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영화는 친한 친구다. 아니다. 어쩌면 기술은 영화를 낳은 어머니일지도 모르겠다. 회화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영화로 이어지는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실을 얼마나 똑같이 묘사할 수 있는가를 위한 여정이었다. 영화에 이르러 현실 모방의 욕구는 점점 더 커지고 정교해졌다.그만큼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졌다는 얘기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는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3D 영화가 구현한 입체 영상을 언제든 체험할 수 있는 일상으로 만들었다. 여기, 현실 모방의 새로운 단계를 논할 만한 영화가 있다. 존 파브르 감독이 연출한 <정글북>이다.
<정글북>은 1894년 출간된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소설 <정글북>을 원작으로 디즈니가 1967년에 개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볼프강 라이트먼 감독)으로 제작한 작품의 실사화 프로젝트(디즈니 라이브 액션)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이다. 디즈니는 꾸준히 라이브 액션 영화를 만들고, 만들 예정이다. 2015년 개봉한 <신데렐라> 같은 영화가 이미 개봉했다. <정글북>처럼 크게 성공하지만 못했다. 2017년 개봉을 앞둔 엠마 왓슨 주연의 <미녀와 야수>는 디즈니의 또다른 야심작이 될 것이다.
고전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를 위해 <정글북>의 제작진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당연하게도 CG다. 인도의 정글을 배경으로 동물들이 출연해야 하는 이 영화는 CG가 없다면 실사화를 염두에 두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디즈니는 해냈다. 이 영화는 CG가 구현할 수 있는 극단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 앞서 있는 기술이고 가장 진화한 기술이다. <정글북>을 만들어낸 CG 기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자. CG가 있기에 가능했던 <정글북>에 없는 다섯 가지다.
1. 정글이 없다
<정글북>에 정글이 없다는 건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미국 LA에 마련된 세트에서 100% 촬영됐다. <정글북>의 촬영장에는 진흙이나 모래, 나뭇잎 같은 최소한의 소품이 거대한 블루스크린 앞에 놓여 있었을 뿐이다. 나머지 배경이 되는 정글은 알다시피 모두 다 CG로 만들어냈다. <정글북>의 제작진에게 주어진 소스는 원작의 배경인 인도 정글에서 촬영한 10만 장의 사진이였다. 그 방대한 사진을 토대로 그들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정글의 모습을 구현했다. 이 힘겨운 작업을 해낸 이들을 소개하기 위해서 <정글북>의 홍보자료에는 “<아바타> <라이프 오브 파이> <그래비티>에 참여했다”는 수식어를 사용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다른 영화는 필요없다. “<정글북>에 참여한 제작진”이면 충분하다.
2. 동물이 없다
<정글북>에 동물이 없는 건 당연하다. 왜냐면 애초에 정글도 없었으니까. CG가 만들어낸 동물은 익히 보아왔다. 리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에 등장하는 호랑이 '리처드 파커', <혹성탈출> 시리즈에서 앤디 서키스의 모션 캡쳐로 만든 유인원 '시저', <대호>의 지리산 호랑이를 떠올려 보시라. 이미 할리우드 뿐만 아니라 국내 제작사도 거의 완벽에 가까운 CG 동물 배우를 섭외할 수 있다. <정글북>에 오면 조금 얘기가 달라진다. 약간의 반전이 있다. <씨네21>의 <정글북> 시각효과 슈퍼바이저 로버트 리가토 인터뷰를 보자.
<정글북>에서 성취한 가장 큰 발전은 진짜 그대로를 모방하도록 예술적인 선택과 절제를 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실제로 더 세밀한 표현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실사영화의 카메라처럼 사용했다. 진짜 촬영 카메라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이상의 그 어떤 것도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이 <정글북>이 선보인 리얼리티의 기본이다.
그렇다. CG 기술의 발전은 카메라 기술의 발전에 앞서 있었다. <정글북>의 제작진은 말하자면 4K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된 영화를 볼 때 실제라고 느끼는 정도까지만 CG 기술을 사용했다. 그래야 더 실제 같으니까.
3. 배우가 없다
사실 배우는 있다. 2000대 1위 경쟁률을 뚫고 모글리 역을 따낸 닐 세티다. 뉴욕의 인도계 미국 가정에서 태어난 세티는 댄스 수업 선생님의 권유로 <정글북> 오디션에 참여했다고 한다. <정글북>에 없는 배우는 모글리의 상대 배우다.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는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어린 세티의 상상력을 위해 제작진은 CG 작업을 위해 그전까지 주로 사용한 테니스공 대신 인형을 준비했다. 보통 인형은 아니다. TV 프로그램 <머펫 쇼>로 유명한 인형극가 짐 헨슨의 크리쳐 샵에서 퍼핏 마스터(인형 조종사)들을 데려와 닐 세티의 감정 연기를 돕게 했다. 때로는 존 파브로 감독이 직접 동물 캐릭터를 연기하며 촬영을 진행했다. 인형이나 감독이 상대 배우 아니냐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모글리의 상대 배우는 늑대, 호랑이, 표범 등이다. 물론 CG로 만들어졌다. 그들의 목소리를 연기한 빌 머레이, 스칼렛 요한슨, 벤 킹슬리, 이드리스 엘바, 루피나 뇽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4. 2D가 없다
인정한다. <정글북>에 "2D가 없다"는 건 심한 과장이다.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정글북>은 3D로 봐야 한다. 얼굴로 물이 튀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면 4D도 추천한다. CG로 만들어진 <정글북>은 3D의 이질감을 찾기 힘들다. 3D 안경의 불편함도 잊을 수 있다. <정글북>은 화려한 카메라 워크를 구사한다. 이것은 모두 3D를 위한 정교하게 계획된 것이다. 상하좌우는 기본이고 깊이와 높이를 활용한 낙차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3D가 구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움직임을 시도했다. <정글북>의 CG는 3D로 볼 때 완벽해진다.
5. 퇴근이 없다
퇴근이 없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지금까지 혀가 닳토록 찬양한 <정글북>의 CG는 누가 만들었을까. 컴퓨터가 만들었겠지만 그 컴퓨터는 누가 조종하는가? 당연히 사람이다. 이동진 평론가와 <대호>의 CG를 담당한 조용석 VFX 슈퍼바이저의 <정글북> GV에서 나온 말이 인상적이다.
특수효과 및 시각효과 측면에서 가장 놀라웠던 장면을 묻는 질문에 조용석 VFX 슈퍼바이저는 동물들이 평화의 바위 주변으로 모여들었던 장면을 꼽으며, “많은 숫자들의 동물들이 한꺼번에 나올 때 저는 그것이 숫자로 보였다. 저 한 마리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었을까? 데이터로 보였고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실제 미국의 그래픽 아티스트들이 정시 퇴근을 했는지 어땠는지 사실 잘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그들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실제 같은 영화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정글북>을 보러 가게 된다면 영화가 끝나도 바로 자리를 뜨지 않는 건 어떨까. 엔딩 크레딧에 이미 제작이 확정된 속편을 위한 쿠키 영상은 없지만 이 영화의 탄생에 기여한 수많은 그래픽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깨알 같은 크기로 한참 동안 스크린을 지나갈 테니까. 덧, 나도 언제 퇴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느라. 수정, 수정, 수정, 수정… 끝도 없는 수정 버튼 클릭의 늪에서 누가 좀 건져주세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