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제이크 질렌할 주연 영화 <데몰리션>의 감독 장 마크 발레를 아시나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3), <와일드>(2014)를 연출하며 호평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감독의 이름 자체는 좀 낯설 겁니다. 영화 자체의 작품성보다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주목을 독차지했기 때문이죠. 기구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마주한 사람들을 끈질기게 담아내는 발레의 작품 속 배우들은 인생 연기선보였다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카페 드 플로르>(2011)<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그리고 <와일드>까지 반짝반짝 빛나던 주인공들의 활약상을 곱씹어보며, 최신작 <데몰리션>을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카페 드 플로르>의 바네사 파라디

캐릭터
1960년대 후반 파리,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들 로랑을 홀로 키우는 자클린. 천지간에 피붙이뿐인 그녀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로랑 또한 자기밖에 모를 거라고 생각하던 자클린은 어느 날 그가 여자친구와 떨어지지 않으려 하자 억지로 둘을 갈라놓으려 해요. 그렇게 벌어진 모자의 관계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습니다.
 
배우
바네사 파라디는 배우보다는 모델이, 어머니보다는 연인이 더 익숙한 사람입니다. 가수로 커리어를 데뷔해 모델과 배우도 겸하지만, 바네사 파라디 하면 앞니가 벌어진 독특한 외모를 뽐내는 샤넬 화보를 떠올릴 이들이 많을 겁니다. 조니 뎁은 물론 뮤지션 플로랑 파니와 레니 크래비츠, 배우 스타니슬라 메하르 등과 염문을 뿌렸던 것 또한 파라디의 대표적인 이미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던 그녀는 '어머니' 자클린의 넓은 온도차를 연기해낸 <카페 드 플로르>에 이르러 엄연히 배우로서 인정 받았습니다.
 
빛나는 순간
흔히 명장면이라고 한다면 인물의 감정이 도드라지는 순간을 떠올리기 십상이죠. 다만 <카페 드 플로르> 속 자클린의 이야기는 인물의 감정이 격하게 드러나는 법이 없습니다. 아들에게 헌신하겠다는 뜻만 품었던 자클린이 예전과 다른 로랑에게 질투심, 배신감 등을 느끼면서 결국 파국에 치닫는 느릿한 과정 전체를 눈여겨보시길 권합니다.
 
수상
2012년 캐나다(장 마크 발레는 캐나다인입니다)의 지니 어워드와 주트라 어워드에서 여우주연상을 탔습니다. 1990<하얀 면사포>로 세자르에서 신인여우상을 받은 이후 배우로서 처음 받은 상이었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맥커너히

캐릭터
, 마약, 섹스를 난잡하게 즐기던 론은 갑작스럽게 HIV 양성을 진단 받습니다. 청바지에 카우보이 모자를 즐겨 쓰는 텍사스의 마초인 그는 동성애자만 걸린다고 믿었던 HIV를 자신이 품었다는 받아들이지 못하죠. 겨우 삶의 의지를 다진 론은 미국 내에서 판매 금지됐던 약물을 사들여 HIV 양성 환자들에게 판매하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엽니다.
 
배우
매튜 맥커너히는 조각과 같은 매끈한 외모의 소유자입니다. 데뷔작인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멍하고 혼돈스러운>(1993) 이후 이렇다 할 휴지기 없이 장르와 규모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왔지만, 그 잘생긴 얼굴 탓(?)에 배우보다는 스타로 비춰져온 게 사실이죠. 하지만 언제부턴가 대중들은 그를 배우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버니>(2011), <머드>(2012)를 지나 출연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그 전환점이라 불러도 손색 없는 작품입니다. 21kg를 감량해서 얻은 처참한 몰골은 물론이고 절망에서 희망으로 향하는 끈질긴 생의 의지를 드러내는 모습은 가히 좋은 연기의 분명한 사례라 부를 만합니다.
 
빛나는 순간
론은 자주 정신을 잃습니다. 이미 바이러스가 전이된 상태에서도 방탕하게 자신을 몰아붙이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순간은 더욱 자주 나타납니다. 어디에선가 엷은 삐- 소리가 들린다면 관객들은 반사적으로 론의 상태를 실감하곤 합니다. 이러한 대목들은 영화에서 꽤 자주 나타나는 편이지만, 매튜 맥커너히는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를 구현해냅니다. 특히 화장실에서 낑낑대며 주사를 놓다가 결국 뻣뻣하게 고꾸라지고 마는 모습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수상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맥커너히가 2014년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점쳤고, 역시 이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짜릿함은 전혀 묽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10년 후의 자신을 영웅 삼아 끊임없이 노력했던 과거에 대해 고백하며 수상 소감을 전했습니다. 그해 거의 모든 남우주연상은 매튜 맥커너히의 차지가 됐죠.
 


<와일드>의 리즈 위더스푼

캐릭터
셰릴의 유년은 불우했습니다. 가계는 가난했고,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결국 부모는 이혼했습니다. 어른이 돼 어머니와 함께 행복한 삶을 꾸려가려고 할 때, 어머니가 돌연 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단 하나의 희망이었던 어머니를 잃고 그녀도 삶을 놓으려고 하던 중, 결국 셰릴은 과거의 슬픔을 씻고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극한의 도보를 시작합니다.
 
배우
리즈 위더스푼 역시 매튜 맥커너히와 마찬가지로 청춘스타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사정은 좀 다릅니다. <금발이 너무해>(2001)<스위트 알리바마>(2002)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로맨틱코미디의 실력자로 자리잡은 그녀는 호아킨 피닉스와 호흡을 맞춘 <앙코르>(2005)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현대 여성의 아이콘으로까지 성장했습니다. 이후 위더스푼은 연기뿐만 아니라 제작자로도 활동하며 저변을 넓혀나가는 중입니다. 어머니와의 작별을 이겨내기 위해 어마어마한 고통의 여정을 감내하는 여자의 이야기인 <와일드>에서 그녀는 주연과 제작을 겸하며, 세상에 새로운 여성상 하나를 보탰습니다. 짝짝짝.
 
빛나는 순간
<와일드>는 거두절미 셰릴의 고행부터 보여줍니다. 걸음을 멈추고 겨우 자리에 앉았지만 너덜너덜해진 발톱을 뽑아야 하는 처지가 셰릴에 대한 첫인상인 셈이죠. 에필로그에서도 여전히 그녀는 길 위를 걷습니다. 다만 그 사이를 (어머니와 함께했던) 그녀의 과거가 채웁니다. 셰릴이 과거를 애써 지우려하지 않고 그 기억을 오랫동안 붙들면서, 마음둘 만한 사람이라곤 없는 척박한 땅에서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하고 자신을 털어놓습니다. 거짓말처럼, 지친 얼굴에 또렷한 의지가 드리워집니다.
 
수상
2015년 초, 리즈 위더스푼은 유수같은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됐습니다. 하지만 그녀 옆엔 항상 (<스틸 앨리스>(2014)) 줄리안 무어라는 거대한 산이 하나 버티고 있었고, 덕분에 안타깝게도 모든 시상식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죠. 다만 <와일드>가 위더스푼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
.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