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현장에 있다 보면 감독이라는 직업이 마냥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멋지기도 하면서 폼도 나니 말입니다. 누구든 그러할진 데 현장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는 배우인들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20세기>(2016) <재키>(2016) <프린시스 하>(2012)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배우 그래타 거윅, 그녀가 어떤 현장에서는 배우가 아닌 ‘감독님’으로 불립니다.
<레이디 버드>(2018) <작은 아씨들>(2019)를 연출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감독님’ 이라는 호칭을 받는 배우로 <황야의 무법자>(1964) <더티 해리>(1971)로 유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있습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그랜 토리노>(2008) <설리: 허드슨의 기적>(2016) <라스트 미션>(2018) 등 꽤 많은 영화를 연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초원의 빛>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워렌 비티 또한 ‘감독님’이 된지 꽤 되었습니다. 정치영화 <레즈>(1981)로 오스카에서 감독상까지 수상합니다. <대부>(1972)의 말론 브란도는 젊은 시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 <워터프론트>(1954)로 일찌감치 대배우 계열에 오릅니다. 그런 그가 1961년 <애꾸눈 잭>이라는 영화로 입봉을 합니다. 하지만 그 평생 딱 그 한 작품뿐이었습니다. 어느 평론가는 그가 만약 감독을 계속했다면 감독으로도 꽤 유명해졌을 거라 하더군요. <대부>의 또 한 사람, 코를레오네 가문의 오른팔 역할을 한 로버트 듀발 역시 <사도>(1997)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1986년 개봉된 <블루 벨벳>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데니스 호퍼, 그는 1968년 그 유명한 영화 <이지 라이더>로 감독 데뷔를 하였고 이후 <마지막 영화>(1971) <범죄와의 전쟁>(1988) <뒤로 가는 남과 여>(1989) <정오의 열정>(1990) 등을 연출합니다. 우리에게 가수로 더 유명한 바브라 스트라샌드, 그녀는 <화니 걸>(1968) <스타탄생>(1976)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습니다. 그런 그녀가 1983년 <엔틀>이라는 뮤지컬 영화로 감독 데뷔합니다. 이어서 <사랑과 추억>(1991) 그리고 <로즈 앤 그레고리>(1996)까지 이어서 연출하지요.
멜 깁슨은 그의 연출작 <브레이브 하트>(1995)로 오스카의 영광을 차지하였고 최근에는 <핵소 고지>(2016)라는 전쟁영화를 감독하였습니다. 케빈 코스트너도 첫 감독 데뷔작 <늑대와 춤을>(1990)으로 대성공을 거둡니다. 이후 틈틈이 영화연출을 하고 있긴 하지만 본업인 배우에 더 충실하고 있는 듯합니다. <양들의 침묵 >(1991) 조디 포스터도 이 부문에서는 빠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꼬마 천재 테이트>(1991)<홈 포 더 홀리데이>(1995) 등에서 감독 타이틀을 달지요. 덴젤 워싱턴도 <앤트원 피셔>(2003) 이어서 <펜스>(2016)의 감독을 하였고 <비포 선라이즈>(1996)의 줄리 델피 또한 <비포 선셋>(2004)에서 각본으로 이름을 올리더니 2007년에는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로 감독 데뷔를 합니다. 배우만이 아니라 시나리오작가에 ‘감독님’이기도 하면서 제작까지 하고 있는 그녀입니다. 안젤리나 졸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피와 꿀의 땅에서>(2011)를 통해 감독 데뷔하더니 이어서 <바이 더 씨>(2015) 그리고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 캄보디아 딸이 기억한다>(2016)의 각본, 제작, 감독, 거기에 주연까지 모든 타이틀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드루 베리모어는 <위핏>(2009)를 통해 감독 데뷔하였고 <블랙 스완>의 나탈리 포트만은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2015)에서, 이완 맥그리거는 <아메리칸 패스토럴>(2016)로, 브래들리 쿠퍼는 <스타 이즈 본>(2018)에서 본인의 이름을 감독 타이틀에 올립니다.
가까운 일본에는 기타노 다케시가 있습니다. 코미디언 ‘비토 다케시’로 유명했던 그는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한 후 <그 남자 흉폭하다>(1989)를 시작으로 <소나티네>(1993) 그리고 <하나-비>(1997)를 연출합니다. <붉은 수수밭>(1988)으로 유명한 중국배우 강문, 그도 1994년 <햇빛 쏟아지는 날들>로 감독 데뷔하여 금마장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홍콩에는 유명한 주성치가 있습니다. <007북경특급>(1995)을 시작으로 <소림축구>(2002) <쿵푸허슬>(2005) 그리고 중국 최고의 흥행작 <미인어>(2016) 등을 연출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배우 성룡, 한 영화에서 15개의 다른 일(different jobs)을 한 적이 있다는 그는 1979년 <소권괴초>을 통해 연출공부를 시작하여 <프로젝트A>(1983) <폴리스 스토리>(1985)를 통해 연출자로도 인정을 받습니다.
국내도 하정우가 <롤러코스터>(2013)와 <허삼관>(2014)을 연출하였고 박중훈도 장고 끝에 <톱스타>(2013)를 통해 입봉을 하였습니다. 유지태는 단편영화 <자전거 소년>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나도 모르게> 등을 만들다 본격적으로 장편 <마이 라띠마>(2012) 연출합니다. 문소리도 <여배우는 오늘도>(2017)를 통해 입봉을 하였으며 김윤석 역시 <미성년>(2018)으로 ‘감독님’이 됩니다. 정진영도 <사라진 시간>(2021)으로 감독 데뷔를 하였는데, 그의 첫 충무로 입성은 배우가 아닌 연출부였습니다. <초록물고기>(1997)의 연출부 시절 제작비 절약차원(?)에서 한석규의 셋째형으로 출연한 계기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는 충무로 입성 전에는 독립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에 배우로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신성일 배우님도 <연애교실>(1971)로 데뷔하여 <어느 사랑의 이야기>(1971)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1972) 등을 연출합니다. 또 한 분 하명중 배우님도 <땡볕>(1985) 그리고 <혼자 도는 바람개비>(1990)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2007) <주문진>(2010)등을 연출합니다. 1970년대 이승현, 김정훈과 함께 최고의 하이틴 배우로 활약했던 진유영 배우님도 <지금은 양지>(1988) <독재소공화국>(1991) <도둑과 시인>(1995) 등을 연출하였고 마찬가지로 당시 하이틴 영화에 출연한 손창호 배우님도 <동경아리랑>(1990)을 연출합니다.
개봉 대기 중인 영화도 있는데 정우성 본인의 첫 감독 데뷔작 <보호자>가 현재 대기 중에 있고 그의 절친인 이정재도 첩보 액션 스릴러 <헌트>로 감독 데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인생의 전부인 영화인들에게 있어 감독을 하고픈 바램은 영화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자생되는 욕망과도 같다보니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싶은 욕망과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픈 예술가의 정신이 불긋하고 솟구치면 저지하기가 참 힘들지요. 그런 이유로 해서 메가폰을 잡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악마의 씨>(1968)에 출연한 존 카사베츠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그는 할리우드와 계약을 맺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안 좋은 경험을 한 후 다시는 스튜디오를 위해 감독을 맡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영화를 찍기 위해 배우생활을 이어갔고 그렇게 번 돈을 가지고 자신의 영화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에게 있어 감독이 되고픈 이유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만의 영화를 찍고 싶어서이겠죠. 배우들이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감독을 쓰고 싶어 하는 이유는 서로 다를 것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그들이 만든 영화들은 흥행과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한 것이 단순히 흥행영화를 찍기 위해 배우가 연출에 손을 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글 |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 《영화 배급과 흥행》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