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일의 밤>

이 배우를 한번 망가뜨리고 싶었다. 종종 감독들이 이런 말을 한다. 고상하다거나 차분한 혹은 먼지 한 톨 없는 도화지 같은 배우들을 보고 있노라면 감독들은 참지 못하는 듯, 그 배우에게 과감하다거나 파격적인 역할을 안기며 색을 더한다. 이제 성인이 된 배우 남다름에게도 그런 제안들이 물밀려 들어올 것 같다는 생각이 인터뷰 내내 들었다. 테이블 건너편에 마주 앉은 남다름에게서 순백의 기운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붙인 그는 20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신중했고, 차분했다. 으레 아역 배우가 습관처럼 익힌, 교육된 말들이라 넘길 수도 있었지만, 대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모두가 눈치채고 있던 남다름의 선함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속된 말로 '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본연의 선한 기운을 무기로 누군가의 아련한 어린 시절을 주로 연기하던 남다름이 <제8일의 밤>을 통해 아역의 탈을 벗었다. 아역 배우라면 누구나 가진 '흑역사' 한 줄 없는 남다름은, 이번 작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성숙된 감정을 펼쳐내며 성인 배우로 가는 길목을 성공적으로 닦았다. 개봉을 앞둔 영화 <싱크홀>의 김지훈 감독 말마따나, "앞으로 한국 영화 50년을 책임질 배우"로 점쳐지고 있는 배우 남다름. 앞으로의 1년, 1년이 궁금한 남다름과 마주 앉아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제8일의 밤>

<제8일의 밤>이 드디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네요. 촬영이 끝난 지도 벌써 2년이 흘렀는데요.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본인 모습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엔 고등학교 2학년이었으니까.

네, 저도 얼마 전에 영화를 봤어요. 스무 살이 돼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제 얼굴을 보니까 확실히 조금 어린 느낌이 있더라고요. 분위기나, 느낌도 많이 달라진 것 같고요.

미스터리/스릴러 장르는 첫 도전입니다. 지금까지는 사극이나 휴먼드라마 장르에서 주로 볼 수 있었는데요. 연기적으로도 그렇고. 여러모로 낯선 점들이 많은 현장이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연기했던 캐릭터들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촬영 초반엔 조금 낯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많이 했고, 현장에선 이성민 선생님이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창석이란 캐릭터의 윤곽을 잡기 위해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제8일의 밤>이 직설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대사나 표현들이 은유적이고 의미심장한 구석이 많은데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저도 시나리오를 한 번 읽고는 처음엔 이해가 어려워서 대본을 두세 번 정도는 더 읽었던 것 같아요. 이후에 감독님과 얘기도 많이 하고 현장에서 궁금한 것들이 생기면 바로바로 물어봤죠.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셨으니까 언제나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려주셔서 촬영하는 동안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제8일의 밤>

<제8일의 밤>을 이성민 배우 덕분에 출연하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요?

아, 이성민 선생님이 저를 감독님에게 추천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웃음) 드라마 <기억>에서 선생님과 부자지간으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습니다. 추천해주셨다는 얘기를 듣고 저도 대본을 봤는데 대본이 너무 좋더라고요. 음, 확실하게 여쭤보지는 못했지만 감독님도 저를 보시곤 청석이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웃음) 이성민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좋은 작품에 참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청석은 표현이 까다로운 캐릭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묵언 수행을 하는 스님이기에 대사 없이 연기해야 했는데 가장 힘든 점이 뭐였나요?

묵언 수행을 해야 하는 신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요. 영화 초반부에만 묵언수행을 하는데, 처음엔 촬영하면서 저도 모르게 자꾸 입을 벌리게 돼서 그런 어려움은 살짝 있었던 것 같아요.

<제8일의 밤>

청석이 처음으로 말을 하는 장면, 진수(이성민)에게 감사를 표하던 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래도 배우 입장에선 영화 속에서 처음 목소리를 내는 것이니 힘이 들어갔을 것 같습니다.

그 대사가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감정과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를 했어요. 그렇게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사실 그 장면을 특별히 신경 쓰진 않았고, 그저 자연스럽게 대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청석의 얼굴을 떠올리면 눈썹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데요. 눈썹을 굉장히 다이나믹하게 움직이더라고요. 청석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나요?

청석 캐릭터가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귀엽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감독님이 얘기를 주셨어요. 연기 디렉션을 주실 때 눈과 눈썹 움직임을 크게 주면 더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나지 않겠냐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눈썹에 힘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웃음)

(왼쪽부터) <제8일의 밤> 이성민, 남다름

(왼쪽부터) <제8일의 밤> 이성민, 남다름

앞서도 얘기했지만 드라마 <기억> 이후 재회한 이성민 배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성민 배우를 롤모델로 꼽을 만큼 존경스러운 마음을 내비쳤는데요. 중학생이 아닌 고등학생 시선에서 바라본 이성민 배우는 또 달랐을 것 같습니다.

<기억>에서는 부자지간으로 호흡을 맞췄기 때문에, <제8일의 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어요. 아무래도 이번 작품에서 선생님과 더 자주 붙고, 감정적으로 대립하거나 부딪쳤던 장면들도 많아서 <기억> 때보다 더 깊게 호흡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도 선생님께 많은 걸 배웠지만, 이번 현장에서 선배님의 연기를 더욱 가까이 볼 수 있었고 많은 걸 느꼈습니다.

제작보고회에서 이성민 배우가 말하길, 워낙 밤에 찍은 장면이 많아서 "다름이가 졸았다"라고 하던데요. (웃음) 졸고 있는 사진도 여러 장 간직하고 있다고.

아, 그 잠이. 하하하하. 음 제가 자려고 잔 건 아니었어요. 다른 분들 촬영하실 때, 특히 숲속에선 세팅도 오래 걸리고 해서 대기 시간이 좀 있었는데. 제가 잠깐 현장에 있는 모니터 뒤 의자에 앉아있었어요. 그때 이성민 선생님이 "신발도 벗고, 아빠 다리하고!" 편하게 앉으라고 하셨는데, 새벽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잠깐 졸았더라고요. 그때 선생님과 스태프 형들이 살금살금 다가와서 셀카를 남기셨습니다. (웃음)

영화 <허삼관>

영화 <허삼관>에서도 반삭발 머리였는데, 이번에도 짧게 머리를 잘라야 했습니다. 부담이 되진 않았나요?

만약에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으면 졸업사진을 찍어야 하니까 조금은 부담이 됐을 것 같아요. (웃음) 삭발의 시기가 딱 적절했죠. <허삼관> 당시, 6학년 때 삭발한 경험이 있으니까 두려움은 사실 없었어요. 작품이 좋으면, 역할이 좋으면 머리는 뭐 크게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습니다.

짧은 머리와 긴 머리 중 어떤 헤어스타일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나요.

제가 올해 초에 머리를 많이 길렀어요. 촬영 때문에 기른 건 아니었고,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계속 길러봤어요. 그냥 길러보고 싶어서. (웃음) 긴 머리도 해보고, 짧은 머리도 해보고, 삭발도 해 본 셈이죠? 저는 사실 뭐 각자의 느낌이 다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주변 분들은 짧은 머리가 낫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꽃보다 남자> 남다름

<꽃보다 남자>(2009)로 데뷔한 이후 12년 동안 약 50편에 다다르는 작품들에 출연했습니다. '아역 캐스팅 1순위' 배우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사실 참 감사하죠. 감사한 현장이 너무 많았어요. 그리고 또 처음 저를 불러주신 분들도 계셨지만, 한 번 작업하셨던 작가님이나 감독님이 저를 예쁘게 봐주셔서 다시 불러주신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 분들에게 참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이야기하려 했는데요. <스타트업>을 함께한 박혜련 작가, 오충환 감독과 각각 세 작품을 함께 했더라고요. 박혜련 작가나 오충환 감독이 본인을 '또' 캐스팅한 연유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나요.

따로 직접적으로 말씀해주신 적은 없고. 그냥 너무 맘에 들었다, 느낌이 좋았다는 코멘트는 해주셨어요. (웃음)

성인 배우와 싱크로율이 높은 아역 배우로도 유명합니다. 그 이유가 외모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캐릭터 연구를 철저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봤습니다. 연기할 때 이것만은 꼭 지킨다 하는 게 있을까요 혹시.

조금 광범위한 질문이긴 하네요. (웃음) 연기할 때 이것만은 지킨다? 음. 저는 현장에서 배우로든, 사람으로든 갖춰야 할 예의와 배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연기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업이기 때문에, 아무리 지치고 상황이 안 좋더라고 기본적인 예의와 매너를 겸손하게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영감을 어디서 가장 많이 받는지 궁금한데요.

소설책을 많이 읽어요.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고요. 또 현장에선 대기 시간이나 이럴 때 차에서 쉬거나 다른 곳에서 앉아있거나 하지 않고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모니터하는 편입니다. 그때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야말로 편집되지 않은 날 것이니까 여러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라니 안 물어볼 수 없겠습니다. 좋아하는 영화는?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위대한 개츠비>? 소설을 먼저 읽었는데 소설의 느낌도 좋았고, 영화의 느낌도 좋았고, 영화의 OST도 좋았습니다. (웃음) 스토리도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세상> 남다름

첫 드라마 주연작인 <아름다운 세상>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캐릭터들을 연기했지만, 왠지 <아름다운 세상> 속 '선호'가 남다름 본체와 가장 비슷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 자신과 가장 비슷한 캐릭터는 누구였나요?

아, 저도 <아름다운 세상> 선호와 제가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해왔어요. (웃음) 촬영할 때도 주변 분들한테 그런 소리를 많이 듣기도 했고요. 정말 비슷한 점이 많아요. 대본을 읽을 때도 저와 성격이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점이 비슷한지 궁금해지는데요.

일단 선호라는 이름도 너무 예쁘잖아요? (웃음) 또 선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정의롭고, 단단한. 외유내강? 그런 점에 있어서 많이 닮아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제8일의 밤>에서도 이야기하듯, 남다름에게도 '봉인'하고 싶은 과거 작품이 있을까요. 흑역사라고나 할까요?

근데 저는 원래 드라마를 찍고 본방송 모니터링을 한 뒤에는 재방을 따로 챙겨서는 못 보겠더라고요. 지금도요! 우연히 보게 되는 건 괜찮은데 제가 찾아서 보기가…. 근데 대부분 그러시더라고요. 저 역시도 좀 많이 오그라들고, 어색하고 그런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음)

<육룡이 나르샤> 남다름

부모님의 권유로 인해 배우의 길에 들어섰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기를 하기 위해선 본인 스스로의 의지도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연기자라는 꿈에 욕심이 생긴 시점은 언제부터인가요.

시기적으로 딱 정확하지는 않은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육룡이 나르샤> 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촬영 기간도 짧지 않았으니까요. 또 순수하고 어린 이방원이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연기하면서 '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욕심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한 소년의 성장기를 직접 체험한 느낌이 들어서 여러 생각이 들었었죠.

많은 분들이 <육룡이 나르샤>를 배우 남다름의 출세작으로 꼽으니 그 의미가 더 뜻깊을 것 같은데요?

아, 그리고 제가 이방원과 실제로 생일이 같아요. 신기하죠? 저도 정말 신기했습니다. (웃음)

'이일 학번'이라고 읽어야겠죠? 올해 중앙대학교 21학번이 됐습니다. 축하드린다.

감사합니다. (웃음)

작년과 올해 입학한 신입생들이 가장 안타깝더라고요. 코로나 시대의 대학 생활은 어떤가요.

4월까지는 거의 줌(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대면수업을 했는데, 5월부터는 일주일에 4번 대면 수업으로 바뀌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인원 제한이 있어서 분반을 나눠서 수업 중입니다. 개강총회도 OT도 줌으로 했습니다. 한 방 안에 몇십 명씩 들어와서. (웃음)

다들 막연하게 20살에 대한 환상이 있는데, 성인이 되면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나요?

사실 저는 20살이 된다고 뭔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대신에 이제는 내 행동에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가 된 거니까 더 조심해야겠다,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조심하고, 한 번 더 생각하고….

낯을 굉장히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고 들어서 조금 걱정을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웃음)

하하하.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 서면 오히려 부끄러움이 걷힌다고 그러잖아요? 유아인 배우도 그렇고, 엄태구 배우도 그렇고. 본인 역시 카메라 앞에서 에너지가 샘솟는 편인가요?

오, 네 맞아요. 제가 평상시에 낯도 많이 가리고 쑥스러움도 많으니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시는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근데 이상하게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액션! 소리가 들리면 달라지는 것 같아요. 평소라면 절대 못 할 것들도 안 떨리게 자신 있게 하게 되더라고요. 카메라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성민 배우의 말을 빌리자면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워지려고 하는' 모습들이 지금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애어른'이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런 말들을 많이 듣긴 했습니다. (웃음) 그냥 가벼운 사람이고 싶지 않고, 말도 함부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아요. 매사에 신중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는 것 같아요. 늘 그렇게 되기 위해 마음을 다잡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네 많이 조심하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걱정할 정도로 많이 신중한 편이에요. 스스로한테 엄격하기도 하고요. (웃음)

여전히 촬영 현장마다 어머니가 함께한다고 들었습니다. 남다름의 공식 SNS를 어머니가 운영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아무래도 또래 친구들보다는 확실히 어머니와의 관계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아역 때부터 지금까지 촬영 현장을 함께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은 말하지 않고 서로 눈만 봐도 뭘 할지 아는 사이입니다. (웃음) 엄마가 있으면 저도 현장에서 많이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주변 분들은 볼 수 없는, 오로지 엄마 눈에서만 보이는 그런 것들이 있으니까요. 늘 감사하죠.

선한 눈매 덕분인지, 지금까지는 '선(善)'에 가까운 캐릭터들을 주로 맡아왔습니다. 악한 기운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욕심이 많을 것 같은데요.

(질문이 끝나자마자) 네 있어요! 사실 선한 얼굴을 한 악역 혹은 사이코패스가 더 무섭잖아요? 누가 봐도 나쁜 사람, 전형적인 악역이 아니라 밝게 웃고 정상적으로 행동하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그런 (웃음) 역할을 언젠가는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어느 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남다름

악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어느 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다른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굉장히 부끄러워하며) 아! 아... 다른 사람일 거예요... (웃음)

속된 말로 '싸가지 없는' 고등학생 연기를 정말 잘하던데요.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정말 도전이었어요.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넓히는 과정은 꼭 필요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죠. 그래도 현장에서 많이 부끄럽긴 했습니다. (웃음)

인터뷰를 준비하는 내내 남다름이란 이름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이름이 너무 예쁘기도 하지만, 이름처럼 살아야 할 것 같은 강박? 책임감이 느껴질 때도 많을 것 같은데요.

저희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예술을 하셨어요. 아버지는 화가시고요. 그래서 제 이름을 짓기 전에 생각하셨대요. 만약에 제가 부모님의 피를 이어받았으면 예술가 쪽으로 갈 수도 있겠다고요. 예술가는 이왕이면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이름이 좋으니까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옆에 앉은 어머니에게) 맞지?(웃음) 촬영 현장에서도 이름을 여쭤보셔서 남다름이라고 답을 하면 "본명이야?", "이름 되게 신기하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쉽게 잊히지 않고, 딱 들어도 뭔가…

남다르니까요?

하하하. 사실 어렸을 때는 제 이름이 뭔가 너무 눈에 띄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정말 마음에 들고 좋아요.

감독들이 기억하기엔 정말 좋은 이름인 것 같습니다.

아, 꼭 한 번씩 감독님들이 남'같은'이라며 장난을 치세요. (일동 웃음)

작년까지만 해도 누군가의 아역이었지만, 올해부터는 본인의 이름이 새겨진 캐릭터들로 대중 앞에 서고 있습니다. 김지훈 감독의 <싱크홀>도 개봉을 앞두고 있고요. 성인이 된 올해, 본인 스스로도 '남다른' 의지를 다졌을 것 같습니다.

사실 누군가의 아역이라고 해서, 아역이 아니라고 해서 작품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지진 않는 것 같아요. 다만 저는 제가 연기하는 인물과 그 인물이 하는 대사, 그 인물이 처한 상황에 순간적으로 몰입해서 그 모습이 카메라에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 편인데. 이런 연기적인 측면에서의 부담감과 책임감은 아무래도 아역 때보다는 더 커질 것 같습니다.


글 ·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

사진 ·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