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9일 발표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명단에서 <미나리>는 6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됨으로써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영국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오른 것이다. 모두가 알 듯 <미나리>가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이 아닌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된 것을 많은 매체에서 비판한 바 있다. 논란을 뒤로하고 영화는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각종 시상식을 석권하며 지난해 <기생충>이 이룬 오스카의 기적에 한 뼘씩 다가가는 <미나리>. 2021년 <미나리>, 2020년 <기생충>. 전에는 어떤 작품이 있었을까. 그동안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작품 다섯 편과 영화의 수상 이력을 짚어본다.


엘르

제74회 골든글로브 감독 폴 버호벤 │ 출연 이자벨 위페르, 로랑 라피트, 앤 콘시니 │프랑스, 독일, 벨기에 │ 2016

<엘르>를 본 이들이 영화에 대해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불편’. <엘르>는 분명 불편한 작품이다. 영화는 미셸(이자벨 위페르)이 괴한에게 추행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후에도 미셸은 괴한의 습격을 몇 차례 받고 직장에서도 비슷한 사건을 겪는다. 이 정상적이지 못한 사건들보다 더 이상해 보인 건 미셸의 다음 행동이었다. 그는 범인을 알게 되어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그 일들이 마치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것처럼 참여하고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낸다. 폴 버호벤 감독은 폭력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고독한 이의 욕망을 가시화했고, 영화는 2017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그 덕은 어느 정도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에 있는 듯하다. 일어나고 있는 일이 다이나믹한데 비해 표정이 없다. 경험과 태도가 비례하지 않다고 표현해야 할까. 물론 위페르는 그 한정적인 표정에 저 아래서 들끓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도 이자벨 위페르가 받았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해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라라랜드>의 엠마스톤에게 돌아갔지만 이자벨 위페르는 전미, LA, 뉴욕, 런던 비평가 협회상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엘르>는 골든글로브 외에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런던 비평가 협회상에서도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아무르

제70회 골든글로브 감독 미카엘 하네케 │ 출연 장-루이 트린티냥, 엠마누엘 리바, 이자벨 위페르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 2012

제목이 참 직관적이다. 아무르. Amour. 프랑스어로 사랑을 뜻하는 <아무르>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건이 있다. <아무르>는 죽음을 목전에 둔 80대 부부의 사랑을 담는다. 사랑의 시작과 절정을 그리는 여느 멜로 영화에 있는 황홀함이 여기에는 없다. 가혹한 현실만 있을 뿐. 영화는 갑자기 병을 얻어 몸에 마비가 온 아내 안느(엠마누엘 리바)와 그를 간병하는 남편 조르주(장-루이 트린티냥)의 이야기다.

인생에 한 번도 받기 어려운 칸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받은 감독이 몇 있다. 다르덴 형제, 켄 로치, 그리고 미카엘 하네케가 있다. 고통으로 삶을 표현하는 데 장기를 보여온 하네케. <아무르>에서 그는 관조적인 롱테이크로 부부를 감싸는 공기를 한 올 한 올 필름에 새겨 넣었다. 그 흔한 배경음악도 없이. 우리가 진짜로 겪을 순간 그대로를 드라마틱하지 않게, 그래서 더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다. <아무르>는 전작 <하얀 리본>에 이어 그에게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겼고. 2013년 골든글로브를 비롯해 미국 아카데미, 영국 아카데미, 크리틱스 초이스, 시카고, 뉴욕, 비평가 협회상에서 외국어영화상을, 그리고 세자르 영화제, 런던, 전미, LA 비평가 협회상에서는 작품상을 받았다.


그녀에게

제60회 골든글로브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 출연 하비에 카마라, 다리오 그란디네티, 레오노르 와틀링, 로자리오 플로레스 │스페인 │ 2002

<그녀에게>에는 같은 상황, 두 가지 형태의 ‘사랑’이 나온다. 사랑을 ‘사랑’으로 표기한 데에는, 그것이 누구나 납득할만한 사랑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와 투우사 라디아(로자리오 플로레스)는 취재로 만나 사랑에 빠진다. 간호사 베니뇨(하비에 카마라)는 집 건너편으로 보이는 발레 교습소에 다니는 알리샤(레오노르 와틀링)를 훔쳐보며 ‘사랑’을 키운다. 라디아와 알리샤는 사고로 의식을 잃고 코마 상태에 빠진다. 더 이상 라디아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연결될 수 없기에 마르코는 라디아를 사랑할 수 없다. 베니뇨는 다르다. 알리샤가 다치고 나서야 그를 가까이에서 보살필 수 있게 됐다. 베니뇨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1980년대부터 활동해오며 <내가 사는 피부> <귀향> 등의 작품을 남긴 스페인 대표 감독이지만, 국내에서 그의 이름을 가장 많이 들었던 시기는 지난해가 아니었을까. <페인 앤 글로리>로 돌아온 알모도바르. 각종 시상식에서 <기생충>과 경합하며 번번이 외국어영화상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지만, 2003년은 달랐다. 비윤리적인 폭력 행위에 ‘사랑’이라는 허울을 씌운 방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외로움에 기인한 집착적이고 기괴한 반쪽짜리 ‘사랑’을 짚어낸 <그녀에게>에 평단은 찬사를 보냈고. 영화는 2003년 골든 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그녀에게>는 그의 작품 중에서 아카데미 상을 받은 두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네마천국

제47회 골든글로브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 │ 출연 필립 느와레, 자끄 페렝, 살바토레 카스치오, 마르코 레오나르디 │프랑스, 이탈리아 │ 1988

지난해 세상을 떠난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 그가 다작한 음악감독이기는 했지만, 그의 이름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시네마 천국>이다. 그리고 <시네마 천국>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Love Theme’이 흘러나오는 마지막 장면이다. 알프레드(필립 느와레)가 토토(살바토레 카스치오)만을 위해 키스신 프레임 조각을 모아 만든 한 편의 짧은 영화. 영사기가 돌아가면 중년이 된 토토, 살바토레(자끄 페렝)의 그리움은 사무친다. 극장이, ‘시네마 천국’이 전부이던 어린 시절과 알프레드를 향한 그리움이 깊이 배어든다.

어쩌면 모리꼬네의 진한 인장에 매료되어 영화가 어떤 내용을 다뤘는지 잊었을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네마 천국>은 부자 혹은 친구 혹은 멘토와 멘티 관계와도 같던 살바토레와 알프레드의 이야기다. 전쟁과 죽음에 대한 개념이 없던 때 푼돈이라도 손에 쥐게 될 때면 극장에 탕진하는 영화광 꼬마의 세상부터, 성공한 영화감독이 된 중년의 세상까지를 살바토레의 시각에서 담는데. 이는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했다. 영화는 1990년 골든글로브와 미국 아카데미에서는 외국어영화상을, 칸에서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아직까지도 소비되는 고전 중의 고전.


화니와 알렉산더

제41회 골든글로브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 │ 출연 페닐라 올윈, 베르틸 구베, 헤리엇 안데르손 │스웨덴, 프랑스, 독일 │ 1982

봉준호가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은 영화. 그중에서도 첫 번째로 언급한 작품, <화니와 알렉산더>. 그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대해 말하며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의 인생과 영화를 이토록 아름답게 정리한 건 정말 희귀한 경우일 거다”고 덧붙였다. “이왕이면 내 관에도 DVD 박스 세트 몇 개를 넣어주었으면 좋겠다. 내 소장품 중 <화니와 알렉산더>의 스웨덴 TV 방영 버전 세트가 있으니, 그걸 꼭 넣어주시라”고도 했다. 죽을 때 같이 묻히고 싶은 영화라. 스웨덴 대표 거장 잉그마르 베리히만 감독의 <화니와 알렉산더> 역시 감독의 자서전과도 같은 영화다. 영화는 스웨덴의 한 귀족 가문에 태어난 남매 화니(페닐라 올윈)와 알렉산더(베르틸 구베)의 이야기다. 첫 장면은 색으로 가득한 대저택에서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담는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가족은 색 없이 허연 벽으로 둘러싸인 교회에서 삶을 시작한다. 목사 새아버지의 엄격한 지배 아래 감금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둘의 모습은 극 초반의 것과 분명히 대비된다.

서정적인 분위기와 삶과 죽음, 신에 대한 철학적 관념, 그리고 다소 과격한 묘사. 혹자에게는 난해한 예술 영화로 다가올 베르히만의 영화 중에서도, <화니와 알렉산더>는 진입 장벽이 비교적 높지 않은 영화로 평가된다. 1984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외 제56회 오스카에서도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해 무려 4관왕을 기록했다. 이 영화를 보다 특별하게 만든 것은, 베르히만과 30년 넘게 호흡을 맞춘 촬영감독 스벤 닉비스트의 앵글이었다. 연출이 담담하다고 하면 말이 될까. 작위적이지 않은 조명만을 이용해 남매가 처한 비극마저 온화하게 담아냈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