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 오면 꺼내보는 영화가 있으신가요? 세계 곳곳의 정취를 누리는 바캉스영화를 보며 “한밑천 잡아 조선땅 뜬다”고 중얼거릴 수도, 공포영화의 오싹함으로 몸에 찌든 열기를 씻어낼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여름만 되면 샘 레이미 감독의 <드래그 미 투 헬>(2009)을 챙겨봅니다. 귀신이 나올 때마다 고개를 돌리기에 여념이 없는 제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공포영화고, 머리 굴릴 필요 없이 배가 찢어져라 웃을 수 있는 유머가 출몰하기 때문입니다.
다정한 남자친구와 행복한 나날을 꿈꾸던 크리스틴은 이 날 이후 지옥 같은 3일을 경험합니다. 죽지 않을 만큼의 개고생이 밑도 끝도 없이 펼쳐지죠. 시도때도 없이 악몽이나 환상 속에서 귀신을 마주하는 건 물론 머리끄댕이를 잡히고, 공중에 떠서 사방으로 내쳐지고, 각혈하고, 코피 내뿜고, 토악질과 구더기 세례를 고스란히 입으로 받아내는 등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 고난이 계속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크리스틴은 굴하지 않습니다. 퇴마사를 찾아가 그가 제시하는 황당무계한 방법들을 열심히 수행해봅니다. 과연 그녀는 지옥의 고리를 끊고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드래그 미 투 헬>은 마지막 1분을 위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내달립니다.
이렇게 샘 레이미가 장르 분탕질을 벌일 수 있었던 건 <드래그 미 투 헬>이 그가 운영하는 공포영화 제작사 '고스트 하우스 픽처스'에서 직접 만든 작품이기 때문일 겁니다. 2004년 <그루지>로 문을 연 이래 처음으로 선보이는 연출작이었으니, 중소규모 시스템(<드래그 미 투 헬>의 제작비는 <스파이더맨 3>의 1/9에 불과합니다) 안에서 자유롭게 자기 세계를 펼칠 수 있었죠. 더군다나 그의 곁에 (친형이자) 시나리오 파트너 이반 레이미, 프로듀서 로버트 타퍼트, 편집자 밥 물랍스키 등 오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데이빗 린치의 걸작 <로스트 하이웨이>(1997),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를 작업한 촬영감독 피터 데밍과의 첫 호흡도 시너지가 컸죠. 아쉽게도 샘 레이미는 다시 거대 스튜디오로 돌아가 디즈니와 함께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2013)을 연출합니다. 총천연색의 극치를 선보이는 싸이키델릭한 비주얼이 돋보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샘 레이미적'이라는 틀에서는 합격점은 주긴 망설여지는 작품이었죠. 음... 워낙 3부작을 좋아하는 감독이니 기약 없이 두세 번째 <드래그 미 투 헬>을 기다려볼 수밖에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