하였고, 제단이나 헌화대가 아닌 손님맞이 상을 뒤엎었으며 박정락 일행 외에는 문상객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장례식의 절차와 평온을 저해할 위험이 초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문소리가 겪은 일에 대하여 여배우라는 직업적 측면에서 법적으로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글 | 고봉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