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을 누아르 또는 감성 누아르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매체에서는 이 영화를 만든 박훈정 감독에 대하여 <신세계>(2012) <마녀>(2018) 등을 만든 누아르 장르의 대가라 칭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필름 누아르(film noir)는 대체 뭐고 어떤 영화들을 지칭하는 것일까? 누아르 ‘noir’ 는 프랑스어로 ‘검은색’을 의미합니다. 이 ‘검은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영화연구가들마다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범위가 광범위하고 애매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글쓴이도 다른 분들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해 볼까 합니다.


필름 누아르란?

‘필름 누아르’는 범죄와 폭력을 다루면서, 도덕적 모호함이나 성적 동기에 초점을 맞추는 일군의 영화를 가리킨다.’(위키백과)

‘누아르를 장르나 하위 장르로 분류할 수 있는지, 아니면 장르 안에 포함시킬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이 용어는 범죄 드라마에 가장 자주 적용되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일부 서양 영화나 코미디를 필름 누아르의 예로 인용하기도 한다.’(브리태니커)

<말타의 매>(1941).

필름 누아르 탄생의 아이러니

‘1942년 프랑스의 비평가인 니노 프랭크는 한 프랑스 영화 비평서에서 일련의 미국 영화를 일컬어 필름 누아르라 칭했다. 그가 꼽은 영화는 <말타의 매>(1941) <로라>(1944) <이중 배상>(1944) <안녕, 내사랑>(1944)등이었다. 그렇게 하여 필름 누아르라는 개념은 탄생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할리우드는 아직 그 개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할리우드⟫부르크하르트 뢰베캅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예경출판사 )

필름 누아르의 특징

- 얽히고설킨 줄거리에 도덕관이 의심쩍은 다층적이고 스펙터클한 범죄 스토리

- 냉혹한 사설탐정 또는 타락한 경찰, 살인청부업자, 대책 없이 이상한 범죄 사건에 휘말린 소시민이 주로 주인공이다.

- 기존 할리우드식 긍정적 주인공에 대한 거부, 안티 주인공과 팜므파탈의 등장

- 해피엔딩보다는 주인공의 좌절을 더 선호

- 필름 누아르의 플롯은 소위 하드보일드 소설 또는 펄프픽션에서 모델을 찾는 경우가 많다.

- 시각적 특징: 음산한 톤과 어둡고 우울한 느낌의 영상, 극단적 명암법, 대비조명, 화면의 일부만 비추고 나머지는 어둠으로 처리하는 서치라이트 기법, 그림자를 이용한 실루엣 기법, 갑작스런 명암의 교체, 어두침침한 건물 그리고 비에 젖은 도로, 난간과 창살 사이로 비스듬히 세운 카메라, 클로즈업의 애용

- 이 영화들은 당시 허름한 극장에서 상영되었고, 영화 수명이 다하면 곧 잊혀져갔다. 유럽을 장악한 미국회사들은 이 영화들을 유럽 구석구석에 풀었고, 이 영화만의 특징적인 영화언어를 읽어 낸 프랑스에서는 이 영화를 ‘누아르(검은, 어두운, 우울한, 비판적인)’로 칭하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스스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이렇게 나온 작가군을 프랑스의 ’누벨바그‘라 부르게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상하이에서 온 여인>(1947).

주요 영화들

<암흑가>(1927)를 시작으로 <썬더볼트>(1929) 하워드 혹스 감독의 <스카페이스>(1932) 그리고 존 휴스턴 감독의 <말타의 매>(1941) <더 글래스 키>(1942) <이중배상>(1944) <밀드레드 피어스>(1945) 버트 랭카스터의 <살인자들>(1946) 오손 웰즈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1947) <포스 오브 이블>(1948) <그들은 밤에 산다>(1949) <선셋 대로>(1950) 그리고 필름 누아르의 고전 단계를 마무리한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1955년 작 <키스 미 데들리> (IMDB의 필름 누아르 장르 기준)

몰락

제2차 대전의 우울한 분위기는 필름 누아르에 잠깐의 번영을 선사했지만, 전후의 희망적 분위기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도 안정된 복지사회는 더 이상 그런 음침한 ‘블랙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았다. (⟪할리우드⟫)

할리우드에서의 재탄생

기존 극단적 염세주의 성격들 띤 누아르 영화에 대하여 할리우드는 갱스터 영화나 추리영화의 한줄기로 보았고 여전히 살인자의 멜로드라마, 지적인 추리영화, 인정사정없는 스릴러로 구분했다. 1970년에 와서 필름 누아르란 개념이 미국에서 일반화되기 시작하는데 특히 시나리오작가이자 연출가인 폴 슈레이더의 논문 [필름 누아르에 대하여]가 필름 누아르의 보급에 큰 공을 세운다.(⟪할리우드⟫)

1970년 이후 누아르를 이은 영화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시리즈,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긴 이별>,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 마틴 스코세이지의 <택시 드라이버> 그리고 <성난 황소>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케빈 스페이시 주연의 <LA 컨피덴셜>, 코엔 형제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그리고 <씬 씨티> <셔터 아일랜드> 등이 있다.

<영웅본색>(1987).

<게임의 법칙)(1994).

다른 나라로의 영향

프랑스

프랑스 누벨바그의 일부 영화들도 필름 누아르의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장 뤽 고다르 (Jean-Luc Godard)는 자신의 작품 <알파빌>(1965)에서 고다르 스스로 필름 누아르의 영향 하에 만들어진 영화라 고백합니다. 이후 알랭 들롱 주연의 <암흑가의 세 사람>(1971) 등도 필름 누아르의 영향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홍콩

1997년 홍콩반환(香港返還)을 앞둔 불안한 시기에 탄생하게 되는데,

‘홍콩 누아르라는 말은 <영웅본색>으로부터 그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일군의 홍콩판 액션․스릴러․현대물을 가리키는 뜻으로 한국의 영화 저널리스트들이 처음 쓰기 시작하였다. (중략) 동양적 정서와 서구적 감수성의 혼재, 유교적 세계관과 냉혹한 자본의 논리가 공존하는 공간, 세기말의 도시에 잘못 들어온 지나간 시대의 ’영웅‘들의 이야기, 이것들을 우리는 홍콩 누아르의 특징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글 구회용 한울출판사)

한국

80년대 홍콩 누아르 영화들이 국내에서 흥행을 이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시작은 박찬욱 감독부터인데, 1992년에 개봉된 <달은... 해가 꾸는 꿈>이 그 시작이었고 이어서 1994년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 1995년 김영빈 감독의 <테러리스트>가 줄줄이 흥행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장에 자리 잡게 됩니다. 이러한 계보로 해서 지금 <낙원의 밤>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누아르의 역사라 하겠습니다.

<셔터 아일랜드>(2010).

현재 누아르는 장르로는 구분하지 않고 있다

IMDB에서는 1927년에서 1958년까지 개봉된 영화에서만 필름 누아르를 구분하고 있고 이후 영화에서는 범죄, 스릴러, 액션으로 장르를 지정하고 있습니다.

장르는 스타일, 가치 기준 그리고 선택된 소재에 있어 특징적 집합으로 구분된다. 장르는 또한 이야기의 소재를 특정하고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하나의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영화의 이해⟫L. 자네트 지음)

장르는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를 선택하는 데 있어 하나의 가이드로 작용하게 됩니다. 폭을 넓히는 것이 흥행에 유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런 차원에서 현재의 누아르 범주 영화들은 범죄 영화(crime)나 스릴러(thriller), 액션(action)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고 흥행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굳이 그 범위가 협소한 누아르에 기댄다 한들 영화가 특별히 달라 보이지 않는다면 별로 소용이 없겠지요. 누아르는 과거 한때 유행했던 장르일 뿐입니다.


글 |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 《영화 배급과 흥행》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