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동물사전>의 매력 중 하나는 뉴트 스캐맨더의 에디 레드메인을 필두로 수많은 배우들이 자기 매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다채로운 연기는 J.K.롤링이 구축한 캐릭터에 한껏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콜린 파렐과 에즈라 밀러처럼 친숙한 배우들이 있는 한편, 한국에선 꽤나 낯선 앨리슨 수돌과 댄 포글러 같은 배우들도 있다. <신비한 동물사전>을 떠받치는 일곱 캐릭터와 그 배우들의 과거 대표작들을 짤막하게 짚어봤다.


콜린 파렐
퍼시발 그레이브스

<신비한 동물사전>에서도 콜린 파렐은 짙은 눈썹을 움직이며 흥분해 있다. 콜린 파렐은 첫 주연작 <타이거랜드>(2000)에서 베트남 참전병사로 분한 이래 주인공을 사사건건 옭아매는 정보국요원(<마이너리티 리포트>), 살기 위해 전화통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 남자(<폰부스>), 3대 대륙을 정복해 대제국을 건설한 정복자(<알렉산더>), 마약 운반책으로 위장해 범죄조직에 잠입한 비밀경찰(<마이애미 바이스>) 등 주로 격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마초 캐릭터를 구축해왔다.

<더 랍스터>(2015)의 데이빗은 많이 달랐다. 근시라는 이유로 이혼 당하고 커플 메이킹 호텔에 오게 된 데이비드는 불안함에 빠져 있다. 사랑을 찾지 못해 랍스터가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시달리고, 도망쳐 들어온 숲에서 자기처럼 근시인 짝(레이첼 와이즈)을 만났지만 그곳은 사랑이 금지돼 있다. 콜린 파렐에게 무기력이라니, 분명 낯설었지만 그만큼 강렬하게 파렐의 새로운 가능성을 내비쳤다.

<더 랍스터>

캐서린 워터스턴
티나 골드스틴

무채색의 수수한 차림새의 티나를 처음 보고, 먼저 그 비율에 놀랐다. 뉴트의 돌발 행동에 커다랗게 동그래지는 눈은 나중이었다. 학부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아버지(샘 워터스턴)와 오빠(제임스 워터스턴)가 모두 배우인 캐서린 워터스턴은, 모델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훤칠한 몸매를 물려 받았다. 다만 그녀가 지금까지 맡아온 캐릭터들은 대개 티나처럼 수수했다. <테이킹 우드스탁>, <더 레터>, <엘리노어 릭비: 그남자 그여자>등에 출연했지만, 180cm 장신에도 불구하고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워터스턴의 외모가 가장 빛을 발한 건 폴 토마스 앤더슨의 근작 <인히어런트 바이스>(2014)에서였다. 코카인에 찌든 사설탐정 닥(호아킨 피닉스)의 전 여자친구 샤스타는 살구색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 억만장자 애인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고는 사라진다. 약에 취한 닥의 의식처럼 몽롱하게 흘러가는 전개 속에서 아주 드물게 등장하는 샤스타의 시원시원한 육체는 영화의 유일한 또렷함이다.

<인히어런트 바이스>

앨리슨 수돌
퀴니 골드스틴

언뜻 키이라 나이틀리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 때문일까, 앨리슨 수돌은 익히 보아온 배우 같다. 하지만 그녀는 배우이기 전에 '어 파인 프렌지'(A Fine Frenzy)라는 이름으로 4장의 앨범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였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에서 따온 '섬세한 격정'이란 뜻의 이름처럼, 그녀의 음악은 여린 감정을 박력 있게 노래하는 트랙들이 주를 이루었다.

2014년부터 본명을 내세워 배우로 전향한 그녀는 이듬해 영화 <아더 피플스 칠드런>과 드라마 <딕>을 작업하고, 이제 막 <신비한 동물사전>의 세계에 입성했다. "모든 남자가 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섹시함으로 관객들을 단번에 사로잡지만, 극장 문을 나서면 맴도는 앨리슨 수돌의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지어보이는 해사한 미소다.  어 파인 프렌지의 지난 무대들에서 그 미소를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무대 위 어 파인 프렌지

댄 포글러
제이콥 코왈스키

이런 걸 '아재파탈'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신비한 동물사전>의 노마지 제이콥은 절대적 호감을 자랑하는 주인공 뉴트 못지 않은 매력으로 여성 관객들의 사랑을 차지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마법세계에 어리바리 어쩔 줄 몰라 하는 제이콥은, 첫눈에 반한 퀴니 앞에서는 온전히 사랑에 빠진 남자의 눈빛을 하고 있다. 그렇게 댄 포글러는 오직 잭 블랙만이 소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랑스러운 똥배남'의 영예를 안았다.

포글러는 지난 10년간 여러 영화에 주조연으로 참여했지만, 속시원히 성공한 국내개봉작이 없어 한국의 관객에겐 꽤 낯선 배우다. 그래도 가장 익히 알려진 작품은 역대급 흥행 실패작으로 알려진 <화성은 엄마가 필요해>(2011)가 아닐까? 포글러는 납치 당한 엄마를 찾아 화성에 온 마일로를 돕는 천재 지구인 그리블로 분했다. 배우들의 모션 캡처로 만든 애니메이션이지만, 척 봐도 댄 포글러의 짤뚱한 외형이 그대로 드러난다. 우연히 만난 주인공을 얼결에 돕게 되는 정감 넘치는 감초 캐릭터라는 점에서 <신비한 동물사전>의 제이콥과도 비슷해 보이기도.

<화성은 엄마가 필요해>

에즈라 밀러
크레덴스 베어본

에즈라 밀러는 16살에 출연한 데뷔작 <애프터스쿨>(2008)에서 인터넷으로 쌍둥이 소녀의 죽음을 목격하고 망가져가는 고등학생으로 분하며 제 존재를 확실히 새겼다. 이후 한동안 한껏 힘을 덜어낸 연기를 보여준 그는 <케빈에 대하여>(2011)에서 잘못된 훈육으로 악마가 되어버린 케빈 역으로 전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토록 처참한 학살을 벌이면서도 털끝만큼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밀러의 창백한 얼굴은 엄마 에바(틸다 스윈튼)의 이성을 송두리째 마비시켰다. 이듬해 청춘영화 <월플라워>(2012)에 출연한 그는 불안과 광기를 동시에 품은 독특한 청춘스타로 자리잡았다.

마법사를 반대하는 종교단체 '반 마법사회'의 일원이자 그 안에서도 학대를 당하는 크레덴스는,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끝내 외딴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는 소년을 여러 캐릭터를 통해 변주해온 에즈라 밀러에겐 분신처럼 익숙한 인물이다. 특히 도저히 속을 모르겠는 얼굴 뒤에 감춰진 치명적인 느낌이 크레덴스에게 꿈틀대는 불길한 기운을 한껏 북돋았다.

<케빈에 대하여>

카르멘 에조고
세라피나 피쿼리 대통령

근래 국내 개봉한 <셀마>(2015)와 <본 투 비 블루>(2016) 속 카르멘 에조고의 캐릭터는 꽤 비슷해 보인다. 코레타와 제인은 각자 마틴 루터 킹과 쳇 베이커라는 역사적 인물의 아내로서, 현명하고 강직한 태도로 고뇌에 빠진 남자를 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여자다. 분량 자체로는 주인공을 서포트하는 역에 그치지만, 점점 지쳐가는 남자의 곁에서 지어보이는 흔들림 없는 눈빛을 선명하게 남겼다.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미국마법의회 MACUSA의 대통령을 흑인 배우 카르멘 에조고가 맡는다는 건, 다양한 사회를 지향했던 J.K.롤링의 철학을 방증하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자태에도 불구하고 피쿼리 대통령의 역할은 미미했다. 마법세계에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는 가운데에도 대통령은 그저 당황해하거나 뒤늦게 나타나 하나마나한 말만 덧붙일 뿐이다. 전작 <셀마>, <본 투 비 블루>의 두 여인이 품은 강인한 의지를 떠올려보면 더욱 아쉬운 캐릭터다.

<본 투 비 블루>

사만다 모튼
매리 루 베어본

1997년 샬롯 브론테의 고전을 바탕으로 한 TV영화 <제인 에어>(1997)로 데뷔한 사만다 모튼은 우디 앨런의 <스윗 앤 로다운>(1999)에서 벙어리 여인 헤이티를 연기하며 크게 주목받았다. 하지만 모튼에게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 캐릭터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의 예언자 아가사다. 언어 없이 표정과 제스처만으로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아가사는 사만다 모튼이라는 배우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예견하는 캐릭터였다.

'반 마법사회'의 수장 노릇을 하는 메리 루 베어본은 슬하에 크레덴스를 비롯한 삼남매를 두고 있지만, 셋 모두에게 학대를 가하며 훈육한다. 메리 루는, 크레덴스의 부모를 자처하는 퍼시발처럼, 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후에도 내면의 격한 감정을 억누르는 캐릭터를 꾸준히 선보였던 모튼의 장기를 제대로 드러낼 만한 그릇은 아니었던 걸까? 반 마법사회를 통솔하는 카리스마보다는 그저 신경질적인 표정만이 둥둥 떠다닌다는 느낌만 남는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