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젊은 거장으로 떠오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드라이브 마이 카>가 개봉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 동승하는 관객들을 위한 가이드를 마련했다.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하마구치 류스케

하마구치 류스케는 2008년 동경예술대학교 영상대학원 석사 졸업작 <열정>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모교와 한국영화아카데미가 공동제작한 <심도>(2010), 2011 도호쿠 대지진 생존자들의 증언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파도의 소리> 3부작(사카이 코우와 공동연출),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을 4시간 15분에 걸쳐 보여주는 <친밀함>(2012) 등을 발표하며 픽션/다큐멘터리, 장편/단편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필모그래피를 확장해왔다. 하마구치가 세계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작품은 로카르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공동)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해피 아워>(2015). 고베에서 진행한 즉흥연기 워크숍에서 만난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한 <해피 아워>는, 30대 후반에 접어든 네 명의 여자 친구들이 각자 가정과 연애의 문제를 통과하는 과정을 5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 집요하게 담아냈다.

<해피 아워>

<아사코>

작별인사 없이 떠나버린 첫사랑과 똑같이 생긴 남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문득 다시 나타난 첫사랑에 흔들리는 여자 아사코의 이야기 <아사코>(2018)를 통해 하마구치는 처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동시대를 대표하는 일본 감독으로 발돋움했다. 성장세는 가팔랐다. 하마구치가 각본을 쓰고 구로사와 기요시가 연출한 <스파이의 아내>(2020)가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 ‘우연’ ‘상상’ 두 키워드를 관통하는 3개의 단편을 모은 <우연과 상상>(2021)이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3시간에 달하는 긴 호흡의 <드라이브 마이 카>(2021)가 다시 한번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이창동의 <시>, 셀린 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등이 수상한) 각본상을 거머쥐었다. 하마구치의 두 신작은 전 세계 수많은 영화 매체/평론가의 2021년 베스트 리스트에 포함됐고, 최근 <드라이브 마이 카>는 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예비 후보에 선정되며 수상이 유력시 되고 있다.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드라이브 마이 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2013년 발표한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를 각색했다. <아사코> 다음 작품으로 무라카미의 단편 영화화를 제안 받은 하마구치는 <해피 아워>를 만들기 위한 워크숍 중 참고 텍스트로 읽을 만큼 강한 인상을 받은 ‘드라이브 마이 카’라면 연출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영화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재료가 된 건 단편 하나가 아니다. 50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단편으론 장편영화를 만들기엔 무리라고 판단해, ‘드라이브 마이 카’가 실린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함께 수록된 단편 ‘셰에라자드’와 ‘기노’의 설정을 더해 장편 분량의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 일본 포스터

20여 년 전 아이를 떠나보낸 50대 남자 배우가 다른 남자들과 외도하던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사브 승용차를 유능하고 조용한 20대 초반의 여자 운전사가 몰게 되면서 자신의 상처를 고백한다는 얼개는 원작과 같다. ‘셰에라자드’에선 아내가 섹스 중에 전생이 칠성장어인 소녀의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설정을, ‘기노’에선 아내의 외도 현장을 목격하고 현실을 외면하려는 남자의 나약함을 가져왔다. 차별점은 분명하다. 원작의 요소를 들어냈다기보다 그걸 하나하나 세분해 각색 과정에서 새롭게 더해진 설정에 녹여내 캐릭터들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도쿄에서만 진행됐던 원작과 달리 영화는 도쿄에 사는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가 다국적 언어를 활용한 연극 <바냐 삼촌>의 연출을 맡아 히로시마로 떠나 그곳에서 여러 국적의 배우들을 만난다. 가후쿠의 건강을 염려한 소속사가 고용한 걸로 소개되는 미사키(미우라 토코)는 연극을 기획한 히로시마 관계자 측에서 사고를 방지해 고용한 걸로 바뀌고, 한층 더 말수가 적어졌지만 운전을 잘하게 된 과거가 더해지면서 원작에서 가후쿠의 이야기를 듣는 객체에 그쳤던 미사키는 가후쿠와 함께 자신의 과거를 치유해나가는 또 하나의 주체로 거듭났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얼굴들

니시지마 히데토시

거의 모든 신에 등장하는 주인공 가후쿠는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연기했다. 크고 마른 체형이 특유의 과묵한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니시지마는 딸과 아내를 모두 떠나보낸 상처를 꾹꾹 누르고 살아가는 남자의 심정을 내내 건조하게 보여준다. 무라카미의 소설을 영화화 한 <토니 타키타니>(2004)에서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던 니시지마의 단정하고 단호한 목소리를 통해, 주변의 상황을 간파하되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후쿠의 연기임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미사키를 연기한 미우라 토코는 하마구치가 비슷한 시기에 작업한 다른 영화 <우연과 상상>의 오디션에 참가했던 연으로 <드라이브 마이 카>에 캐스팅 됐다. 일본영화 속 20대 여자 캐릭터를 양분하는 귀여움이나 광기 같은 틀이 묻어나지 않는 미우라의 총명한 눈빛은 미사키의 침묵이 무심함이 아닌 세심한 배려에서 비롯된다는 절대적인 지표가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이 흔들리(는 것이 보이)지 않는 미사키의 차분함과 완전히 부합한다. 미사키는 가후쿠를 기다리면서 언제나 책을 읽고 있는데, 하마구치 감독은 실제 미우라 역시 다독가에 아주 박학다식해 미사키와 잘 어울릴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미우라 토코

무라카미 원작의 <상실의 시대>(2010)에 출연한 키리시마 레이카는 가후쿠의 아내 오토를 연기했다. 키리시마는 오토가 가후쿠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에 모순이 없음을 설득해내는 존재감을 발산한다. 속내가 읽히지 않는 키리시마의 목소리는 영화 초반에 퇴장하지만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계속해서 재생돼 영화 전반을 떠도는 오토의 아우라를 가능케 한다. 오카다 마사키가 연기한 타카츠키는 생전 오토의 내연남으로 가후쿠를 흔들면서도 진심을 감추지 않은 채 그를 대하며 같은 슬픔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그에게 깨달음을 안긴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통해 오카다는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본래 부산에서 촬영을 계획했다가 코로나19 여파로 일본에서 찍은 <드라이브 마이 카>는 가후쿠가 연출한 연극 <바냐 삼촌>이 언어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설정을 경유해 한국 배우들도 참여했다. 주로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해온 진대연은 한국어, 일본어, 영어 그리고 수어까지 능숙한 프로젝트 매니저 공윤수를, 영화 출연은 처음인 박유림은 목소리가 아닌 몸을 통해 제 마음을 똑 부러지게 표현할 줄 아는 이유나를 연기해, 앞으로 그들을 더 많은 작품에서 만나게 되리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오카다 마사키 / 키리시마 레이카

진대연 / 박유림


<드라이브 마이 카>를 만든 숨은 주역들

<스파이의 아내>

하마구치 류스케는 시바사키 토모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전작 <아사코>의 시나리오를 (구로사와 기요시와 여러 차례 협업한 작가) 타나카 사치코와 같이 썼다. <아사코>를 잇는 두 번째 상업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오에 타카마사와 함께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을 각색했다. 학부에서 연극을 공부해 두 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한 바 있는 오에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연출부로도 참여해, 연극이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는 영화에 그의 역할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마구치에게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소설의 영화화를 제안한 건 프로듀서 야마모토 아카히사다. <아사코>와 <스파이의 아내>에 이어 하마구치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은 그는 3시간에 육박하는 섬세한 호흡의 프로젝트를 일본의 보수적인 상업영화 시스템을 비집고 세상에 내놓은 결정적인 주역이라 할 만하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해피 아워>부터 모든 작품을 다른 촬영감독과 작업하고 있는 하마구치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촬영감독을 시노미야 히데토시에게 맡겼다. 하마구치와 함께 당대 일본영화를 이끌어갈 중요한 감독으로 손꼽히는 미야케 쇼의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8)와 마리코 테츠야의 <미야모토>(2019)에 참여한 바 있다. 음악감독 역시 마찬가지. <아사코>의 음악은 프로듀서 토푸비츠(tofubeats)의 일렉트로니카 비트로 채웠다면, <드라이브 마이 카>는 대중음악과 실험음악을 오가는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아티스트 이시바시 에이코를 초대해 그의 장기인 드럼 연주가 돋보이는, 오토가 발산하는 혼란과 미사키의 운전 같은 편안함을 아우르는 재즈 트랙을 배치했다. 총 10개의 트랙으로 이뤄진 이시바시의 영화음악 가운데 여섯은 ‘드라이브 마이 카’, 넷은 ‘우리는 기나긴 낮과 긴 밤을 지나며 살아갈 거예요’라는 제목 아래 각각 부제가 붙는 식으로 분류됐다.


그리고,

안톤 체호프의 <바냐 삼촌>

안톤 체호프

무라카미 하루키의 ‘드라이브 마이 카’만큼이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학 작품이 또 있다.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삼촌>이다. 무라카미의 원작 소설에서 <바냐 삼촌>이 아주 짧게 언급되는 것과 달리, 하마구치 류스케는 주인공 연극 <바냐 삼촌>이 가후쿠의 대표작이자 그가 히로시마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설정했다. 처음 발표된 1899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인류에게 회자되는 <바냐 삼촌>의 텍스트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무대와 연습실에서 배우들의 대사뿐만 아니라 가후쿠의 차에서도 오토가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로 계속해서 재생된다. 그리고 문득, 소냐가 삶에 고뇌하는 바냐 삼촌에게 전하는 그 유명한 문장이 무대 그리고 스크린을 넘어, 2021년에도 여전히 역병을 견디고 있는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순간이 스며든다.

<드라이브 마이 카> 프랑스 포스터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