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주의자 어린이였던 나는 원씨의 고초를 다룬 에피소드를 보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이던 1990년대 초만 해도 6월이 되면 학교에서 반공포스터 대회나 반공글짓기 대회, 반공 웅변대회를 열곤 했다. ‘국민학교’에 입학했던 게 KAL기 858편 폭파사건이 일어난 지 3년 뒤인 1990년이었으니 이상할 일은 아닌데, 신기하게도 이런 이야기에 공감하는 건 내 또래뿐이다. 나보다 몇 살 위인 선배들은 “너희 때에도 그런 걸 했다고?”라며 의아해하고, 나보다 몇 살 아래인 후배들은 “그런 게 있었다고요?”라며 되묻는다.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마지막 세대의 숙명이다.
선후배들이 믿거나 말거나, 소년 이승한은 6월이면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지금도 허리가 끊인 산하 북녘땅에서는 우리 겨레 우리 동포들이 저 잔악한 공산당의 무리들의 탐욕스러운 욕심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같은 문장을 지어 반공글짓기 대회에 응모했고, 어떤 해에는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라는 정해진 멘트로 끝나는 반공 웅변대회에 나가곤 했다. 어린 나이에 받은 반공교육이 어찌나 투철했던지, 서태지와 아이들이 ‘발해를 꿈꾸며’(1994)를 발표했을 때 난 어린 마음에도 그게 북진통일을 꿈꾸는 노래라고 철석같이 믿었더랬다. 봐! 구 노동당사 건물 전면에 거대 태극기를 달았잖아! 저게 뭘 뜻하는 거겠어?! 공산주의자들의 건물에 태극기를 꽂겠다는 의미겠지!
그래서였을까. MBC <육남매>(1998~1999)를 생각하면 나는 주연인 용순(장미희)과 그 여섯 아이들이 먼저 떠오르는 게 아니라, 용순의 이웃이자 훗날 시매부가 되는 쌀집 주인 원씨(백일섭)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전쟁 통에 가족들을 모두 남겨두고 홀로 월남할 수밖에 없었던 실향민, 맨몸으로 남쪽에 내려와 다시 처음부터 제 삶을 일구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던 자린고비. 그렇게 모질게 살아남은 사람인 덕에, 원씨는 태풍 사라(1959)로 문래동 골목이 모두 물에 잠겼을 때에도 짐을 빼는 이웃들의 손을 붙잡고 함께 대피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살아만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아마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겠지. 비록 물에 잠긴 쌀을 건지다가 억장이 무너져서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긴 하지만. “어디 한번 해보자 이 새끼들아! 살 만하면 전쟁 내고! 살 만하면 비 내고! 살 만하면 가뭄 내고! 언제까지 내 눈에서 피눈물 낼지 어디 한번 해보자!”
하지만 공산주의가 싫어 맨몸으로 월남한 원씨도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시대 분위기에서 마냥 무사할 수는 없었다. 원씨는 밤마다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는데, 식은 땀을 흘리며 악몽에서 깨어난 밤이면 종종 라디오를 켜서 북한 주파수를 찾아 듣곤 했다. ‘전쟁이 나면 라디오에서 전쟁 소식이 나올 것이고, 아무 이야기가 없으면 전쟁이 안 일어난 거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게 빌미가 되어, 원씨는 간첩 혐의를 받고 경찰서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다. 온 동네가 다 아는 반공주의자이자, 김일성 이야기만 나오면 “찢어 죽이고 싶다”고 말하던 원씨였는데도, 그가 조사를 빌미로 잡혀가자 어떤 이들은 두려움에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그래, 정말 간첩인지도 몰라.
자유를 찾아 고향 산천 다 뒤로 하고 남쪽 땅으로 왔는데도 간첩으로 몰린 원씨는 기가 찬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와 푼 회포는 졸지에 간첩들의 회동으로 오인당하고, 원씨가 안 먹고 안 입어가며 모아둔 재산은 공작금으로 둔갑한다. 원씨가 간첩이 아니라는 건 이웃들이 제일 잘 알지만, 모두가 탄원서를 써주는 건 아니다. 입을 잘못 열었다가 자기들도 한 패로 몰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큰 탓이다. 우여곡절 끝에 간첩 혐의를 벗고 풀려나긴 했지만, 두들겨 맞은 자국으로 가득한 몸을 이끌고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원씨의 얼굴에는 환멸이 가득하다. “이남이건 이북이건, 정내미 떨어져서 못 살겠소.” 울면서 남편 원씨를 챙기던 아내 정순(윤미라)은, 혹시라도 다른 이가 들었을까 눈치를 살피며 말한다.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말아요.” 그 말조차도 간첩이나 불순분자로 몰릴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알았을 테니, 정순은 원씨의 말이 조마조마했으리라.
반공주의자 어린이였던 나는 원씨의 고초를 다룬 에피소드를 보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국가안보는 중요한 일이 맞는 거 같은데, 그 목적 하나로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고 간첩으로 몰아가는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대한민국 현대사가 ‘반공’이라는 핑계로 정치적 라이벌들을 제거하거나 고문하고, 사회 변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을 내리찍어온 사례들로 가득하다는 걸 알게 된 건 몇 년 뒤의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국민학교’가 심어준 반공교육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다시 보게 만든 첫 계기가 아마 <육남매>의 원씨였지 싶다.
6월이 되면 사람들은 전쟁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그 안에서도 내 이웃의 안위와 국가공동체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추모한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맞는 말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모할 일이다. 그런데 가끔은, 우리가 영웅이라 부르는 이들뿐 아니라 전쟁과 냉전을 거치며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도 함께 기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정치 공작을 목적으로 수사기관이 간첩으로 조작한 이들, 사소한 오해로 고초를 겪은 사람들, 고향이 북쪽이라는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숨죽이고 살았어야 했던 그 수많은 이들. 그런 이들이, 어디 원씨 하나뿐이랴.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