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는 배우들의 균형 잡힌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유의 진중함과 치기 어림으로 극의 중심을 잡은 정해인과 그 속을 파고들어 쉴 틈을 만들어내는 구교환의 연기합은 <D.P.>의 가장 큰 흥행 요인 중 하나.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들끓는 감정 속으로 빠뜨리는 배우 조현철의 광기 어린 에너지는 시청자를 압도하며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안겼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조석봉(조현철)이란 캐릭터가 짙게 기억되는 이유일 것이다. <D.P.>를 통해 조현철을 알게 된 이들도 있겠지만, 그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여러 작품을 통해 괴물 같은 연기 실력을 뽐내온 잔뼈 굵은 배우다. 출연작마다 얼굴을 갈아 끼우며 늘 색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배우이기도. <D.P.>의 조석봉을 만나기 전까지,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을 굵직하게 돌아본다.


척추측만(2010) - 감독 데뷔작

배우 조현철의 시작은 연기가 아니라 연출이었다. 서강대학교 인문학부에 입학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인생의 방향키를 튼 조현철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 합격하며 창작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0년 그의 연출 데뷔작이자 단편영화 <척추측만>을 통해 비범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감독으로 먼저 주목을 받게 된다. <차이나타운>과 <D.P.>를 함께 한 한준희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척추측만>은 "엄청난" 단편영화로 불릴 만큼 소재와 연출, 연기, 모든 면에 있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이다. 한준희 감독은 <척추측만> 속 조현철의 연기를 보고 <차이나타운> 홍주 역에 그를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건축학개론(2012) - 동구 役

조현철의 상업영화 데뷔작은 <건축학개론>. <D.P.>의 조석봉이 화제를 모은 요즘, <건축학개론>에 출연한 그의 모습이 다시금 조명돼 화제를 모았다. <건축학개론>에서 조현철은 이제훈의 대학 친구인 동구를 연기했다. 큰 비중은 아니었지만, 승민(이제훈)의 대학생활 곳곳에 머무르며 실없는 말들을 툭툭 내뱉어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건축학개론>을 본 이들이라면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캐릭터기에 그의 과거작을 소개할 때면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서울연애(2014) - 공동연출 및 주인공 병구 役

<건축학개론> 이후에도 조현철은 꾸준히 독립영화계에서 활약했다. <차이나타운>을 만나기 전까지 10편이 넘는 작품에 감독 또는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리며 제 재능을 뽐냈는데. 그중에서도 조현철의 매력이 응집된 단 하나의 작품을 뽑으라면 영화 <서울연애>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 옴니버스 영화 <서울연애>에서 조현철은 <상냥한 쪽으로>와 <뎀프시롤: 참회록>에 출연한다. 특히 영화 <판소리 복서>의 원작 단편인 <뎀프시롤: 참회록>에선 공동 각본과 연출, 주인공까지 도맡았다. 더욱이 <뎀프시롤: 참회록>에선 <D.P.>를 함께한 구교환의 '투샷'을 함께 만나볼 수 있기에, <서울연애>는 지금 보면 더욱 볼거리가 많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차이나타운(2015) - 홍주役

<차이나타운>은 배우 조현철에게 터닝 포인트가 되는 작품이다. <차이나타운>에 이르러 조현철은 대중들에게 제 얼굴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조현철이 연기한 홍주는 <차이나타운> 속 불안정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인물이다. 해맑은 얼굴을 하고 엄마(김혜수) 뒤를 뒤따르면서도, 중요한 순간엔 타깃의 급소를 정확하게 찔러내며 시시때때 변하는 얼굴을 드러낸다. 박보검과 이수경을 비롯한 여러 신예 스타들이 포진해 있는 와중에도 조현철은 독특한 연기법을 펼쳐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관객들은 자연스레 그의 다음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터널(2016) - 막내 대원役

그리고 그다음 작품으로 조현철은 <터널>을 선택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차이나타운>의 홍주와 <터널>의 막내 대원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차이나타운>에서 보여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어리바리한 막내 구조 대원의 몸짓을 하며 <터널>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면,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조현철을 래퍼 '매드클라운'으로 착각해, '매드클라운이 연기에 도전한 것이냐'는 반응들을 보였다. 그리고 이후 조현철이 매드클라운의 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왼쪽부터) 매드클라운, 조현철


마스터(2016) - 안경남 役

<차이나타운>과 <터널>을 통해 성공적으로 상업 영화계에 안착한 조현철은 <마스터>에서도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캐릭터명이 '안경남'일만큼 큰 비중도, 전사도 없는 안경남을 연기했는데. 작은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터>를 본 이들이라면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대사를 남겼다. "꿀 진짜 맛있어 제발 가져가". 별다른 것 없는 이 대사를 <마스터> 최고의 명대사(!)로 남긴 조현철은 특유의 '너드스러움'을 무기 삼아 박장군(김우빈)과 코믹한 티키타카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조현철은 2년 전 한 인터뷰에서 본인의 매력을 묻는 말에 "연기를 이상하게 하는 거?"라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말마따나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기에 가능했던 개성 있는 연기는, 조현철만의 독보적인 정체성으로 굳어지며 그를 더 큰물로 이끌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2016) - 최양주 役

2017년 <아르곤>을 통해 처음으로 매체 연기를 선보인 조현철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속 최양주라는 캐릭터를 만나며 본격적인 노 젓기를 시작한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게임 세계관을 쌓는 실질적 브레인 최양주는, 주인공 진우(현빈)가 중요한 순간에 놓여있을 때면 늘 나타나 도움과 웃음을 함께 안긴 감초 캐릭터. 엉뚱함과 까칠함, 순박함을 한데 버무린 캐릭터의 매력을 '조현철스럽게' 소화해냈다는 평을 받으며 브라운관에서도 그의 이상한(!) 힘이 통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호텔 델루나(2019) - 산체스 役

이 사진만 봐도 웃음이 난다면, <호텔 델루나>의 산체스의 매력에 푹 빠졌던 이들이겠다. 전 세계에 체인을 거느린 피자 왕국의 프린스 산체스는, 해맑은 영혼을 무기로 극 중간중간을 웃음으로 전염시킨 <호텔 델루나> 최고의 조연. 룸메이트 구찬성(여진구) 옆을 맴돌며 귀여움을 뽐내다가도, 어느새 슬픈 눈을 하고 애절한 멜로 연기를 펼치는 산체스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었을까. 조현철이 지닌 맑은 눈동자가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 중 하나로, <호텔 델루나> 이후 조현철은 대중들에게 산체스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 최동수 대리 役

<D.P.>의 조석봉이 나타나기 얼마 전, 조현철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통해서도 남다른 인상을 남겼다. 트레이드마크인 안경을 벗어 몰라 본 이들이 많은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조현철은 사사건건 자영(고아성)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최동수 대리를 통해 미워할 수 없는 천진난만함을 보였다. 조현철이 아니었다면 이 캐릭터의 매력이 잘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배우 본인이 지닌 특색을 십분 발휘해 최동수 대리를 연기했다.


<D.P.>의 조석봉을 본 시청자들은 조현철에게 '코리아 조커'라는 비범한 수식어를 붙였다. 광기 어린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을 두고 팬들은 종종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조커를 데려와 상찬 아닌 상찬을 전하곤 하는데. <반도>의 구교환에 이어 이번엔 조현철이 그 수식어를 달게 됐다. <차이나타운>과 <D.P.>를 통해 조현철을 재발견한 장본인, 한준희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조현철은 "정말 엄청난 배우"이며 "<D.P.>에서 보여준 건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