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새콤달콤을 좋아하는 채수빈이 <새콤달콤> 다은 역을 만났다는 것. 이런 우연에조차 '운명'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싶은 건 채수빈이 영화 속 다은의 여러 얼굴을 고스란히 체화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3교대에 지친 간호사, 장혁(장기용)을 사랑하는 여자친구, 그 모습들이 채수빈의 얼굴 위로 떠오를 때, 그의 존재감이 영화를 가득 채운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 단순한 '사랑 영화 여주인공' 이상의 캐릭터 다은을 연기하고자 배우 채수빈은 어떤 방법을 선택했을까. 영화의 공개를 앞둔 6월 1일, 채수빈을 만나 <새콤달콤>과 다은, 그리고 채수빈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이번에 연기한 다은은 간호사다. 개인적으론 간호사 특유의 말투 같은 부분에서 신경 쓴 것이 느껴졌다. 어떤 식으로 캐릭터를 준비했나.
장혁(장기용)한테 하는 행동 같은 게 다은이가 괜히 끼를 부리는 것처럼 보일까 봐, 그게 대본에서부터 걱정이 됐다. 감독님이 소아과 친구들한테 대하는 느낌으로 친절한 간호사면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말투를 신경 썼다. 힘들고 현실에 찌들고 그런 모습을 더 보여주려고 집 안에서 찍는 장면은 화장을 안 했다. 그리고 장혁에게 서운한 감정이 쌓이는 감정선들을 신경 썼던 것 같다.
그밖에 이계벽 감독이 특별히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고 한 부분이 있다면?
특별히 어떤 것에 신경 쓰라고 하시기보다 현장에서 배우를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는 분이다. 현장에서 제게 필요할 것 같은 자극점들, 그런 걸 얘기해주시거나 대사 없는 장면에 제 상대 배우에게 간단한 대사를 줘서 제가 순간적으로 반응하게 만들기도 하셨다. 이런 섬세한 연출이 있어서 재미있게 찍었다.
그동안 여러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셨는데, 장기용 배우와의 연기는 어땠나.
호흡 맞춰가는 게 재밌었다. 꽁냥꽁냥한 부분보다 감정이 쌓인 후의 싸우는 장면, 서운함이 쌓여있지만 서로 얘기하지 않고 애쓰는 모습들. 그런 장면들이 많아서 하하 호호 즐겁게 촬영한 건 아닌데, 그런 감정의 티키타카라고 할까. 그런 게 재밌었다. 현장에서 오빠랑 만나는 장면이 보기보다 적었고, 싸우는 장면이 많았는데 (기용)오빠가 불편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편하게 얘기하고 장난쳐도 잘 받아주는 성격이다. 현장에서도 감독님이랑 장난치고 농담하고. 우리 영화는 이야깃거리가 많으니까 현장에서 스태프들이랑 배우들이랑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런 부분들이 재밌었다.
다은이 장혁에게 선물한 신발이 중요한 모티브로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선물이 있다면?
선물... 이건 진짜 옛날 얘긴데(웃음) 고등학교 때 처음 연애했던 친구에게 받았던 선물. 처음 같이 맞이한 생일날, 예쁘게 데이트를 하고 집에 가는데 선물이나 케이크가 없었다. "나 간다? 나 들어갈게?" 이래도 아무것도 없더라(웃음). 그래서 아무것도 준비 안 했구나 하고 집에 들어가 씻으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한 2~30분 만에. 잠깐 나오랬다. 아, 있구나 이러면서 내려갔다(웃음). 미리 사두면 안될 거 같아서 지금 가져왔다며 방금 사온 딸기 타르트 같은 케이크를 줬다. "고마워~" 하고 들어가는데 집 앞에 커다란 박스가 있었다. 학생 때 할 수 있는, 큰 인형 하나에 도시락이랑 학용품이 들어간 필통에 어머니 꺼, 누나 꺼 쪽지가 붙은 선물까지 해서 넣어놨더라. 그게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다.
고등학생 때 가족까지 챙기는 선물이라니, 기억이 날수밖에 없겠다.
물론 (가족들 선물은) 기억이 정확히는 안 나지만 주걱이나 이런 거였던 거 같다. 소소하지만 거기에 일일이 쪽지를 써준 게 기억이 난다.
추천하고 싶은 멜로 영화는?
<블루 발렌타인>. 되게 좋아하는 영화다. <타이타닉>도 정말 옛날부터 좋아했던 영화다. 그런 로맨스 멜로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둘 다 얘기가 조금 비극적이다(웃음).
(웃음) 그렇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원래 박하사탕 vs 새콤달콤을 여쭤보려고 했는데, 영상인터뷰 때 새콤달콤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무조건 새콤달콤이다.
그 외에 최애 간식이 있다면?
일단 간식을 너무 좋아한다. 새콤달콤을 많이 먹는 거 같다. 아니면 마이쮸? 그런 젤리 같은 거 좋아한다.
유기견을 입양해서 키우고 있는 집사인데, 반려견 자랑을 해보자면?
사진부터 보여드려야 하는데(웃음). 너무 똑똑하다. 너무 귀여운데... (마타는) 강아지인데 하쿠(채수빈의 반려묘 이름)랑 자라서인지 자기가 고양이인 줄 아는 거 같다. 보통 강아지는 그루밍을 잘 안 하지 않나. 그냥 간지러운 부분이나 발을 핥는 게 아니라 온몸 구석구석 자기 전에 핥는다. 또 둘이 숨바꼭질하듯이 사냥하듯이 잘 논다.
또 좋아하는 동물이 있나.
동물 다 좋아한다. 소도 좋고, 말도 귀엽고.
그럼 한 번쯤 키우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동물은?
아, 앵무새. 앵무새 너무 좋아한다, 앵무새랑 라쿤.
자신이 지금 가장 빠져있는 건?
TV프로그램도 되나?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라고 있다. 그때 당시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나 우리가 대충 알고 있는 것들의 속사정을 얘기해 주는. 빠진 지 얼마 되진 않았다. 아마 한 달?
오늘의 TMI가 있다면.
피망 김밥? 제가 피망을 안 먹는데, 매니저 오빠가 피망 김밥을 사 왔다.
그런 김밥도 있나?
저도 처음 들어봤다. 그래서 오빠 김밥을 두 개 뺏어 먹었다(웃음).
넷플릭스 추천작은?
<브리저튼> 너무 재밌게 봤다. 추천작... <나의 문어 선생님>. 많이 울었다. 모든 생명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구나 느꼈고, 문어가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다니….
문어한테도 빠진 거 같다.
그런가 보다(웃음).
<새콤달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뽑자면?
장혁과 다투고 나서 집에 들어갈 때. 그 둘의 마음이 다 이해갔다. 진짜 욕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장혁이) 잘못한 게 바로 해명을 안 하지 않았나. 대처를 너무 잘못했다. 장혁 바보야.
<새콤달콤>을 볼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
나도 <새콤달콤>을 정말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이랑 같이 보고 싶어서. 6월 4일 딱 퇴근하고 우리집에 모여서 보기로 했다. 그래서 친구들이랑도 보고, 연인과 봐도 재밌고, 누구와 봐도 이야깃거리가 많은 영화니까 많이 봐주시고 보고 또 봐도 또 새로운 영화니까 많이 보시고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
※ 아래 문답은 영화의 결말과 직결되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다.
<새콤달콤>은 원작이 있는 작품이다. 원작을 봤는지 궁금하다.
처음 대본을 받을 때 일본 원작(<이니시에이션 러브>)이 있다 그래서 영화를 먼저 봤다. '너무 재밌는데?' 하면서 대본을 봤다.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갈 줄 알았는데 시나리오는 현실적인 모습들을 반영해서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셨더라. 처음엔 '장혁이 좀 더 못되게 보여야 하고 다은이 더 안쓰러워 보여야 하는 거 아녀요?' 했는데 영화 만들어진 걸 보니 납득이 갔다. 보영, 장혁, 다은, 누구 하나 '쟤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돼' 하는 캐릭터 없고, 장혁도 나름 열심히 했더라. 연기한 후 제 입장에선 장혁은 바람을 피운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고 마치 전 남친을 기억하듯이 너무 나쁜 놈이야 이렇게 기억을 하고 있다가 완성된 영화를 봤다. 장혁이 나름 다은이를 위해서 너무 애쓴 거다. 자기딴엔 최선을 다했다는 게 느껴져서 미안함이 들었다. 그러다가 세 번째 볼 때는 객관적으로 봐지더라. 그래서 장혁을 마냥 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잘한 것도 없고, 다은이도 사실 마찬가지고. 볼 때마다 새로운 영화인 것 같다.
그래서 연기하는 입장에서 이 영화가 더 재밌었을 것 같다. 다은이 착하게 그려지다가 후반부에선 확 뒤집힌다. 그런 부분이 특별했을 것 같다.
재미있었다. 대본상엔 누굴 언제 만났다든지 같은 시기가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아서 그걸 정리하느라고 초반에는 머리가 아팠다. 다 정리하고 나서 우리가 트릭을 하나 넣었다. 머리다. 긴 머리했다가 짧은 머리했다가 시간이 지나서 풀렸다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머리를 볶았다는 설정인 거다. 그런 것들에 눈치를 채지 않을까 하면서 찍었던 거 같다.
헤어는 그럼 원래 있던 게 아니었나 보다.
없었다. 내가 아는 분이 추천을 하기도 했고, 감독님을 포함해 다들 좋다고 말씀을 하셔서 추가가 됐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