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드 니로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 21세기가 되면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파트너가 바뀌었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디카프리오와 스콜세지는 5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 최근 왓챠에 <셔터 아일랜드>가 업데이트 되면서 디카프리오와 스콜세지가 지금까지 만든 모든 작품을 볼 수 있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나 감독의 작품을 몰아보는 즐거움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경험해봤을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기회다. 디카프리오와 스콜세지의 조합을 다시 돌아보자. 참고로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작품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이 개봉 예정이다. 이 영화에는 로버트 드 니로도 출연했다.
<갱스 오브 뉴욕>(2002)
15분. <갱스 오브 뉴욕>의 첫 전투 시퀀스가 끝나고 카메라가 점점 하늘로 올라가면서 맨해튼 섬을 비추고 ‘1846년, 뉴욕’이라는 자막을 보여주는 데 약 15분이 걸린다. 여기까지 봤다면? 남은 러닝타임은 그냥 사라진다. 스콜세지 감독은 이 15분 동안 관객을 완전히 영화 속으로 빨아들인다.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 <갱스 오브 뉴욕>의 첫 장면. 신부 발론(리암 니슨)은 아들 암스테르담 발론에게 피가 묻은 면도칼을 건넨다. 암스테르담이 바지에 면도날을 닦으려고 하자, “피를 닦지 말라”고 하면서 “칼에는 항상 피가 묻어 있어야 한다. 너도 언젠가 알게 될 거”라고 말한다. 아들의 손을 잡은 발론은 어두운 지하에서부터 걸어나오고 함께 싸울 전사들이 모여든다. 건물의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면 진군가 같은 음악 ‘가스펠 트레인’(Gospel Train)이 사라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눈에 덮인 하얀 광장이 보인다. <갱스 오브 뉴욕>의 주 무대인 파이브 포인츠(Five Points)다. 발론이 이끄는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의 데드래빗(Dead Rabbits) 파가 자리를 잡으면 빌 더 부처(Bill the Butcher,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이끄는 토착파가 등장한다. 잔인한 전투 끝에 부처가 아들이 보는 앞에서 발론을 죽인다. 이렇게 <갱스 오브 뉴욕>이 그리는 폭력의 역사, 복수극의 막이 오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복수극의 주인공인 암스테르담 발론을 연기했다.
<에비에이터>(2004)
스콜세지 감독은 왜 하워드 휴스에게 끌렸을까. 휴스는 어떤 인물이었나. 18살에 어마어마한 재산을 상속받은 억만장자 휴스는 제목(The Aviator, 비행사)에서 알 수 있듯이 비행기에 집착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비행기를 직접 설계하고 조종간까지 잡았다. 또 한 가지. 휴스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오스카 여우주연상만 4번 수상한 위대한 배우 캐서린 헵번을 비롯해 할리우드의 여러 스타들과 교제했다. 스콜세지 감독은 분명 영화제작자 휴스에게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는 쿠엔틴 타란티노, 봉준호 감독만큼이나 유명한 영화 마니아다. <에비에이터>의 한 장면을 소개한다. 휴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헵번(케이트 블란쳇)과 함께 화려한 파티가 열리고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그 자리에 합석한 여성편력으로 유명한 배우 에롤 플린(주드 로) 때문에 기분이 상한 휴스는 헵번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할리우드 얘기는 지겹다”면서 “그나저나 어디로 가냐”고 묻는 헵번에게 휴스는 “모험하고 싶어요?”라고 되묻는다. 다음 장면에서 베니 굿맨의 노래 <문글로우>(moonglow)가 흐르고, 할리우드 상공을 비행하는 휴스와 헵번이 등장한다. 휴스는 헵번에게 “저기가 미스터 메이어의 집”이라고 알려준다. 루이스 B. 메이어는 MGM의 창립자로 당시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력한 인물이다.
<디파티드>(2006)
디카프리오 이전 스콜세지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자. <비열한 거리>(1973), <좋은 친구들>(1990), <카지노>(1995) 등의 갱스터 영화를 발견할 수 있다. 디카프리오의 시대에 와서도 그는 계속 갱스터 영화를 만들었다. <갱스 오브 뉴욕>에 이어 등장한 갱스터 소재의 작품이 <디파티드>다. 물론 그 뒤로도 스콜세지는 계속해서 갱스터, 범죄 조직을 자신의 작품에 끌어들였다. HBO의 TV 시리즈 <보드워크 엠파이어>의 제작자이면서 시즌 1 파일럿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가장 최근 작품인 <아이리시맨> 역시 갱스터 장르에 속한다. 한마디로 스콜세지는 갱스터 장르의 대가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디파티드>의 마지막 10여 분을 보면 앞의 말에 더욱 격하게 공감할 수 있다. 보스턴의 최대 범죄조직을 이끄는 프랭크 코스텔로(잭 니콜슨)의 첩자(Rat)인 경찰 설리반(맷 데이먼)과 조직에 위장 잠입한 경찰 코스티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빌딩 옥상에서 서로 만나면서 영화의 결말부 10분이 시작된다. 숨을 죽이고 감탄을 하면서 보게 되는 <디파티드>의 엔딩은 냉혹하고 처절하다. 거기에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무간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남자들이 존재한다. <디파티드>의 원작인 <무간도>(혹은 <신세계>)를 본 사람이라면 <무간도>와의 차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지점이 <디파티드>를 스콜세지의 영화로 만들어준다.
<셔터 아일랜드>(2010)
스콜세지 감독이 영화광이라는 관점에서 <에비에이터>를 소개했다.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살인자들의 섬>을 원작으로 삼은 <셔터 아일랜드>는 스콜세지 감독이 자신의 영화 마니아적 취향이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가 참고했다고 알려진 작품은 발 루튼이 제작한 자크 투르뇌르 감독의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1943), 마크 로브슨 감독의 <죽음의 섬>(1945)을 비롯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혐오>(1965) 등이 있다. 이런 옛날 작품을 모르고 <셔터 아일랜드>를 보면 재미가 없냐고? 그럴리가. <셔터 아일랜드>는 영화광이자 동시에 거장인 스콜세지가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 오마주를 마치며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이지만 그것들을 몰라도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다만 한 가지. 이 영화는 순수한 수사물 장르의 영화가 아니다. 시놉시스만 보면 분명 수사극이다. 탈출이 불가능한 정신병원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여성을 찾기 위해 섬에 파견된 연방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수사극처럼 시작하지만 끝으로 가면 영화의 장르가 달라진다. 그러니 조금은 다른 관점 포인트를 통해 영화를 보는 것이 감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제외하고도 뛰어난 미장센, 주인공 테디의 어지러운 내면을 표현한 디카프리오의 열연 등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스콜세지는 “레오가 <셔터 아일랜드>를 통해 놀랄 만한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떠올리면 마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디카프리오의 연기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어린 소녀 배우에게 “평생 본 것 중에 최고의 연기였어요”라는 칭찬을 듣자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과 비슷한 수준으로 기억에 남는 연기였다. ‘버라이어티’가 2020년 11월에 내보낸 기사 ‘오스카상을 수상할 만한 디카프리오의 연기 10’(Leonardo DiCaprio’s 10 Best Oscar-Worthy Performances)에서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3위에 선정했다. 그해 오스카 남우주연상 트로피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맥커너히가 가져갔다. 참고로 2위는 <디파티드>, 1위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였다. 2019년 8월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개봉 당시 ‘인디와이어’는 ‘디카프리오의 연기 베스트 10’(Leonardo DiCaprio’s Top 10 Performances Ranked) 기사를 내보내면서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디카프리오와 스콜세지가 합작한 21세기 최고의 영화”라고 썼다. ‘버라이어티’와 ‘인디와이어’의 평가처럼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디카프리오 연기는 탁월했다. 술, 마약, 여자, 무엇보다 돈에 중독된 억만장자 된 조던 벨포트라는 실존 인물과 디카프리오가 동일인물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벨포트를 앞서 소개한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에비에이터>의 하워드 휴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와 같은 해 개봉한 <위대한 개츠비>의 억만장자 개츠비와 비교하며 보는 것도 재밌을 듯하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