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 감독

<D.P.>의 한준희 감독은 인터뷰의 말미에 거듭 강조했다. <D.P.>의 조감독 두 명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고. <D.P.>가 화제작으로 회자되면서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알려졌다.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을 구교환, 조현철을 비롯해 현봉식, 신승호, 원지안 등도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혹시라도 만약에 이 인터뷰를 정말 꼼꼼히 읽는다면 조용진, 전두관, 유지선, 전영석, 박민선, 배준수, 정진수, 허명행 등의 이름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한준희 감독과 함께 <D.P.>를 만들었다.


<D.P.>가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어떤 느낌인지 소감을 듣고 싶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예상이 전혀 안 됐다. 주제나 소재가 흔한 게 아니어서. 론칭 전날까지도 어떻게 보실지 전혀 감이 안 잡혔다. 그랬는데 우리가 하고자 했던 것들을 많이 받아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역시 군대의 가혹행위, 탈영 등의 소재가 민감하기 때문에 예상하기 힘들었다고 볼 수 있을까.

군생활이라는 경험이 각자 다 다르다. 그러니까 개개인의 어떤 경험이나 기억들과 다르게 느낀다면 이 작품에 진입하는 데 있어서 좀 뭔가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넷플릭스 이전 <D.P.>의 영상화 프로젝트가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 <D.P.>에 합류했나.

<뺑반>을 끝내고 (<D.P.>의 제작사인)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와 작품을 하기로 했는데 내가 먼저 <D.P.>를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차이나타운> 끝내고 원작 만화를 봤을 때부터 연출을 하고 싶었다. 5~6년 전인데 시리즈로서 에피소드 형식으로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작자인 김보통 작가와의 각본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원고를 굉장히 많이 주고받았다. 영화 시나리오는 내가 경험이 많지만 김보통 작가는 이 세계를 최초에 만든 사람이다. 그렇게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주고받고, 주고받았다. 마치 탁구 하듯이 원고를 주고받고 했다. 이런 과정들이 현장에서 배우와 일할 때도 비슷했다. 구교환, 정해인 배우와 아침마다 만나서 대본을 보고 입에 붙게끔 조금씩 고치고 주고받고 했다. 그렇게 대사들이 많이 완성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진짜 현실적인 뉘앙스의 대사들이 많았다. 대사 만들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었나.

대사는 연기랑 무조건 맞닿아 있는 부분이니까 배우들이 편하게 할 수 있게끔 대본을 쓰면서도 실제로 소리 내서 읽어보는 편이다. 또 중요했던 건 원작 속 대사의 어떤 시니컬하지만 유머러스한 그런 맛을 살리려고 노력했고 그런 것들을 대본에 잘 녹여서 배우들한테 줄 수 있게끔 노력했다.

원작에 없던 액션 부분이 많이 추가됐다. 이 부분에서 감독의 역할이 중요했을 것 같다. 어떤 식으로 준비했나.

원작 팬도 많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 있고, 또 소재에 어떤 장벽이 있는 분도 있을 수 있다. 아무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만드는 게 내 역할이니까 그러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장르적인 색깔을 가미했다. 저랑 세 번째 같이 호흡 맞추고 있는 허명행 무술 감독과 처음부터 같이 액션 연출을 준비했다. 그렇게 해서 안준호(정해인)를 복싱을 했던 인물로 설정했다.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서 정해인 배우, 3부에 등장한 탈영한 정형민 일병을 연기한 이준영 배우도 3개월 넘게 훈련을 받았다. 또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건 액션뿐만이 아니라 촬영 과정에서 조용진 조감독이나 전두관 인물 조감독(주, 조연 배우부터 단역, 보조출연자까지 관리하는 일을 한다)이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조연들, 새로운 얼굴들을 많이 발굴했다. 또 조용진 조감독은 전국 팔도를 돌면서 촬영 장소를 물색했다.

로케이션 이야기가 나와서 궁금해진다. 실제 군부대였던 야외 촬영장, 광산, 터널 등의 로케이션에 대해 부연 설명을 부탁한다.

강원도, 전라도, 경기도, 경상도, 충청도 다 간 것 같다. 말씀하신 부대 현장은 경기도 부천에 있는, 이제 부대로 쓰이지 않는 폐건물, 폐부대였다. 처음 갔을 때는 연병장에 잡초가 우거져서 어른 키만큼 자라 있었다. 배준수 미술감독님이 싹 다 갈아엎고 공사를 했다. 깨진 유리창, 계단 같은 것들을 리모델링했다. 그렇게 일종의 오픈 세트를 만들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땅굴은 충주에 있었고, 터널은 강원도고, 입구는 부산에서 촬영했다. 이런 식으로 로케이션에 많은 공들을 들였다.

‘씨네플레이’의 정해인 인터뷰에서 첫 촬영이 기억나는지 묻는 질문이 있다. 처음이라는 데 의미를 둔 것인데 혹시 기억하고 있나.

첫 촬영이 황장수(신승호) 병장이 조석봉(조현철)과 안준호를 갈구는 장면이었었다. 신승호 배우가 거의 막내인데 선배들을 주먹으로 때리고 괴롭히고 이런 장면들을 찍어야 했다. 다들 긴장을 많이 했는데 정해인 배우가 선배로서 리드도 많이 해주고 신승호 배우도 준비를 많이 해놔서 다행히 잘 찍을 수 있었다.

요즘 OTT(Over the Top) 컨텐츠를 보면 ‘오프닝 넘기기’라는 버튼이 있다. 그런데 <D.P.>는 타이틀 시퀀스가 좋아서 계속 보게 됐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오프닝 타이틀을 안 넘기고 다 볼 수 있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만들어보자고 얘기를 했다.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변승민 대표님이 알고 있기도 하고 저도 좋아하는 뮤직비디오 많이 찍으신 정진수 감독님이 오프닝 타이틀을 맡아주셨다. 한국에서 남자가 태어나서 학교를 가고 연애를 하고 입대를 한다는 구성의 짧은 몽타주 형식은 박민선 편집기사님이 제안을 해주셨다.

배우들 이야기를 좀 해보자. 주요 캐릭터를 연기한 정해인, 구교환 배우들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대본을 쓰면서 정해인 배우를 생각했다. 스타이고 멜로 장르에 강한 배우인데 <유열의 음악앨범>을 보면 약간 융통성 없어 보이는 면이 있다. 답답한 기분도 들고. 또 분명 잘생기긴 했는데 동시에 20대 또래의 어떤 남자 같은 느낌도 있다. 그런 점에서 군대에 있는 장병들을 대변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정해인 배우에게 대본을 처음으로 줬다. 첫 미팅 때 정해인 배우가 굉장히 조심스럽게 “제가 되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해서 좋았다. 구교환 배우는 7~8년 전부터 독립영화 작업할 때부터 알고 지낸 형이자 친구다. 부산영화제나 서울독립영화제 같은 데서 만나면 “어디 가요?” “편집하러 가요” 하면서 안부도 묻고 커피도 마시고 그랬던 사이다. <남매의 집>, 윤성현 감독의 단편 <아이들> 때부터 그의 팬이기도 했다. 처음 대본을 보여주고 같이 하자고 했을 때 흔쾌히 수락해줬다.

두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지만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둘이 나오는 장면들을 다 좋아했던 것 같다. <러시아워>, <리썰 웨폰> 같은 버디물을 찍는 것 같은 재미가 분명히 있었다. 나는 그냥 관객처럼 모니터를 봤던 것 같다.

문득 호열(구교환)의 집에서 둘이 라면을 먹는 장면이 떠오른다.

둘을 앞에 놓고 찍으면 자연스럽게 소통이 됐다. 120분짜리 영화만 주로 하다가 300분짜리 시리즈는 처음 해보니까 초반에 어려움이 있었다. 가급적 극의 시간순으로 촬영을 하려고 했는데 2부, 3부, 4부, 5부를 쭉 찍어나가면서 점점 더 편해지고 연기하는 호흡도 신뢰를 갖게 됐다.

조연들도 화제다. 헌병대장 연기한 현봉식 배우의 나이가 이슈가 되더라.

나이를 알고 캐스팅했다.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게 이슈가 될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을 못 해봤다.

조현철 배우의 연기가 엄청났다. <차이나타운>에서 함께 작업한 인연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조현철 배우도 오래 알고 지낸 동료라고 할 수 있다. <척추측만>이라는 엄청난 단편영화의 연출자이자 주연인데 그 영화 본 다음에 <차이나타운>에 같이 했다. 이번에 조석봉 역할을 쓴 다음에 전화를 했다. 출연을 부탁했는데 처음에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이러면서 고민을 하더라. 설득을 했다. 네가 안 하면 대본을 다 바꿔야 한다고. 그렇게 열심히 설득을 해서 같이 하게 됐는데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감탄한 순간이 많았다. 어떤 지점에서는 본인도 힘든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잘 버티고 마지막까지 정말 좋은 장면을 만들어줬다.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다.

자동차 뒷좌석 손잡이에 수갑을 찬 채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왠지 생각난다. 어떤 에너지 같은 게 느껴졌다.

정말 엄청난 배우다. 진짜. <D.P.>에서 보여준 건 빙산의 일각이다. 나중에 5, 6부 찍을 때는 디렉션을 할 때 별 얘기를 안 했다. “어떻게 할 거야?” 물어봤을 때 고개를 두 번 세 번 끄덕이면 “알겠어”하는 수준의 신도 있었다. 그 정도의 믿음이 현장에서 생겼다.

(드라마 현장과 영화 현장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제작 환경 얘기가 나와서 물어본다. 넷플릭스가 편집권을 전혀 통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D.P.>도 마찬가지였나.

우리 뜻대로 마지막까지 작업했다. 오히려 어떤 지점들은 의논하고 지지해준 적도 있다. 제작진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묘사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문제의 소지가 생길 수도 있을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는데 그럴 때 같이 논의하고 고민해주고 응원해줬다.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 컨텐츠가 해외 직배송 되는 것처럼 소개된다. 해외 시장을 위해 사전에 준비한 것이 있었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소비될 것인가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영화에는 예를 들어 봉준호 감독님, 임상수 감독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한국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정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정서를 해외에서 굉장히 좋아해 주고 지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지점들을 이야기하고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봉준호, 임상수 감독님 이름이 등장하니까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 감독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너무너무 많다. 우리 연배의 연출자들은 한국영화를 보고 자란 것 같다.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을 20대 초반에 봤고, 선배님들이라고 할 수 있는 봉준호 감독님, 박찬욱 감독님, 김지운 감독님, 최동훈 감독님, 류승완 감독님 좋아하고 존경한다. 이창동 감독님 영화도 너무너무 좋아한다. 그냥 어떤 한 편을 꼽기에는 좋아하는 작품이 너무 많은 것 같다. 20대 초반 그때의 영화들이 자양분이 됐다.

<D.P.>를 보면서 아주 사소하지만 궁금했던 것을 질문해본다. 조석봉이 도망가다가 극장에 들어갔는데 <국제시장>이 상영 중이다. 왜 <국제시장>이었나.

큰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2014년이 배경인데 그해 가장 흥행했던 작품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윤제균 감독님에게 전화 드려서 부탁을 드렸다.

너무 몰입하다 봐서 그랬는지 배경이 2014년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더 사소한 질문 하나 더. 준호와 호열이 부산에서 광안대교를 지나는 관광 버스를 타고 삼진 어묵을 먹는다. PPL(Product Placement)인가. (웃음)

그건 개인 취향이 반영된 음식이다. (웃음) 6부작의 흐름이 중요했다. 후반부에 무거운 이야기가 나올 거라서 3부 정도에서 환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휴가 나온 군인들처럼 바캉스 가는 분위기로 에피소드를 구성해보자라고 생각했다. 삼진어묵, 해운대 암소 갈비는 제가 좋아하는 음식, 식당이다.

묵직한 주제의 작품에 너무 사소한 질문이었다. <D.P.>가 지닌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군대가 바뀌지 않을 거라는 조석봉의 수통 관련 대사가 인상적이다. 감독으로서 이 대사가 어떤 의미였는지 알고 싶다.

<D.P.>의 이야기가 (군대는 변하지 않는다는 식의) 부정적이거나 혹은 네거티브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각 인물들이 마지막으로 던지는 방향들이 있다. 호열은 “바뀔 수도 있잖아”라고 말을 하는 거고, 준호는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왜 그렇게 해”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 박범구(김성균)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기도 하고. 우리는 영화, 드라마를 만드는 필름 메이커들이고 우리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는 게 전부인 것 같다. 감히 답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떤 바람들이 있다면, 바뀔 수 있잖아, 바뀌고 있잖아, 바뀌고 있어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준호가 마지막에 걸어가는 모습처럼 개인, 개인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얘기들을 조금은 던지고 싶었던 건 있다.

<D.P.>의 다음 시즌이 나올 수 있을까. 팬의 입장에서 꼭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민하고 있는 어떤 방향이나 플롯은 분명히 있는데 정말 아직은 결정된 바가 없다. 넷플릭스에서 얘기가 있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원작에서 안준호가 상병인데 이등병으로 바꾼 게 시즌제를 노리고 만든 건 아닌 건가.

양가적인 면이 있다. 시즌제로 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물론 있었다. 동시에 한 시즌이 완전히 귀결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이병으로 바꾼 가장 큰 이유는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시청자들이 그와 같이 입대하는 기분으로서 이 작품을 시작하기를 바랐다.

마지막으로 현재 진행 중인 차기작이 있는지 궁금하다.

<D.P.>의 다음 시즌이 차기작이 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고민하고 있는 다른 작품들도 있다. 지금은 일단 <D.P.>와의 거리를 두는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다.

진짜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달라.

다른 것보다는 스태프들, 조감독들 얘기가 인터뷰에 꼭 언급되면 좋겠다. 너무 고마운 사람들인데 얘기를 많이 못했다. <D.P.> 속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하신 분들이다. 그리고 유지선 촬영감독님, 전영석 조명감독님이 거의 모든 숏을 훌륭하게 만들어주셨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

사진 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