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화 감독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1973년 북미에서 개봉되어 박스오피스 1위를 합니다.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처음에 미국의 콜럼비아와 워너 브러더스가 배급권을 놓고 경합을 했다. 결과는 워너 브러더스를 통해 미국 전역에 개봉이 되면서 전미 박스오피스 1위를 하게 되었다. (중략) <포세이돈 어드벤처> <사운드 오브 뮤직> 등과 동시 개봉되었지만 흥행에서 앞서가게 됨으로써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한국일보 [정창화 감독의 액션영화에 바친 60년](2011년) 1~26화 중에서)
이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킬빌>에서 오마주를 합니다.
한국TV의 '스펀지'라는 프로그램에서 <킬빌>을 만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나를 찾아와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오마주 하겠습니다'라고 했다지만 그건 과장된 얘기다. 다만 타란티노 쪽에서 연락이 와서 (장면을) 좀 이용하겠다고 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허용할 수 있으니 해봐라‘라고 했을 뿐이다.'(한국일보 [정창화 감독의 액션영화에 바친 60년](2011년) 1~26화 중에서)
IMDb를 검색해보니 이 영화에 대해, ‘미국에서 쿵푸영화 열풍을 일으킨 영화‘ ’총 없이 싸우는 서부극‘이라며 IMDb등급이 7.1로 높았으며, 로튼 토마토 지수도 매우 신선함에 해당하는 80%를 받고 있습니다.
정창화 감독은 초창기 한국영화의 거목이었던 최인규 감독의 제자였으며, 임권택 감독과 홍콩의 오우삼 감독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그는 불모지에 지나지 않던 한국영화계에 액션 장르를 개척하고 성숙시킨 인물이기도 합니다. 데뷔작인 <최후의 유혹>이후로 만든 51편의 영화 중에서 30편이 액션영화일 만큼 그가 액션에서 보여준 재능은 탁월했습니다. 1958년 <망향>을 필두로 꾸준히 한국과 홍콩의 합작영화를 만들던 그는, 홍콩의 장철, 호금전을 거느리고 있던 란란쇼의 제안으로 쇼브라더스에 영입됩니다. 정창화의 쇼브라더스 1호 작품인 <천면마녀>는 홍콩에서 대단한 흥행성적을 올리고 유럽에 수출된 최초의 홍콩영화로 기록되면서 정창화의 홍콩 입성이 성공적으로 완성되었고 이에 만족하지 않은 정창화는 홍콩 고유의 영역이던 정통무협영화 <아랑곡의 혈투>에 도전하여 성공을 이루고, 새로운 무협형식인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만들면서 권격영화의 교두보를 마련합니다. (씨네21 기사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