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스웨덴 출신의 밴드 아바(ABBA)가 새 앨범 <Voyage>를 발표한다. 무려 40년 만에 우리 곁에 찾아올 아바의 9번째 앨범을 기념하며 아바의 음악이 사용된 영화들을 소개한다.


"Does Your Mother Know"

<쟈니 잉글리쉬>

Johnny English, 2003

<쟈니 잉글리쉬>는 '미스터 빈'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코미디언 로완 왓킨슨을 주연으로 내세워 <007>를 비롯한 스파이 영화들을 패러디한 코미디 시리즈다. 언제 어디서든 사고를 쳐대는 미스터 빈처럼 <쟈니 잉글리쉬>의 쟈니 역시 손대는 일마다 나쁜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고 그걸 수습하느라 고군분투하는 게 웃음 포인트. 쟈니는 영화의 빌런 파스칼 소바쥬(존 말코비치)의 대관식 현장에 급습해 증거랍시고 옆에 있는 대주교의 엉덩이를 까서 그게 중계되게 하고, 당황한 나머지 또 다른 증거인 DVD를 틀라고 하는데, 성당에선 대뜸 아바의 'Does You Mother Know' 전주가 흘러나온다. DVD엔 증거는커녕 쟈니가 속옷 차림으로 를 오두방정 떨며 따라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엄마가 알까 두렵도록' 민망한 꼬락서니를 대관식에 모인 관객뿐만 아니라 전세계 교인들도 생중계로 본다. 70년대 말 디스코 열풍의 영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Does You Mother Know'는 1979년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인, 아바의 여섯 번째 음반 <Voulez-Vous>에 수록됐다.


"Take a Chance on Me"

<겟 스마트>

Get Smart, 2008

이번에도 코미디 스파이 영화. 스티브 카렐과 앤 해서웨이 주연의 <겟 스마트>는 주인공 맥스웰 스마트(스티브 카렐)가 아침에 분주히 출근을 준비하는 신으로 문을 연다. 두 손 가득 서류를 들고 집을 나선 그는 (아직 아이폰이 세상에 나오지 않은 시절의) 아이팟으로 'Take a Chance'를 튼다. 두 여성 멤버 앙네타 펠트스코그와 애니 프리드 린스태드의 청아한 보컬이 청자를 단숨에 잡아끄는 인트로가 아침을 시작하는 주인공의 출근길을 꾸며주기에 적격이다. 1977년 말 발표된 'Take a Chance'는 제5의 멤버와도 같았던 매니저 스티그 앤더슨이 노랫말을 쓰지 않게 된 이후 처음 발표하는 작업들 중 하나다. 아이팟으로 노래를 플레이하는 걸 구태여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액정에 찍힌 정보는 영 마뜩잖다. 노래의 출처도 굳이 정규 앨범 <ABBA: The Album>이 아닌 베스트 앨범으로 표기돼 있을 뿐만 아니라, 4분을 갓 넘기는 노래 러닝타임도 5분 1초라 떠 있다. 'Take a Chance'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영국 2인조 신스팝 밴드 이레이저(Erasure)가 리메이크 한 버전도 꼭 들어봐야 한다.


"The Winner Takes It All"

<맘마 미아!>

Mamma Mia!, 2008

뮤지컬 영화 <맘마 미아!>는 아바의 명곡들로 이뤄진 래퍼토리와 영국을 대표하는 명배우들의 앙상블로 큰 성공을 거뒀다. 비단 아바의 음악이 사용됐을 뿐만 아니라, 원작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아바의 음악 브레인 베니 앤더슨이 직접 음악감독을 맡아 '아바 음악' 영화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갖췄다. 영화 속에 아바 음악들이 그야말로 쏟아지듯 튀어나오는데,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단연 도나(메릴 스트립)이 바다 옆에서 'The Winner Takes it All'을 열창하는 신이 아닐까. 도나가 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의 결혼식에 가는 길 옛 연인이었던 샘(피어스 브로스넌)이 막아서자, 도나는 "I don't wanna talk~"하며 노래를 시작한다. 나긋나긋 업템포의 멜로디들이 주를 이룬 아바의 명곡 가운데서 'The Winner Takes it All'은 가슴 절절한 발라드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곡이다. 노래를 만든 뷔요른 울베우스는 이 노래가 펠테스코그와의 이혼에 대한 이야기라는 세간의 지적을 부정했지만, 그들의 이별이 분명 영감을 준 것은 맞다고 인정한 바 있다. 메릴 스트립은 이 곡을 녹음하기 위해 베니 앤더슨이 있는 스웨덴 스톡홀름까지 가서 단 한번에 녹음을 마쳤다.


"One Night In Bangkok"

<행오버 2>

The Hangover Part II, 2011

'One Night in Bangkok'은 엄연히 아바의 노래는 아니다. 아바의 모든 노래를 작곡한 두 멤버 베니 앤더슨과 뷔요른 울베우스가 음악을 담당한 뮤지컬 <체스>를 위해 만든 주제가를 영국 가수 머레이 헤드가 부른 뉴웨이브 트랙이다. 헤드가 건들건들 내뱉는 랩 파트가 힙합이 서서히 세를 넓히고 있던 1984년에 발표된 노래라는 걸 증명한다. 머레이 헤드는 <체스>의 작사가 팀 라이스가 1970년에 만든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주제가 'Superstar'를 부른 바 있다. 정신 나간 코미디 <행오버 2>에선 모든 소동이 마무리되고 방콕의 호텔에서 열린 파티에 (전작에도 출연한 바 있는) 마이크 타이슨이 대뜸 튀어나와 'One Night in Bangkok'을 불러제낀다. 복서임을 감안해도 너무 미숙한 노래 실력이지만, 맥락이나 당위 같은 걸 기대할 수 없는 <행오버> 시리즈에 펼쳐지는 풍경이라 여기면 꽤나 그럴듯하게 보인다.


"Waterloo"

<마션>

The Martian, 2015

<마션>의 주인공 와트니(맷 데이먼)은 무려 520일 동안 화성에 고립되어 살아간다. 살고자 하는 끈질긴 의지와 뛰어난 지능으로 어렵사리 생존하고 있는 가운데, 그에게 삶의 의지를 북돋아 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이다. 정확히는 동료 멜리사(제시카 차스테인)가 우주에서 들으려고 USB에 챙겨왔던 노래들. 도나 써머의 'Hot Stuff'와 데이비드 보위의 'Starman'에 이어 와트니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아바의 'Waterloo'가 흐른다. 'Starman'이 나올 때보다 'Waterloo'가 나오는 시점이 지구의 사람들이 그를 응원하는 교차편집도 눈에 띄게 줄어서, 와트니는 더욱 쇠약해 보인다. 허나 이 시퀀스는 그저 '희망없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와트니는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한결같이 밝고 쾌활한 'Waterloo'가 흐르고 있어 마치 와트니가 없는 힘까지 끌어내 탈출을 도모할 수 있는 것만 같다. 그런 힘을 주는 음악이기에 아바가 그토록 위대한 밴드일지도.


"SOS"

<하이 라이즈>

High-Rise, 2015

1975년 최첨단 고층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잔혹한 우화 <하이 라이즈>엔 'SOS'가 사용됐다. 아바의 원곡이 아닌, 영국의 트립합 그룹 포티쉐드가 리메이크 한 버전이다. 아파트와 그 바깥세상이 완전히 지옥이 된 시점에 그곳 사람들의 처참한 모습을 하나하나씩 훑는 시퀀스에 쓰였다. 아바와 포티쉐드라니 당최 접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조합인데, 그 결과물 역시 원곡의 분위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처연하디 처연한 베스 기븐스의 보컬 멜로디를 찬찬히 곱씹어야 겨우 원곡의 흔적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 11년 만에 발표한 세 번째 앨범 <Third>(2008) 이후에도 이렇다 할 새 음악을 내놓지 않고 있던 포티쉐드의 신작이라 영화만큼이나 음악에 대한 기대치도 상당히 높았다.


"Dancing Queen"

<두 교황>

The Two Popes, 2019

조너선 프라이스와 안소니 홉킨스, 영국의 두 대배우가 만난 <두 교황>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안소니 홉킨스)과 교회에 대한 계속되는 실망에 연거푸 사직서를 제출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조너선 프라이스)가 바티칸에서 며칠간 대화를 나눈 실화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베네딕토 16세가 자진 사퇴를 선언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날, 세면대 앞에서 만난 두 사람. 추기경이 휘파람으로 흥얼거리는 곡이 교황이 묻자, 추기경은 "'댄싱 퀸'입니다. 아바 노래요"라 대답한다. 하지만 교황은 아바를 모르는 눈치다. 콘클라베가 시작되고 시스티나 성당의 음악은 입당송에서 자연스럽게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Dancing Queen'이 이어진다. 가장 먼저 음악으로 베르고골리오 추기경이 교황에 선출되리라고 선언하는 듯한 음악 배치. 오케스트라 특유의 웅장한 'Dancing Queen'이 흐르는 가운데, 성당에선 차근차근 투표가 진행되고 바깥 세상에선 그걸 열심히 중계하고 있다. 그렇게 바티칸의 새로운 세대가 열리고, <두 교황>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