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인기다. 10%를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매끄러운 연출과 서사는 물론. 그때 그 시절 청춘의 모습을 눈이 시릴 만큼 청량하게 펼쳐내며 시청자들의 오감을 충족시킨다. 이 무대의 중심에 서 있는 두 배우. 김태리와 남주혁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김태리가 선택한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 믿음직한 보증수표를 달고 시작한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단연 나희도의 드라마다. 매사 씩씩한 태도를 잃지 않으며, 굳이 정의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정의롭고 단단한 나희도에게 마음을 빼앗긴 시청자들은 희도의 성장길을 좇으며 함께 울고 웃는다. 그리고 그런 희도 옆엔 백이진이 서 있다. 이름만큼 깨끗한 마음으로 꿋꿋하게 IMF 시대를 헤쳐나가는 이진은 그 시대 청춘의 얼굴을 대표한다. 백이진은 배우 남주혁의 장점과 성장이 유독 돋보이는 캐릭터다. 최근 <조제> <스타트업> 등을 거치며 특유의 소년성에 깊이까지 더한 남주혁의 연기는 김태리와 함께 이 드라마를 빛낸다. 확신의 ‘성장캐’라고 불리는 배우 남주혁의 성장기를 간략하게 정리해 본 이유이기도 하다.


후아유 - 학교 2015 한이안 역

# 남주혁의 처음

<후아유 - 학교 2015>

<후아유 - 학교 2015>는 남주혁의 첫 번째 드라마 주연작이다. 이 작품은 모델에서 배우로 방향키를 튼 남주혁이 배우로서 지닌 가능성을 확인하는 심판대가 됐다. 지금 보면 어설픈 흔적이 여실히 드러날지 몰라도 당시 남주혁은 열여덟 한이안의 순애보적인 면모를 풋풋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으며 라이징 스타라는 기분 좋은 수식어를 얻었다. 이 드라마에서 빼놓고 이야기하고 어려운 것이 또 하나 있다면 남주혁의 교복이겠다. 예능 프로그램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와 AKMU(악동뮤지션)의 ‘200%’ 뮤직비디오를 통해 숱한 ‘교복짤’을 탄생시킨 남주혁은 <후아유 - 학교 2015>에까지 출연하며 젊은 층 사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완벽하진 않았어도 남주혁이 지닌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든 작품임엔 분명하다.


역도요정 김복주 정준형 역

# 로맨스의 얼굴

<역도요정 김복주>

남주혁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작품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로맨틱 코미디”라고 답한 뒤 “여러 남자 배우 분들이 남자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하시니, 그럼 멜로는 제가 하겠습니다”라며 웃어 보였다. 최근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인기와 함께 역주행 되고 있는 화제의 인터뷰다. 구구절절 말하진 않았어도 로맨스를 향한 남주혁의 야망 아닌 야망이 느껴지는데, 그 말이 씨가 된 것인지 2022년의 남주혁은 어느새 탄탄한 로맨스 필모그래피를 쌓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길의 시작점엔 <역도요정 김복주>가 서 있다. <후아유 - 학교 2015>가 배우로서 남주혁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작품이었다면, <역도요정 김복주>는 남주혁의 로맨스 연기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작품이다. 남주혁은 수영천재 정준형을 연기했다. 장난꾸러기 같다가도 사랑 앞에선 진심을 드러낼 줄 아는 준형의 솔직함은 <역도요정 김복주>를 뻔하지 않은 로맨스로 이끌었다. 비록 시청률은 저조했을지라도, 여전히 <역도요정 김복주>가 꾸준히 화제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후아유 - 학교 2015> <치즈인더트랩>에 이어 <역도요정 김복주>에서도 특유의 소년미를 뽐낸 남주혁. <역도요정 김복주>를 기점으로 그에게 청춘의 표상이란 수식어가 따르기 시작했다.


안시성 사물 역

# 영화 데뷔작

<안시성>

남주혁은 <안시성>을 통해 스크린 데뷔식을 치렀다. <안시성>은 남주혁의 목소리로 문을 열고 닫는다. 남주혁이 연기하는 사물은 “관객이 이 영화 속에 잘 들어올 수 있도록 돕는 관찰자”로서 영화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을 한 발치 뒤에서 바라본다. 양만춘(조인성)에 견줄 만큼 영화 속에서 사물이 해내야 하는 역할이 크다. 양만춘의 옆에서 고뇌와 갈등을 거치며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연기한 남주혁은 <안시성>에서도 성장이란 키워드를 잃지 않는다. 몇 번의 전투를 거치며 순수했던 눈빛이 별안간 혼돈과 독기로 가득 찬 순간. 관객들은 사물이란 캐릭터의, 그리고 배우 남주혁의 성장을 목격한다. 사실 <안시성>이 공개되기 전, 남주혁은 드라마 <하백의 신부>를 통해 연기력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어색한 대사 소화력이 도마 위에 오르며 배우 인생 처음으로 혹독한 비판과 비난을 마주 해야 했다. 뒤이어 선보인 작품이 <안시성>이었던 만큼, 남주혁에게도 <안시성>은 부담과 우려가 뒤섞인 작품이었을 터. 첫 주연 영화이자, 첫 액션 영화이자, 첫 사극 영화인 <안시성>은 배우 남주혁에게 온통 처음인 것뿐이었지만, 남주혁은 “민폐 끼치지 말고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 하나로 사물을 연기했다. 남주혁의 간절함이 녹아있는 덕분이었을까. 남주혁은 사물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와 함께 제39회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도 했다.


눈이 부시게 이준하 역

# 남주혁의 성장

<눈이 부시게>

<스물다섯 스물하나> 7화에서 나희도는 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실력은 비탈이 아니라 계단처럼 느는 거라고. 결국 정체기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수직으로 성장하는 맛을 느껴보지 못할 거라고 말이다. <눈이 부시게> 당시 남주혁의 얼굴을 떠올리니 자연히 스쳐 간 대사였다. <눈이 부시게>는 남주혁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드라마 종영 이후 남주혁은 ‘눈부시게’ 성장했다는 대중의 평가를 받으며 배우로서 한 단계 진화했다. 칭찬도, 논란도 겪으며 본인도 모르는 사이 수직 성장했다. <눈이 부시게>에서 남주혁이 연기하는 이준하는 표현하기 쉬운 인물이 아니었다. 이야기의 흐름이 변화함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연기해야 했고, 그보다도 우울과 분노, 희망 사이를 오가며 깊은 감정 연기를 선보여야 했다. 본인 스스로도 “너무 힘들었던 캐릭터”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남주혁은 이준하로 스며들며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는 얼굴로 남았다.


조제 영석 역

# 마음에 오래 남는

<조제>

2020년 남주혁은 누구보다 분주한 한 해를 보냈다. 한 편의 영화, 두 편의 드라마를 들고 팬들을 찾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 <조제>로 남주혁은 두 번째 영화 필모그래피를 채웠다. 남주혁이 연기한 영석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츠마부키 사토시가 연기한 츠네오다. 김종관 감독은 리메이크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츠네오를 탄생시켰다. 영석은 츠네오보다도 더 불안하고 위태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영석은 조제(한지민)와의 사랑, 현실 세계 사이에서 느끼는 막연한 불안함과 설렘을 동시에 보여주며 관객들의 맘을 일렁이게 한다.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줬던 청춘의 얼굴을 간직하면서도 남주혁 안에 숨겨져 있던 깊은 감정을 끌어 올렸다. <조제>를 통해 날 것의 감정을 전하는데도 능한 배우라는 걸 증명한 남주혁은, “마음에 오래 남는 연기를 보여줬다”는 평가와 함께 평단과 관객 모두를 만족시켰다.


스타트업 남도산 역

# 남주혁의 시작

<조제>의 영석, <보건교사 안은영>의 홍은표 그리고 <스타트업> 남도산까지. 캐릭터에 빠져나올 틈도 없이 연이어 고된 캐릭터들을 연기한 남주혁은 <스타트업>의 남도산과 2020년 끝자락을 함께 했다. 자존감 바닥의 천재 엔지니어 남도산. 어딘지 부족한 듯한 남도산은 남주혁을 만나며 100%가 됐고, 특유의 너드미까지 장착하며 매력적인 캐릭터로 남았다. 비슷한 시기에 각기 다른 장르, 전혀 다른 캐릭터들을 선보여야 했던 남주혁은 이 시기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기도 했다. “캐릭터들이 다 겹쳐 보이면 어떡하냐는 불안감”에 휩싸이며 체력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피로한 시기를 보낸 것. 그의 우려와는 다르게 이 시기 남주혁은 세 작품 모두에서 성장이란 키워드를 소환하는 데 성공하며 배우로서의 영역을 넓혔다. 20대 배우 중 캐스팅 1순위라는 상찬이 남주혁의 이름을 빛낸 것 역시 이 시기가 지난 후부터다. 뻔한 말이지만 남주혁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백이진에게선 2020년의 남도산, 영석과는 또 다른 청춘의 얼굴이 깃들어있다. 매년 남주혁은 나아지고, 나아가고 있다. 남주혁을 확신의 ‘성장캐’라 부르는 이유이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