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이 뭐란 말인가?

올해 한국 관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영화 용어는 뭘까요?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만, 아마도 '맥거핀'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왜냐하면 <곡성> 때문이죠. 영화 개봉 당시 많은 관객들이 '영화 속 맥거핀에 당했다', 내지는 '맥거핀에 현혹당했다'는 말들을 SNS나 온라인 게시판 리뷰란에 쏟아냈지요.

그래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곡성>의 맥거핀은 대체 뭘까. 내가 아는 맥거핀은 영화 주제랑 아무 상관 없이 관객들을 한눈 팔게 만들어주는 의미 없는 무언가를 뜻하는데 <곡성>에 등장한 무엇이 맥거핀에 해당하는, 중허지 않은 의미 없는 것일까. 그래서 이번에는 연말 이슈도 정리해볼겸, '맥거핀'의 뜻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재정리해볼까 합니다.

여기, 맥거핀이란 것이 어디 있는가?
'맥거핀'은 사물이나 사람,장소일 수도 있고,
때로 권력이나 감정일 수도 있다?

간단하게 맥거핀이란, 속임수나 미끼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겠네요. 사전적 의미는 이야기 안에서 특정 목표나 사물, 혹은 어떤 동기 부여의 형태를 띈 플롯 장치를 지칭해요. 영화에 등장은 하지만, 심지어 주인공이 그것 때문에 의심을 하는 등의 어떤 마음을 갖거나 행동을 하게 하지만 정작 영화가 끝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는 걸 말합니다. 일종의 낚시질의 떡밥이라 할 수 있겠죠.

그래도 여전히 뜻은 어려워요. 맥거핀은 그러니까 사물이 될 수도 있고 장소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아, 저 사람!' 혹은 '저 장소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건 중요하지 않고 정작 다른 사건을 좇게 될 때가 있습니다. 결국 무쓸모로 사라진다는 조건을 지키기만 한다면 돈, 승리, 영광, 권력, 사랑 같은 무형의 감정도 맥거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맥거핀은 의미가 없어야 한다?
맥거핀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자, 다시 정리하자면 맥거핀은 이야기 안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어야 합니다. 만약 영화 전체의 중요한 목표를 위해 조금이라도 제 기능을 한다면 그것은 맥거핀 본연의 의미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다가올 어떤 사건을 미리 제시하거나 예측하게 만드는 복선이랑은 좀 다릅니다.

영어로 맥거핀은 '플롯 쿠폰', '플롯 티켓'이란 말로도 쓰여요. 어떤 사건의 결과를 위해 언제라도 지불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기차이고 영화의 목표가 종착역이라면, 맥거핀은 개찰구에 내고 버리는 티켓 정도의 존재 가치를 지녔다가 버려지는 것입니다.

범죄 영화의 맥거핀은 목걸이,
간첩 영화의 맥거핀은 신문!

맥거핀의 뜻을 대충 이해하셨나요? 다시 정리해보자면 맥거핀은 영화에 등장하는 요소 중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초반에는 중요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호기심과 긴장감을 유발시켜놓고서는 영화가 끝날 때쯤엔 결국 그것을 모르고 지나쳐버려도 결말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아무런 의미없는 어떤 것입니다. 맥거핀을 잘 아는 히치콕 감독이 이런 말을 남겼더군요. "범죄 영화의 맥거핀은 목걸이이며, 간첩 영화의 맥거핀은 신문"이라고요.

그럼 맥거핀과 맥머핀의 관계는?

어느 정도 맥거핀의 의미를 숙지했다면, 이제 우리가 본 영화에서 뭣이 맥거핀인지 찾아보면 이해하기가 더 쉬어질 겁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저렇게 맥머핀 사촌 흉내내는 아재 개그가 넘쳐나더군요.)

'곡성'의 맥거핀은 뭘까?
효진의 머리핀은 뭘까?

<곡성>에서는 어떤 것이 맥거핀으로 활용됐을까요? 효진의 머리핀? 자, 맥거핀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어야 한다면 일단 머리핀은 해당사항이 없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효진의 머리핀은 무명(천우희)이 어떤 존재인지 추측할 수 있게 도와주는 물건이니까요. 무명의 의상은 맥거핀보다는 복선 정도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네요. 일광(황정민)의 훈도시나 외지인(쿠니무라 준)의 카메라 등도 모두 맥거핀의 의미는 아닙니다. 일광(황정민)이나 무명의 존재 자체도 맥거핀은 아닌 것이죠. 영화에서 이들이 갖고 있는 것들이 의미가 없지 않잖아요? 일광이 벌이는 굿도 맥거핀은 아닙니다.

'곡성'의 맥거핀은 '이것'

그렇습니다. <곡성>을 봤다면 한 번쯤 의심해봤을 이것.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독버섯으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맥거핀의 의미에 가장 가까울 겁니다. 영화 초반에는 이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것 때문에 사람들이 미쳐가는 것처럼 묘사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지요? 영화 초반에 분위기 조성이나 관객들의 몰입을 돕는 미끼로 사용되고 사라진 독버섯이 맥거핀입니다. 관객들은 감독의 계산 하에 그것을 덥석 물은 것이지요.

대표적 맥거핀
토끼발
<미션 임파서블3>(좌)와 <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우)

맥거핀의 사례는 고전영화에서부터 셀 수 없이 인용할 수 있지만 일단 가장 쉬운 최근작으로 설명을 해볼까요. <미션 임파서블3>에서 요원 에단 헌트(톰 크루즈)는 적으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토끼발'이 뭔지 당장 내놓으라며 협박을 당하고 공격받죠. 결국 영화 내내 '토끼발'의 정체가 뭔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단 헌트 요원의 활약상에 관객은 주목하죠. 이런 게 바로 맥거핀의 올바른 사용 사례라 할 수 있겠죠. 할리우드 떡밥의 제왕 J.J. 에이 브럼스 감독이 심어 놓은 '미끼'였던 겁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에 재미있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에단 헌트가 영화 초반에 괴한으로부터 납치를 당하는데 의문의 여인 일사(레베카 퍼거슨)가 등장해서 그를 구해주죠. 에단 헌트가 갇혀 있던 지하실로 쳐들어온 일사가 수갑을 풀 열쇠를 하나 던지는데 그 열쇠고리에 걸려 있던 게 바로 토끼발입니다.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과 톰 크루즈가 재미삼아 그렇게 해봤답니다. 진짜 토끼발의 정체가 이제 밝혀졌다면서 말이죠. 역시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란 맥거핀의 의미를 지켜냈습니다. (또 다른 토끼발은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에도 등장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관련 정보를 찾아보시길.)

그 밖에 영화 역사에서 유명한 '맥거핀'들.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
<말타의 매>의 '조각상'
<카사블랑카>의 '여행 비자'
<오명>의 '우라늄'
<스타워즈> 시리즈의 '데스 스타' 설계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성배'
<펄프픽션>의 도난당했던 '서류가방'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절대반지'
<굿 윌 헌팅>의 주인공 '윌 헌팅'
<디파티드>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좌), <스타워즈> 시리즈의 데스 스타(우)

저게 무슨 맥거핀인가, 싶은 항목들도 있네요. 특히 <스타워즈> 시리즈의 데스 스타가 맥거핀이라고요? 아무 의미 없는 것이어야 한다는 맥거핀의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데스 스타는 분명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국군이라는 악당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의 큰 틀에서 데스 스타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일까요? 한 번 판단해보시길 바랍니다. 곧 개봉 할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이야기가 바로 오리지널 시리즈에 등장했던 '데스 스타' 설계도를 탈취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맥거핀을 찾아 떠나는 여정의 영화가 되는 셈이네요.

맥거핀의 거장,
히치콕

사실 맥거핀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게 맞는 사람이 바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입니다.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앵거스 맥페일이 용어를 만들었고, 히치콕 감독이 그것의 의미를 영화에 명확하게 구현함으로써 의미를 확립한 것이지요. 히치콕 감독 스스로 자신이 맥거핀을 가장 잘 구현한 사례로 꼽는 말을 인용하면서 맥거핀에 대한 설명을 마칠까 합니다.

내가 오랫동안 깨달은 가장 중요한 사실은 '맥거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내 최고의 맥거핀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사용한, 가장 무의미하고, 가장 존재 가치가 없으며, 가장 불합리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주인공 남자가 정보국 국장에게 "스파이 우두머리인 제임스 메이슨이 누구요?"라고 물으면 국장이 "무역업자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럼 다시 "무엇을 사고 파나요?"라고 되묻겠죠. 그때 국장은 "국가 기밀사항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장 순수한 맥거핀입니다. 즉,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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